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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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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를 읽고 난 뒤 내 마음의 시제
우선 이 책을 과연 '완독'했다고 해야 할지부터 의문이 든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던 생각은 단 하나, “왜 읽으면 읽을수록 짜증이 나지?”라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제목만 보고 타임 패러독스라든지 타임머신 소재를 기대했었다. 책을 펴고 나서야 이 책이 단편집인 걸 알았고, 하나씩 차례대로 읽어보았을 때 파열음 제거, 판소리 SF, 낯선 언어적 시제, 상반신이 기계인 인간, 2D 신 같은 독특한 소재와 설정들이 눈에 띄었다. 특정 관념적 아이디어 하나를 던져 놓고 짧게 치고 빠지는 구성은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블랙 미러>가 보는 이들을 단번에 사로잡는 까닭은, 신선한 설정 뒤에 인물들의 치열한 갈등과 반전, 그리고 탄탄한 기승전결이라는 서사적 엔진이 쉼 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래과거시제>는 외형적인 설정만 툭 던져두었을 뿐, 정작 이야기를 끌고 가는 알맹이 자체가 흥미롭지 않고 몰입감이 떨어져

Bobby
2 days ago2 min read


《노조키메》,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공포소설도 읽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임"릴스 끄고 책 킴"에서 “여름이니 공포 소설 읽어봐야죠”하는 @Bobby님에게 이끌려 일본 공포 소설인 “노조키메”를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읽다가 중단했다. 이 책은 표지마저 어릴 적 공포 영화 “링”이 생각나는 여자아이가 눈을 흘기고 있는 사진이라 시작부터 쉽지가 않았다. 처음부터 알 수 없는 공포의 분위기에 나처럼 공포에 대한 저항성이 매우 큰 사람에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밝은 대낮, 카페에서만 이 책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의 제목 노조키메(のぞきめ/覗きめ)’는 원래 일본어 표현은 아니다. ‘노조키메’라는 말에서는 ‘엿보다, 들여다보다’를 뜻하는 일본어 ‘노조쿠(覗く)’와 ‘눈’을 뜻하는 ‘메(目)’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노조키메 표지 실제로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은 누군가가 나를 엿보고 있다는 원초적 공포를,
스킴
Aug 292 min read


연민이라는 문명 -<8월 소설여행자들-자몽살구클럽>
요즘 매일 아침 '미모영' 모임에서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낭독하고 있다. 한 장씩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거의 매번 "인간은 왜 이렇게 잔인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고대 콜로세움에서는 타인의 죽음과 고통이 오락이었고,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도 폭력은 너무도 일상적이었다. 지금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지금이 가장 평화로운 시대라고 한다. 실제로 1960년대만 하더라도 살인과 강력 범죄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조금씩 폭력을 줄여 왔을까. 핑커는 그 배경 가운데 하나로 '문명화(civilizing process)'를 이야기한다. 문명은 단순히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충동을 절제하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커지는 과정이다. 결국 문명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 절제와 연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스를 보고 문학을 읽다 보면 문득
스킴
Jul 222 min read


안드로이드 파시스트를 생각하다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Philip K. Dick,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얼마 전 휴가로 가우디의 모더니즘 건축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 중세 분위기를 간직한 고딕지구를 걷다 산트 펠립 네리 광장에 이르렀을 때, 조용한 광장과 분수,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한가운데서 벽면에 남아 있는 총탄과 폭탄 파편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배경으로 남은 전쟁의 상흔은, 평화와 폭력이 한 프레임 안에서 겹쳐지는 기이함을 만들어냈다. 그 기이함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다른 나라의 내전에 목숨을 걸고 참전했던 외국인 의용병들이었다. 한때 아나키즘에 관심이 많았고 파시즘을 혐오했던 젊은 시절의 나에게, 그들은 “자유의 의용병들” 같은 이름으로 기억되는 낭만의 끝판왕이었다. 내 조국도 민족도 아닌 곳에서 “저건 내 싸움이기도 하다

바람
Jan 43 min read


<프랑켄슈타인> 누가 진짜 괴물인가
관자놀이에 볼트가 박힌 채 으르렁거리는 초록색 얼굴, 번개를 맞고 깨어나 거대한 몸으로 뒤뚱거리며 걷는 괴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이미지였다. 영화 스틸컷으로 각인된 그 전형적인 몬스터의 모습 때문에, 원작 역시 그저 공포스러운 괴물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해 왔다. 하지만 실제 책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북극을 향해 항해하던 월튼이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되는 액자식 구성,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이야기는 공포스럽기보다는 의외로 차분하고 사색적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괴물의 이름이라 여겨왔던 ‘프랑켄슈타인’이 사실은 창조자의 이름이며, 정작 괴물은 이름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세 개의 부로 나뉜 이야기에서 창조자와 피조물이 각각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괴물을 단순한 가해자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 “천체들의 경이로운 광경은 분명
Spring
Dec 13, 20254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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