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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은 사람은 공동체를 품을 수 있는가?-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2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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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회원님들을 대상으로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일까요?"퀴즈를 냈던 책, 누적 독서 천 권째 이자 올해 읽은 100번째 책은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오래 남긴 작품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남북한의 이념 대립을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에서 살다가 북한으로 건너가고, 두 체제의 현실을 모두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명준이 진정으로 찾고 있었던 것은 이념보다 사랑과 인간적인 관계가 아니었을까.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갈매기가 인상적이었다. 명준에게 은혜와 딸은 이미 현실에서 잃어버린 존재다. 그런데 그는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에게서 두 사람을 떠올린다. 그 순간 바다는 단순히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게 명준의 마지막 선택은 정치적 패배라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인간의 비극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명준이 은혜와 딸을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북한이든 중립국이든 어디에서든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랬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면 그곳이 어디든 자신의 삶을 이어갈 이유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해서 반드시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명준은 왜 다른 곳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공동체에서도 찾고 싶다.

명준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지 못했다. 남한에는 개인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진정으로 참여하고 신뢰할 만한 광장이 없었다. 북한에는 집단의 이상을 내세운 광장이 있었지만 개인의 생각과 자유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명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자신을 붙잡아 줄 공동체가 없었던 것이다.


예전에 김수영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독서모임(@Olivia님이 진행하신 peaceful reading)에서 함께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이 40%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회원들과 사회적 돌봄에 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프거나 일상이 무너졌을 때, 그것을 개인의 자기관리 문제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로 안부를 묻는 느슨한 공동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웃, 그리고 개인의 삶을 지탱해 줄 지역사회의 지원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장>을 읽으면서 그때의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명준에게 은혜는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마지막 통로였을지도 모른다. 그 연결이 끊어졌을 때 그를 붙잡아 줄 다른 관계는 없었다. 만약 그에게 자신의 슬픔을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의 생각을 이해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었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모든 책임을 공동체에 돌릴 수는 없다. 명준 자신도 현실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물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꿈꾸던 광장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광장을 만들어 가는 일에도 실패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공동체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공동체란 개인에게 하나의 이념이나 가치를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품어 주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명준이 원했던 것도 단순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광장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밀실의 자유와 광장의 연대가 공존하는 사회 말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정치적·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등을 돌리고, 개인의 고통을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 두기도 한다. 연결될 수 있는 수단은 어느 때보다 많아졌지만, 정작 어려울 때 서로를 붙잡아 줄 관계는 얼마나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광장>은 분단과 이념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지만, 내게는 한 인간을 공동체가 어디까지 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으로 남았다. 공동체가 개인을 품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를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 함께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책 속의 이 문장이 오래 남는다. 타인의 삶을 풍문처럼 듣고 판단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현장으로 다가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는 일은 어렵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광장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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