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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서평]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아프지만 찬란히



책의 첫문장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역사는 우리는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영어로는 더 인상적이었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500 페이지 이상으로 꽤 두꺼운 책을 보고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 했는데 바로 첫문장을 보고 감을 잡았다. 읽을 수 있겠다...


구한말 우리 조상들의 삶을 한문장으로 어떻게 이렇게 잘 요약했는지에 대해서 감탄했기 때문이다. 직역하면 역사가 우리를 실패했다, 즉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의 문제로 인해서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 즉 우리가 사는 시대와 환경, 우리의 국가, 사회체제 등 개인의 불행이 개인에 의해 생겨지는 것이 아니라 처해진 환경 때문이다라고 정의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위안부 문제와 징용 배상 문제등, 경술국치로 인한 일제 정렴기에 아픔이 완전히 해소 되었다라고 보기엔 어려운 상황이 가끔씩 연출 된다. 그 때마다 참 가슴 부분이 바로 개인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 그 힘은 바로 시대적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태어났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그 일이 우리 역사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민진 작가는 바로 이 음울한 문장뒤 재치있게 이렇게 적어두었다. “But no matter” -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결국 역사는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의 삶을 망쳐 놓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문장을 이런 메세지를 전하는 책을 어찌 다 못읽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사는 재미 교포가 재일교포에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게 참 흥미로왔다. 또한 복잡한 동아시아 근대 역사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소설 속 묘사는 아픈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안다는 듯 냉철함을 넘어 냉소적이기까지 했다.


이민진 작가는 만8살의 나이로 미국 뉴욕으로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왔다. 그의 아버지가 열여섯에 흥남철수로 부산에 온 피란민이셨고, 전쟁에 대한 공포와 슬픔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으셔서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했단다. 60년대 70년대 미국으로 이민온 한국계 미국분들이 그러하듯, 작가분도 한국어를 잊어버렸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지켰다. 후에 예일대 역사학과에 입학하고 일본에서 활동하던 백인 선교사로부터 13살의 재일 교포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나중에 부모님이 그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찾다보니 “너는 김치 냄새가 나서 싫어, 네 나라로 들어가라, 죽어라 죽어죽어” 이런 글들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본 사회에 뿌리깊게 내려 밖은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부근이 바로 일본계 미국인으로 부근의 직장이 일본으로 발령받게 되면서 일본에서 살게 되고, 작가분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은 한국말도 못하는 한국계 미국인이였음에도 한국계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으셨다고 한다. 사실 이민진 작가분의 유투브 인터뷰나 웨비나를 보면 이분이 거의 한국말을 못한다. 그분이 자신이 한국계 임을 말하지 않는다면 일본계인지 한국계인지 알기 어렵다. 우리도 말을 하지 않으면 일본인, 한국인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듯이 외모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본인이 일본에서 한국계임을 밝히면서 일본의 차별을 몸소 겪게 되었 재일 교포에 대한 차별이 만연화 되어있는지를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작가분이 일본에 살면서 재일교포에 대해서 간접적인 정보가 아니라 직접적인 연구를 하게된 연유다. 파친코가 어떻게 재일 한국인의 정서를 정확하고 그리고 섬세히 담아두게 된 이유다.


또한 파친코는 대하 소설의 형식을 취한다. 대하 소설하면 가장 많이 생각하는게 박경리 작가분의 토지인데 파친코를 읽으면서 상당히 토지의 설정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는 구한말, 1910년 부산 영도에서 시작한다. 언챙이 절름발이 훈에에게 가난한 집 딸, 양진이 결혼하게 된다. 둘 사이가 금술이 좋았지만 유아 사망이 높던 시기에 많은 갓난 아이를 잃고 양진은 딸 선자만을 성인으로 키워낸다.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받고 자란 선자는 열셋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결핵으로 잃고 어머니와 하숙집을 하면 살아간다.


훈이가 죽기전 아주 열심히 일해서 하숙집과 작게나마 그 근방 땅을 소유하게 되서 사실 양진과 선자는 그래도 아주 하층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훈이는 그 당시 여자들에겐 교육을 하지 않는데 반해 선자에겐 숫자와 셈을 가르치는 등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선자는 후에 시장에서 일본깡패를 만나 성희롱과 험한일을 당할뻔한 과정에서 고한수라는 재력가를 만나 구출을 받게 되고 그와 인연을 쌓아가게 된다. 후에 선자는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 일을 알게된 고한수는 선자에게 첩으로 살것을 강요하지만 선자는 자신이 받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 유혹을 물리친다. 그리고 선자는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힘으로 키우겠다고 생각하며 고한수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부모로 부터 받은 사랑의 기억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케 하고 자신을 지키는데 제일 중요한 자산이리라. 가난하지만 사이좋은 부모로 부터 진심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선자라서 할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놀라운 전개는 바로 뒤에 나온다. 양진과 선자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백이삭이라는 사람이 찾아오는데 그는 폐병 환자였다. 사실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지금 코비드가 한창인 시기에 백신도 약도 없는데 코비드 환자가 찾아온 것과 같은 상황이였다. 남편이고 아버지였던 훈이가 바로 이 병으로 죽은걸 생각하면 이 가족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된다. 그럼에도 양진과 선자는 백이삭을 정성껏 간호한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며 결국 살려낸다. 백이삭은 선자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살린 이 모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준다- 선자와 결혼을 할 결심으로.


이부분이 너무 아름다웠다. 선자에게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그녀의 행실에 대한 일언 질문이 없다. 선자에게 청혼하는 과정이 얼마나 섬세하고 배려심이 넘치는지 놀라웠다. 백이삭은 먼저 선자에게 의견을 묻고 선자의 “yes”를 듣고 양진에게 정중히 묻는다. 그리고 바로 결혼식을 올린다. 이는 의지의 결단의 표징으로 자신의 결정에 반대할 그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백이삭은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로, 원래 계획대로 일본 오사카에 교회를 돕기위해 선자와 결혼 후 바로 일본으로 떠난다. 그리고 선자의 오사카 삶이 시작된다. 선자는 오사카에서 이삭의 형 요셉과 그의 부인 경희와 살게 되고, 한수의 아들인 노아와 이삭의 아들인 모자수(**모세의 일본식 발음)도 태어나게 된다. 행복하게 사는 선자의 삶도 그리 길게 가지는 못하고, 백이삭이 신사 참배와 관련, 신앙의 문제와 아울러 반일을 했다는 신고로 투옥당하게 된다. 가뜩이나 약했던 그는 죽기 바로 직전에 집으로 돌아온다.


일본이 세계2차 대전을 일으키며 선자의 삶은 더 힘들게 된다. 요셉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삶은 점점 더 힘들어 지고 선자는 자신도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될 결심을 하게 된다. 처음엔 오사카의 노점에서 김치를 만들어 파는데 김치, 깍두기, 그리고 오이지까지 팔게 된다. 맛있다는 소문도 나지만 사실 이윤이 별로 남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선자의 행방을 추적한 한수의 도움으로 한수의 부하인 김창호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취업하게 되고, 반찬을 만들어 주게 된다.


미국이 오사카에 핵폭탄을 폭격하기로 한 시기 즈음, 선자는 이 음식점이 한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한수는 가장 높은 야쿠자 중에 한명으로 사실 이 당시 한수는 미군정과도 네트워킹이 되는 사이였고 그로 인해 오사카 폭격의 시기를 알게 된다. 선자의 아들 노아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있었던 한수는 이 가족을 전부다 구출하기로 하고 선자와 노아, 모자스 (모세), 경희까지 다 오사카를 탈출하게 한다. 다만 요셉만이 탈출하지 못하고 피폭이 되지만 추후 오사카에서 그도 탈출하게 된다.


선자는 오사카 폭격이후 일정기간동안 한수의 도움으로 일본 한 시골에서 살게 되는데 이후에 일정 시간이 지나고 오사카로 돌아간다. 요셉이 피폭되었고 이삭은 이미 천국에 갔기 때문에 선자가 가장이 된다. 끊임없이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사탕을 만들어 팔며 살아간다.


선자의 유일한 낙은 바로 두 아들, 노아와 모자스를 보는 것으로 노아는 그야말로 엄친아다. 그는 백이삭의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아버지처럼 학식과 위엄을 겸비한 사람으로 자라겠다고 다짐하며 공부도 운동도 그야말로 최고의 성과를 거두는 효자아들이다. 이와는 별개로 모자스는 공부보다는 운동을, 그리고 돈을 버는 일에 더 큰 재능을 보인다. 노아는 결국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낮에는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으로 일본인도 못간다는 와세대에 진학하게 되고, 이와는 달리 모자스는 파칭코를 운영하는 가게에 취업하게 된다.


이후의 주인공은 이제 2대인 선자의 시대에서 넘어가서 3세대인 노아와 모자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둘은 삶의 궤적이 꽤 다르게 나오는데, 노아는 일본인도 할 수 없는 일을 이뤄나가며 결국 일본의 주류인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노아는 아버지 백이삭에 대한 긍지가 상당히 강하다. 자신은 조선계이지만 자신이 물려받은 고매함의 근간은 바로 아버지 백이삭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책에서 백이삭은 미국인 선교사들과도 의사 소통이 될 정도로 영어도 잘하고 그의 인격과 학식은 재일 교포뿐 아니라 미국 선교사들에게도 존경을 받는다. 책에서 노아는 백이삭과 가장 높은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여진다. 백이삭은 노아를 백노아로, 깊이 사랑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첫아들로 그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키운다. 이는 백노아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조선계라는 차별을 스스로 극복하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


이점이 참 비극인 이유가 노아가 자신의 친 아버지가 고한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가 겪게 되는 심리적 붕괴 때문이다. 노아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고매한 백노아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그토록 경멸한 조선인의 모습인 야쿠자, 그것도 미군과 내통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아 정체성이 붕괴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고 자신이 경멸했던 인간상인 바로 한수가 자신의 친아버지임을 알게 되는 그의 고통을 나는 가늠코자 어려웠다.


역설적으로 백이삭의 진짜 아들인 모자수는 사실 자신이 재일 교포인 것을 처음부터 받아들인다. “그래 난 재일 일본인이다 그래서 뭐?”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일본인들로 부터 배척받은 일본인 학우를 구해주면서 친구가 되는데 그 친구가 어느날 모자수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이 차별을 견디냐고. 모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하루 살뿐이라고. 그리고 이게 현실이라고.


책에서 모자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성실히 매일 매일 살아가며 극복한다. 돈은 많이 벌지만 사람들로 부터 은근히 손가락질 당하는 파친코에 취업해, 최선을 다해 일한다. 기계 수리부터 사람들 운영까지 그는 모든 일을 배우고 상사로부터 인정 받아 어린나이에 자신의 파친코 가게를 운영하게 되는 등 성공을 거둔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부인인 유미를 일찍 잃게 되고 그녀와의 아들인 솔로몬을 싱글대디로 키우게 된다. 앞서 설명한대로 모자수는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 보내지 않고 국제 학교에 진학시키고 미국으로 대학을 가게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4세대 솔로몬의 이야기로 옮겨가게 된다.


소설은 정말 백년이 훌쩍 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훓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일본인 저항작가인 츠보이 사카에 작가의 소설인 24개의 눈동자 라는 책이 생각났다. 배경이 세계 1, 2차 대전 쯔음이고 대동아 전쟁을 겪게 되는 일본의 소시민의 삶의 불행을 설명한다.


사실 일본도 군국주의에 망령에 사로잡힌 지배층 때문에 많은 일본의 시민들이 고통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모자스의 여자친구인 에츠코의 딸인 하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 24개의 눈동자가 생각이 났다.


하나는 책에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 한다.


“일본은 절대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거야. 내 사랑. 너는 언제까지나 외국인으로 살아야 할꺼야. 절대 일본인이 되지 못해 알겠어? … 하지만 너만 그런게 아니야. 일본인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도 받아주지 않아. 나 같은 사람은 절대 받아들여주지 않지. 나는 일본인인데도 말이야!”


저는 이 부분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한일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이 이겨야 하고 일본이라는 말을 들어도 왠지 고운 마음이 들지 않고 마냥 안중근 이야기에 눈물이 나는 한국인인 나도 마냥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에서 계속 나오는 이야기, 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인류애의 강조다. 양진이 그당시 죽음의 병으로 불린 폐병 전염 위험에도 백이삭을 살려준 것, 백이삭이 선자와 고한수의 아들 노아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는 것, 하나가 일본인임에도 그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 고한수는 결국 그 누구에게도 인정과 사랑받지 못하는 것, 이 모두는 바로 “피", “돈", “힘"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 이웃을 향한 연민과 도움을 주려는 순수한 마음인 인류애의 발현과도 영향이 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그리고 가엾어서 베푸는 작은 친절이 결국 사랑이고 그 작은 사랑이 우리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이겨나가게 하는 실마리가 되는 것이 소설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 부모의 자식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과 자녀가 그 사랑에 긍정적으로 답했을 때 아무리 힘들고, 가난하고, 인종적으로 멸시 받고, 성차별을 당해도 자신에게 심겨진 사랑, 그 힘을 원동력 삼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그 걸음을 통해 우리는 결국 나도, 그리고 내 주변 사람도 함께 구원할 수 있다는 메세지가 가슴을 뜨겁게 했다.


어떤 날은 유난히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건넨 친절한 말 한마디, “너 괜찮아" 하고 묻는 동료의 친절한 안부의 말로 힘을 낼 때가 간혹 있었다. 나도 양진처럼, 이삭처럼 누군가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 하루 내 주변에 있는 이웃 들게 친절한 말한마디 건네 보아야 겠다. 거창하게 인류애를 베풀기엔 내 작은 베포를 탓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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