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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 - 바람의 독서노트


2023년 3월 인문 모임에서 작성한 독서노트입니다. PREFACE TO THE PAPERBACK EDITIONS

요약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각 대륙마다 역사가 다르게 펼쳐진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지금까지 세계사 대부분은 유럽과 북미 문자사회를 중심으로 기술되었다. 이런 협소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문제점을 가진다.


첫째, 최근 서유럽 외 다른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둘째, 문자 개발의 이전의 역사 발전에 대한 부족한 이해는 현대 사회의 태동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해주지 못한다.

셋째, 서유럽 사회 중심의 역사만으로는 다른 사회에 비해 서유럽 사회가 혁신적이고 강력하게 발전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과는 극단적으로 다르게 보일 것이다. 서유럽 외 사회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하기 위해 서유럽 사회에 대한 설명을 줄였기 때문이다.


세계사는 양파와 같아서, 껍질 하나하나를 걷어내는 작업은 어렵지만 환상적인 일이다. 과거의 교훈으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

저는 20주년 기념 영어판으로 책을 읽는데요. 페이퍼 백 서문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다른 책들의 서문의 제목은 어떻게 다를지, 내용은 어떻게 또 다를지 궁금하네요.


언제나 그렇지만, 서문을 잘 읽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아무래도 책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려는 내용들이 서문에 잘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기존의 역사책과는 달리 문자 개발 이전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각 대륙 사회의 역사가 다르게 전개된 이유를 살펴본다고 한다는 부분이 흥미를 자아내게 만드네요.


PROLOGUE - YALI’S QUESTION

요약

왜 역사는 지역마다 다르게 발전했는가?

역사는 지역마다 다르게 발전했다. 이런 차이가 세계사의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논쟁 거리가 많다. 파푸아 뉴기니에서 만났던 뉴기니의 지도자 얄리가 했던 “왜 백인들은 흑인들보다 더 많은 물건들을 만들수 있었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은 대답하기 힘든 것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지금 얄리의 물음에 답변을 해보려고 하는 시도이다.


생물학적 차이, 지리학적 차이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얄리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사람들과 사회발전의 우열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기후적 차이로 인해 사람들의 성향이 다르게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세번째로 지리적인 차이로 인해 중앙집권적 관료사회의 태동 여부로 인한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들 주장들은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설명을 해주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보다 직접적인 차이는 총균쇠인데, 그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또 다른 매우 설들력 있는 설명은 유럽 사람들이 질병, 철제 도구, 공업 제품들을 통해 다른 대륙의 사람들을 멸망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근원적인 이유, 즉 다른 이들이 아닌 유럽 사람들이 총, 균, 쇠를 갖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낳는다. 최근 다양한 분야의 학문들은 이런 원인들에 대한 효과적이지만, 단편적인 설명들을 제공한다. 이런 설명들을 종합해서 역사의 패턴에 대한 좀더 일반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 책은 환경적인 차이로 인해 역사 발전이 차이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역사가 각각 다른 발전의 경로를 가지는 이유는 인간들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환경적인 차이에 의한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역사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진화 생물학이나 지리학과 같은 역사 과학이다. 최근 집필한 책에서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조우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이것이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4개의 파트로 구성이 된다. 첫번째 파트는 문명 이전의 세계의 상태와 환경이 역사에 미치는 현상들, 다른 대륙의 문명이 충돌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두번째 파트는 식량 생산의 기원과 전파, 그리고 지형학적 영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세번체 파트에서는 식량 생산에서부터 총, 균, 쇠의 등장까지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 네번째 파트에서는 두번째와 세번째 파트에 나온 내용들을 바탕으로 전세계 인류 사회에 적용하여 설명해볼 것이다.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몇몇 환경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이 책은 기술하고 있다. 인류사는 과학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을 에필로그는 담고 있다.


개인적인 설명

고 신해철의 노래를 떠오르게 하는 얄리의 이름이 너무 친숙해서 그만 그의 질문에도 격하게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뭐라 설명해야할까요? 어쨌든 책을 보다 깊게 읽게 해주는 배경지식 중 하나라고 해야할까요?


저자도 설명했듯이 환경 결정론적인 역사에 대한 설명들은 새로운 것은 아닌데요. 다양한 학문들의 과학적인 연구성과를 통해 조금 더 과학에 가까운 역사를 기술한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철학, 심리학, 사회학과 같은 인문학들도 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비슷한 주장을 하는 저자를 보고 마음이 갑자기 웅장해졌습니다. ㅋㅋ


어쨌든 지금은 환경 결정론적 역사관의 대표적인 책이 되었는데요.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단순한 환경 결정론적인 책이 아니기도 합니다. 저도 대학원 시절 저자와 비슷한 전공을 했기에 저자에 불공정(?)한 공감을 많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ART ONE FROM EDEN TO CAJAMARCA

CHAPTER 1 UP TO THE STARTING LINE

요약

인류는 7백만년 전 탄생하여 집단 생활을 하는 13,000년 전까지 발전한다.

이번 장에서는 인류의 탄생에서부터 13,000년 전 경까지의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7백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는 최초로 등장하고, 5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로 발전한다. 5만년 전에는 인류의 위대한 진보라고 불리우는 현대적 언어를 갖춘 예술활동이 가능한 크로마뇽인의 탄생한다. 이 크로마뇽인은 현대 인류와 비슷하게 전세계에 분포한다.


인류의 이동과 더불어 호주와 뉴기니에서는 가축화할만한 대형 동물이 멸종한다.

인류는 유라시아를 점령하고, 배가 필요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호주와 뉴기니를 점령하게 된다. 자세한 원인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호주와 뉴기니에서는 향후 가축화될 수 있는 대형 동물들이 인간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아메리카의 대륙 역시 인류의 이동과 더불어 대형동물들이 멸종한다.

이어 인류는 유라시아의 추운 지방과 남북 아메리카 대륙마저 점령하게 된다. 기원전 12,000년경 빙하 시대에 시베리아로부터 알라스카로 건너간 인류가 퍼져 남북 아메리카 곳곳에 분포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대형 동물들은 멸종하게 된다. 결국, 기원전 11,000년 정도가 되면, 다섯 개의 대륙 전체에 인류가 번성하게 된다.


여러 대륙 중에서도 유독 유럽 인류가 빠르게 발전했던 이유를 알아보려 한다.

11,000년 전의 세계의 상황을 바탕으로 각각의 대륙에서 다르게 총균쇠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그로 인해 현재 세계를 예측해낼 수 있을가?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유럽이 가장 빠르게 발전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발전의 실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에서는 앞으로 그 이유를 알아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이번 장의 커다란 복선은 아메리카와 호주, 뉴기니의 대형동물 멸종인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가축은 농경사회로 전환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어, 상대적으로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가축과 총균쇠의 개발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해집니다.


점진적으로 사냥기술이 발전하는 인류와 함께 공존했던 유라시아의 대형 동물들은 나름 환경에 적응하여 멸종을 피했지만, 갑작스럽게 뛰어난 사냥기술로 나타난 인류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던 호주와 뉴기니,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대형동물들은 멸종을 피할 수 없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한편, 논거들에 논쟁거리가 많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는 모습은 확증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CHAPTER 2 A NATURAL EXPERIMENT OF HISTORY

요약

마오리와 모리오리의 차이는 대륙간 문명의 차이에 대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마오리 족과 모리오리 족은 같은 조상에서 나왔지만, 각각 다른 환경에서 발전되면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문명이 발전된다. 상대적으로 잘 조직된 전쟁 기술과 정치 조직으로 마오리 족은 모리오리 족을 노예로 삼고 학살한다. 이는 대륙간 문명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좋은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폴리네시아 섬들은 환경이 인류사회에 미친 영향을 검증하는 자연 실험장이다.

Chatam 섬과 뉴질랜드의 환경의 차이가 미친 모리오리와 마오리의 차이는 환경이 인류 사회에 미친 영향을 검증하는 작은 규모의 자연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폴리네시아 인류 사회는 기후, 지리적 특징, 해양 자원, 면적, 지형의 분리, 외부 섬과의 격리도와 같은 6가지의 환경적인 요인들에 영향을 받았다.


환경적인 요인은 식량조달에 영향을 미친다.

식량조달 방법은 다른 여러 요인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아주 기본적인 요인 중 하나이다. 폴리네시아 섬들은 기본적으로 물고기 사냥과 수렵, 채취가 기본적인 식량 조달 방법이다. 또한 가축과 농업도 식량조달의 중요 수단이 된다. 하와이의 경우에는 독특하게 물고기 양식을 하기도 한다.


섬의 크기과 지리적 환경은 정치적 인구수, 기술, 정치, 물질 문명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섬의 크기는 인구 수와 밀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섬의 크기와 이웃 섬과의 격리도와 같은 지리적인 환경과 더불어 정치적 인구수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인구수는 기술,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 조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구가 과밀한 곳에서는 특수한 신분이 나타나고, 사회와 정치구조가 복잡해지며, 도구나 물질 문명의 발전이 나타난다.


폴리네시아 문명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들은 다른 문명의 차이도 설명해줄 수 있다.

이런 환경적인 요인은 비단 폴리네시아 섬들의 문명의 차이뿐 아니라 전 세계 문명들의 차이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물론, 폴리네시아 문명은 기타 다른 문명 달리 철기 사용, 제국의 출현, 문자의 발명이 없었다. 하지만, 폴리네시아 문명들에게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다른 문명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훌륭한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야만 공부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던 지도교수님의 충고가 기억이 나는군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에 진화 생물학을 연구하기 위해 폴리네시아 섬들을 오고가면서 지리환경이 문명에 미치는 영향들의 자료들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폴리네시아 섬들의 다양한 환경이 각각의 문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이해를 전체 인류 문명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저자의 방법론은 일반적인 공학에서 활용하는 모델링 방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의 분량이 많기는 하지만, 저자의 필력이 상당하여 읽는데는 큰 무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비록 분량이 많기는 하지만, 논거들 사이의 인과관계가 잘 설명하여 이해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논리적 글쓰기의 훌륭한 교재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CHAPTER 3 COLLISION AT CAJAMARCA

요약

아타후알파가 사로잡힌 사건을 통해 세계사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1492년 콜롬버스의 발견 이후, 1532년에 있었던 잉카제국과 스페인 군대의 접촉은 매우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온다. 잉카 제국의 황제인 아타후알파가 사로잡힌 사건의 원인들은 그와 유사한 현대사의 수많은 정복자와 피정복자 사이의 차이에도 일반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피사로는 손쉽게 아타후알파를 생포한다.

피사로는 인디언들을 고문하여 알아낸 정보로 168명의 군사로 80,000명의 군사를 가진 아타후알파 진영에 도달한다. 피사로는 평화롭게 만나자고 아타후알파를 유인하여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 총소리에 당황한 잉카 군대는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아타후알파는 사로잡힌다. 7,000명의 잉카 군인들이 전사했지만, 스페인 군대는 한명의 전사자도 없었다.


총, 철제무기, 말, 전염병 항해술, 중앙집권적 정치체계와 문자

피사로가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제 칼과 무기, 철제 갑옷, 총과 말과 같은 군사적 우월성에 있었다. 한편, 유럽의 전염병이 면역력이 없었던 잉카인들에게 퍼졌던 것과, 유럽의 항해술과 정치적 조직 역시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접적인 요인들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들 6가지 요인들은 현대 유럽이 다른 대륙의 침략전쟁에서 승리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을 한다. 앞으로 이 책에서는 이들 직접적인 요인의 차이들이 어떻게해서 생기게 되었는지 그 근본적인 요인들을 살펴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아마 총균쇠 책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꼽으라면 피사로의 군대가 아타후알파를 생포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가 역사서에 가까운 총균쇠가 역사학자가 아닌 진화생물학자에 의해 씌여진 것에 충격을 받아 사피엔스를 썼다고 하는데요. 사피엔스에는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정복하는 이야기가 비슷한 논조로 쓰입니다. 어쩌면 유발 하라리가 총균쇠를 오마주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의 내용 중 하나 동의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아타후알파가 피사로의 계략에 쉽게 빠져든 것이 문자의 부재로 인한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문화적인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오히려 상대방을 속이지 않는 도덕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상대방이 비열한 속임수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크게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PART TWO THE RISE AND SPREAD OF FOOD PRODUCTION

CHAPTER 4 FARMER POWER

요약

농업과 가축은 식량 생산량을 늘렸다.

선사시대에 식량 생산은 지역마다 다른 시기에 출현한다. 농업은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을 늘렸으며, 가축은 고기, 우유, 비료, 경지 수단을 제공하여 직간접적으로 식량 생산 향상에 기여한다. 늘어난 식량은 인구수를 늘려주게 된다.


농업과 가축은 군사력의 차이도 만들어낸다.

정착 생활과 잉여 생산물은 다양한 계층이 나타나게 해준다. 군인과 장인의 출현은 군사력의 차이를 나타나게 해준다. 농작물과 가축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재료들은 기술발전을 이끌어낸다. 대형 가축은 효율적인 운송 수단으로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축화된 동물들로 인한 균 역시, 대륙 간 정벌 전쟁에 커다란 기여를 한다.


재배가능한 식물과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식물의 재배와 동물의 가축화는 잉여생산물을 제공하고, 정착생활을 통해 인구를 증가킨다. 증가한 인구와 잉여 생산물은 다양한 계층을 만들어내고, 중앙집권적이고 계층화된 정치 사회를 출현시킨다. 고도화된 사회는 기술, 경제, 군사적인 발전을 이끌어낸다. 유라시아 대륙이 제국, 문자, 철제무기를 비교적 빠르게 개발한 것은 이들 재배가능한 식물과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이 풍부했기에 가능했다.


개인적인 생각

이번 장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압축하여 요약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식량 생산의 차이가 어떻게 문명의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군사적인 우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적절한 인과관계를 통해 잘 설명한 것 같습니다.


한가지 생각해볼 부분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여가 시간이 없어 복잡한 사회 체계가 나타나지 못했다는 저자의 주장인데요. 이는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주장했던 농업이 오히려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앗아갔다는 농업의 사기와 배치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단순한 수렵채집보다 농업은 복잡한 계획과 실행이 필요했기에 복잡한 사고를 발전시켰기에 복잡한 사회로 이행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는데요. 개인적으로 하라리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CHAPTER 5 HISTORY’S HAVES AND HAVE-NOTS

요약

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가 생겼는가?

인간의 역사는 농업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혹은 각각 다른 시기에 농업을 시작한 사람들 간의 불평등한 충돌이다. 농업의 발생과 농업을 수입하고 정착시킨 지역과 관련한 차이들에 대한 설명은 불평등의 기원을 설명해줄 수 있다.


탄소 연대 측정법과 고고학적 분석

식량 생산이 시대는 탄소 동위원소 12와 14의 비율을 이용하는 탄소 연대 측정법이 활용된다. 비교적 초기에 사용되던 간접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직접방식의 연대 측정법이 있으며, 대기중 탄소 동위원소 변화량을 반영한 보정방법도 등징한다. 농업이나 가축이 독립적으로 발생했는지 여부는 야생의 조상 동식물의 서식 지역, 농작물화되거나 가축화 된 시기, 형태학적인 분석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독자적으로 식량 생산이 발전된 지역과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지역이 있다.

독립적인 식량 생산이 시작된 곳으로 확실한 곳은 5군데 있으며, 이외 4군데는 명확하지 않다. 한편, 다른 곳의 작물들을 받아들이면서 식량 생산이 된 곳도 있다. 특히 이런 다른 곳으로부터 식량 생산을 받아들이 곳에은 기존의 수렵채집민이 농업으로 전환한 경우가 있으며, 새로운 이주 농업민들이 수렵채집민을 몰아낸 경우도 있다.


식량 생산의 차이는 총균쇠를 개발하는 길에 유불리를 결정한다.

독자적으로 식량생산이 시작되는 시기도 다 제각각이며, 외부로부터 식량 생산을 받아들이는 것도 다 제각각이다. 환경에 따라서는 여전히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곳도 있다. 어쨌든 이런 식량생산의 시작의 차이는 총균쇠 개발로 이르는 경쟁에서 유불리를 결정한다.


개인적인 생각

자연상태는 아마도 홉스가 리바이던에서 이야기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약육강식 내지는 승자 우위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나마 문명이 발전하고 사회 공동체 개념이 커지면서 자연상태가 많이 극복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투쟁은 지속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장의 제목이 눈에 띄였습니다.


어쨌든 최근에 화두가 되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가 개인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환경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요. 따라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가혹하다는 주장일 것입니다.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도 그와 결이 비슷한 것 같은데요. 결과론적으로 사회나 국가 간의 차이가 생기기는 했지만, 환경이 그 주된 원인이므로 이를 사회나 국가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CHAPTER 6 TO FARM OR NOT TO FARM

요약

수렵채집보다 식량생산이 항상 매력적이지는 않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식량생산에 비해 수렵채집은 단점이 많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농업은 수렵채집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고, 초기 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영양상태는 오히려 수렵채집을 하던 사람들에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주변에서 식량 생산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수렵채집을 하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식량생산은 다양한 결정들을 통해 진화한 것이다.

식량생산은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 결과를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여러가지 결정들이 모여져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착생활과 영토의 관리는 식량생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수렵채집을 하면서 정착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고, 식량생산을 하면서 이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땅을 관리하여 수렵채집에 효과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최소의 노력과 시간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는 식량 생산이 선호된다.

초기 식량 생산에서는 야생 동식물과 재배한 동식물을 모두 식량의 기반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작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채집 활동들의 중요성을 잃었을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최소의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는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주변의 환경에 따라 농업이 수렵채집보다 유리한 경우에 받아들인다.

최초의 농업은 무의식적으로 선택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주변의 농업을 목격한 수렵 채집인들은 그 결과를 보고 의식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주변 환경에 따른 수렵채집의 생산성에 따라 농업을 받아들이는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식량생산으로 전환을 이끈 5가지 요인

어쨌든 1만년 전에 수렵채집에서 식량생산으로의 눈에 띄는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전환에는 5가지 요인이 있다. 가용 가능한 야생 식품의 감소, 농사 가능한 작물의 증가로 농업 생산력 증대, 식량 생산 기술 증대, 인구밀도와 식량 생산의 증가, 수렵채집과 식량생산의 지리환경적 경계의 변화이다.


개인적인 생각

앞장에서 수렵채집에 대부분의 시간을 많이 사용한다는 주장이 이번 장에서는 번복이 되는군요. 유발 하라리의 주장과 비슷해진 것 같은데요. 찬찬히 읽다보니 비교의 시점에 따라 시간에 관한 주장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농업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요인들에 대한 저자의 사고 실험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예도 적절히 들어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다른 학문적 연구에 대한 레퍼런스가 없다는 점인데요. 저자의 전공이 진화 생물학이라는 점과 일반인이 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한 부분을 감안해야할 것 같네요.


CHAPTER 7 HOW TO MAKE AN ALMOND

요약

인간의 의식적인 작물 선택

인간은 의식적으로 작물을 선택할 수 있다. 열매의 크기는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농작물은 조상에 해당하는 야생식물보다 쓴맛이 덜하다. 자연 상태에서의 돌연변이로 쓴맛이 덜한 열매를 가진 농작물이 나타나게 되고, 인간들이 그 농작물들을 선택하게 된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요건에 의한 선택 혹은 선택조건의 변화

농업에서의 선택은 자연선택의 방향과 정반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얇은 씨앗의 껍질이 나타나는 돌연변이는 자연상태에서는 치명적이지만 농업에서는 성공적 요소가 된다. 농업에서의 선택은 씨앗을 퍼트리는 방식, 발아 억제, 번식 방법과 같은 보이지 않는 요건에도 작용한다. 농업은 식물의 환경을 변화시켜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의 조건을 변화시키게 된다.


작물화 순서와 지역별 특징

식물들의 농작물화 순서는 직간적접 이익, 재배의 용이성과 필요한 기술들에 의해 좌우된다. 지역별로 농작물화된 식물들을 살펴보면, 보리, 밀, 콩과 비슷한 조합들이 다양한 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flax와 같이 섬유를 제공하는 식물들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식풍 생산 시스템은 지역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한, 주요 칼로리 제공 수단도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농작물이 되지 못한 이유들

이미 로마 시대 이전에 오늘날 주요 농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었다. 식품으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물화되지 못한 식물들도 있다. 씨앗을 심은 이후 열매를 수확하기 까지 수십년이 걸리거나, 다른 동물들이 자연선택에 더 밀접하게 개입되어 인간에게 적합한 형태로 발전되지 못한 경우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선택을 통한 농작물로의 진화

야생 식물과 그로 부터 발전한 농작물들이 각각 다른 특징을 가진다. 크기와 쓴 맛과 같이 쉽게 인지 가능한 차이도 있으며, 씨앗의 확산 방법, 씨앗의 휴면과 현대 식물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인지하기 어려운 방법들이 있다. 어쨌든 처음에는 무의식적인 과정으로 야생식물이 작물화가 되고, 자연 환경과 달리 인간의 유용성에 적합한 자연선택으로 작물들은 진화한다.


개인적인 생각

앞서 집필된 이유는 있겠습니다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농업 혁명에 관련된 설명에 비해 논리 전개가 좀 허술하게 느껴집니다. 그중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인간에게 보다 유용한 경우가 많다는 전제는 현대 진화이론과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돌연변이는 무작위로 일어나고 인간이 개입된 자연선택에 의해 인간에게 유용한 것들이 살아남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논리 전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의 초반부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뒷부분에 종의 기원을 언급하네요. 저자가 진화의 관점에서 농작물의 탄생을 설명한 시도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확장된 형질의 개념을 바탕으로 농작물과 인간의 공생관계의 관점에서 봐도 이번 장의 전반적인 주장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CHAPTER 8 APPLES ON INDIANS

요약

왜 특정 지역에서는 농업이 발생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지 못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해당 지역의 사람들과 가용한 식물들 때문이라는 두가지 상반된 설명이 존재한다. 동물의 경우에는 그 수가 많지 않고, 가축화에 적합한지를 점검하는 요인들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쉽게 가축화의 차이점들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식물은 그 숫자가 많지 않아 동물의 가축화를 설명하는 방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식량 생산이 수렵채집보다 뚜렷한 장점이 있어야 한다.

현대에 들어서 새롭게 식물들이 농작물화 된 사실이 없다는 것은 이미 작물화 될 수 있는 식물들은 모두 작물화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한 식물의 작물화만으로는 수렵채집을 위한 방랑 생활을 포기하고 농업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수렵채집보다 정착을 통한 식량 생산의 장점이 있어야만 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기후, 환경, 야생동식물의 차이로 농업이 일찍 시작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기후, 지역적인 특색으로 야생동식물이 다양했다. 농업에 유리한 작물 덕에 다른 지역보다 식량생산이 수렵채집보다 유리했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서 농업이 일찌감치 행해진 이유는 인간들의 생물학적 특징이라기 보다는 기후, 환경, 야생동식물의 차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뉴기니와 미국 동부의 늦은 농업은 작물화 가능한 식물이 적어 초기 식량생산성이 낮아서이다.

뉴기니의 경우 수렵채집의 효율이 높은 해안 저지대에서는 농업이 발생하지 못했고, 수렵채집이 제한적인 고지대에서 농업이 발생한다. 유라시아에서 작물화되지 않은 타로를 작물화한 것은 작물화 가능한 식물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동부의 경우, 초기 농작물들의 농업의 어려움으로 멕시코에서 생산성이 높은 작물의 도입이 있은 후에야 농업이 시작된다.


농작물화 가능한 야생 식물이 사회의 차이를 만들었다.

물론, 인류사회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야생 식물과 동물의 지역적 편차가 절대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좀더 긴 시간과 광범위한 지역을 감안한다면 농업 시작의 차이는 지역적인 야생 식물의 차이에 의한 것이 타당하다.


개인적인 생각

저자는 앞서 농업 생산성과 수렵채집 생산성을 압도하게 되면 농업이 시작될 수 있다는 논지를 펼쳤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주장이 조금 더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뉴기니의 경우는 이 주장에 대한 아주 좋은 근거가 되는 것 같고요. 실제로 농업이 발전한 고산지대보다는 해안 저지대가 농업에 적합했을텐데요. 상대적인 수렵채집의 생산성 차이로 해안 저지대 사라들은 농업을 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겠지요.


어쨌든, 저자는 이번 장 말미에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이상한 주장을 합니다. 대형 동물들이 없어서 수렵채집의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주장을 하는데요. 대형 동물들이 없었도 작은 동물들의 숫자가 많았다면, 혹은 사냥하기 용이한 동물들이 풍부했다면, 수렵채집의 생산성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수렵채집이 용이하지 않았다면, 나가서 고생해서 헛수고하는 것보다 집 주변 화장실이나 쓰레기 장에서 자라는 식물들 채집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면서 농업이 빨리 발전하지 않았을까요?


CHAPTER 9 ZEBRAS, UNHAPPY MARRIAGES, AND THE ANNA KARENINA PRINCIPLE

요약

동물들의 가축화에는 다양한 조건들이 필요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은 필요한 다양한 조건들이 모두 만족되어야 행복한 결혼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동물들도 가축화에 필요한 다양한 조건들이 모두 충족해야만 가축이 될 수 있다.


가축화가 가능한 대형동물들은 유라시아에 편중되었다.

대형 동물 중에는 오직 14개의 종이 가축화가 되었고, 그 중 5종만이 세계적으로 널리퍼지게 되었다. 이들 중 13개의 종이 유라시아에 편중되어있다. 이런 이유로 유라시아가 총균쇠를 먼저 가지게 된다. 유라시아에는 다른 대륙보다 가축화가 가능한 야생 대형 동물들이 많았다.


가축화하지 않은 이유는 문화적 차이가 아니다.

다른 대륙의 경우 가축화가 가능한 야생 대형 동물의 수가 적기도 했지만, 가축화된 비율도 낮았다. 그렇다면 어떤 문화적인 차이가 가축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대답은 문화적 차이는 아니다이다. 먼저, 가축화가 없었던 사하라 이남 지역 인간들이 유라시아의 가축들을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가축화에 합당한 가축이 없어서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대형동물 가축화와 문화적 요인의 상관성이 없다는 예들은 많다.

두번째로는 가축화를 하지 못한 지역에서도 가축화 초기 단계인 야생동물을 길들인 증거들이 있다. 이는 가축화 시도가 실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번째로는 가축화할만한 대형동물들은 초기에 빠르게 가축화가 되었다는 점이다. 네번째는 몇몇 종들은 각각 다른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가 되었는 점이다. 이것은 가축화에 문화적 영향이 미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문화적 기술적으로 압도적인 차이를 가진 현대에서 새롭게 가축화된 동물들이 없다는 점도 문화적 요인을 부인하는 증거이다.


가축화가 될 다양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종들이 유라시아에만 편중이 되었다.

148개의 대형 초식 포유류 중에서 14개의 종만이 가축화가 되었다. 가축화를 하지 못한 동물들에는 제각각 다 이유가 있다. 먹이와 성장의 효율성, 성장 시간, 번식 가능성, 위험한 성격, 과민한 반응, 사회화 등 조건들 중 하나만 맞지 않아도 가축화가 어렵다. 유라시아에는 가축화에 조건을 충족시키는 야생 대형 초식 포유들이 많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개인적인 생각

이번 장을 읽으면서 사후 확신 편향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자도 주장했듯이 가축화의 과정에는 인간이 개입된 자연선택으로 인해 유전자의 변화가 수반이 되어야하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가축화가 된 동물들의 특징은 가축화 초기의 야생동물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야생동물의 특징을 바탕으로 가축화에 합당하지 않다는 주장은 가축화 과정의 자연선택의 필요성과 배치되어 논리적 모순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한편,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가축화가 가능한 종 수는 72개 종과 51개 종으로 차이가 그리 커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한종도 가축화가 되지 않은 것은 가축화에 필요한 자연선택이 발생하도록 하는 인간들의 개입이 없었거나 제한적이었다고도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가축화하는 것보다 야생에서 포획하여 길들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면, 그 효율의 차이는 동물 종에 의해서도 좌우되지만, 인류 사회의 발전정도와도 연관성이 있어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진 5개 종들 중 개와 말의 경우에는 가축화가 되는데 6천년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저는 개보다는 말을 키우는데 여러가지 기술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난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게 들리는데요.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CHAPTER 10 SPACIOUS SKIES AND TILTED AXES

요약

대륙의 형태가 운명을 결정했다.

대륙 축의 방향은 작물과 가축과 그리고 문자, 바퀴와 같은 다른 발명품의 전파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기본적인 지리적 특성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이 유라시아 대륙의 지난 500년간 다른 역사를 가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유라시아의 가축과 작물은 전파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독립적으로 발생한다.

작물이나 가축의 전파는 다른 비슷한 야생식물이나 동물의 작물화 가축화를 막는 선점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작물이나 가축의 유전학적 분석을 통해 각 지역의 식량생산의 기원이 전파인지 독립적인 발생인지를 추적할 수 있다. 유라시아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작물과 가축들이 유럽이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것을 알 수 있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은 독립적으로 발생된 것을 알 수 있다.


농작물은 같은 위도에서 전파가 용이하므로 동서로 긴 유라시아 대륙에서 빠르게 전파가 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농작물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요인은 유라시아 대륙이 동서로 긴 축을 가지기 때문이다. 같은 위도는 같은 일조량과 비슷한 기후로 농작물의 성장에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여 전파가 용이하게 해준다.


남북으로 긴 아프라키와 아메라카 대륙에서는 농작물의 전파가 느리다.

유라시아의 동서 축과 달리 아프라카 대륙의 남북 축으로는 전파가 용이하지 않다. 남북으로는 위도가 변함에 따라 일조량과 기후가 달라지기 때문에 농작물의 생육이 달라 쉽게 전파가 되지 않는다. 아메리카 대륙 역시 남북의 긴축을 가지고 있어 전파가 용이하지 않다.


유라시아의 동서 축으로 기술과 발명도 빠르게 전파되어 역사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대륙간의 축의 차이는 비단 식량생산의 전파 뿐만 아니라 기술과 다른 발명품의 전파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축이나 작물을 교환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다른 그와 관련된 기술들도 활발히 교환되었을 것이다. 결국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비해 유라시아의 동서로 뻗은 축은 역사의 행운으로 작용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

동서로 긴축으로 인해 농작물이나 가축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으며, 선점 효과로 인해 다른 야생 동식물의 작물화와 가축화를 막는다는 논리는 타당한 것 같습니다. 유전적인 연구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농작물이나 가축이 전파되었고,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전파가 쉽지 않았다는 부분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지형적인 요인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기원전 2000년 경 서아시아의 작물들이 중국에 전파된 예는 지리적인 잇점의 예로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원전 2000년 경이라면 이미 그 유명한 실크로드가 시작된 시점인데, 그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으로 작물의 전파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리적인 요인보다는 문명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것 같은데요.


한편, 축의 차이가 문명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유럽이 총균쇠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적은 면적에서 인구 집적이 빨랐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농작물이 전파하기 용이했고, 기술의 전파가 용이해서 총균쇠도 전파가 일찍 이루어졌다는 약간 허술한 논리를 펼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책 뒤에 보강하는 논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좀 해보고요.


PART THREE FROM FOOD TO GUNS, GERMS, AND STEEL

CHAPTER 11 LETAL GIFT OF LIVESTOCK

요약

전염병은 전쟁보다 더 치명적이다.

수많은 인간을 죽인 전염병들은 대부분 동물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전염병은 인간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대부분의 전쟁에서는 전쟁으로 직접 죽은 사람보다 전염병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더 많다.


질병은 균의 진화적 전략이다.

미생물도 인간과 같이 자연 선택의 결과물이다. 오랜 진화의 시간동안 효과적으로 자손을 번성시키는 종류가 살아남게 된다. 미생물의 일종인 균의 다양한 이동 방법 중, 숙주에 영향을 주는 방법이 있다. 이런 영향은 인간에게는 질병이라는 현상이지만, 균의 입장에서는 확산을 시키기 위한 진화적인 전략이다.


질병에 대한 인간의 면역도 진화의 산물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균에 대해 인간들도 다양한 대응방법을 가지는데, 이런 대응방법들도 역시 긴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균에 오랫동안 노출된 인간들은 해당 균에 대한 대응방법을 개발하지만, 노출되지 못한 인간들은 적절한 대응방법을 가지지 못한다.


전염병은 인구가 많은 사회를 필요로 한다.

전염병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된다. 전염병은 빠르게 전염이 되고, 아픈 증상을 나타내고, 살아남은 사람은 면역이 생기고, 사람들 사이에만 전염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염병들은 충분히 많은 인구가 같이 모여서 활동하고, 면역이 없는 아이들의 수가 많아야 한다.


농업과 도시의 발달은 전염병 창궐에 유리하다.

약 만년 전에 시작된 농업은 인구를 증가하여 수천년 전에는 도시를 형성하게 되는데, 늘어난 인구밀도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농업으로 인한 정착생활, 해로운 동물, 도시 간의 교역들은 이런 전염병의 교환을 용이하게 해준다.


인간의 전염병은 동물로부터 왔다.

전염병에 대한 분자구조 연구를 통해 인간의 전염병들이 가축이나 애완동물의 전염병과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인간의 전염병은 가축이나 애완동물로부터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축화 이래 인간은 가축과 그리고 애완동물과 밀접하게 지냈으니 이런 해석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전염병은 많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죽였다.

유럽에서 넘어온 전염병은 면역력이 없었던 수없이 많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죽였다. 유럽인과 인디언 사이의 전쟁에서 죽었던 사람들의 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신대륙은 가축 수가 충분하지 못해 치명적인 전염병을 만들지 못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구대륙에서 발생한 반면, 신대륙에서 발생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치명적인 전염병이 가축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신대륙의 가축화된 동물 수가 적어 전염병이 발생하지 못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균은 문명의 차이에 큰 기여를 했다.

단순히 균으로 인해 신대륙과 구대륙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유럽인들이 비유럽인들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발전된 무기, 기술, 정치 조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가축으로부터 전해진 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

저자는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점령하는데 균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고요. 신대륙 외에 다양한 곳에서 유라시아의 균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균의 역할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책의 중요한 핵심 내용이 됩니다.


또한, 저자는 신대륙과 구대륙 사람들 사이의 비대칭적 균에 대한 취약성을 농업의 시작 시기와 가축 수의 차이로 설명을 합니다. 전염병이 기원이 되는 적절한 수와 밀도의 가축이 필요하며, 전파가 용이한 정착과 높은 인구 밀도를 가능하게끔 농업도 필요했다고 합니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균의 진화와 함께 인간 사회의 면역력도 진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런 차이가 결국 균으로 인한 차이를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CHAPTER 12 BLUEPRINTS AND BORROWED LETTERS

요약

문자는 힘의 차이를 가져온다.

역사는 진보라는 관점에서 문명사회는 문자를 가진 것을 특별하게 생각해왔다. 문자는 사회를 강하게 만들어주었으며, 무기, 세균, 중앙 정치조직과 더불어 다른 사회를 정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문자를 가진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로 나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문자들의 개발과정은 비슷하다.

문자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문자가 개발된 만들어진 경우는 많지 않다. 수메르, 멕시코, 이집트, 중국에서만이 문자가 개발된 것으로 여겨진다. 언어의 개발과정은 공통적으로 상형문자로 시작하여 같은 음성을 하나의 문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좀더 추상적인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글자와 문법이 나타난다. 인간의 창의성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문자의 설계 복제

언어학자들은 다른 문자의 설계를 복제하여 전혀 다른 언어를 위한 문자를 개발하며, 실제 역사적으로 이런 예들은 확인이 된다. 설계 복제의 과정에서 필요없는 문자들은 없어지고, 기존 문자에 없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문자들이 개발된다. 로마 알파벳 역시 이런 설계 복제의 결과물이다. 알파벳의 특징은 자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글자들과, 기억하기 위한 순서, 그리고 모임이 제공되는 것인데, 설계 복제로 만들어진 다른 종류의 문자에도 동일하게 발견이 된다.


문자의 아이디어 전파

설계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자의 유용함을 인식하고 착안하여 문자를 개발한 경우가 아이디어 전파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체로키 인디언의 세쿠이야가 백인들이 사용하던 알파벳을 보고 체로키 언어를 배운 것이다. 백인들의 언어와 문자를 몰랐던 세쿠이야는 단순히 문자의 사용 아이디어를 보고 알파벳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와 멕시코 지역에서 독창적인 문자 개발을 했다.

수메르와 메소아메라카의 경우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주변에 문자를 사용한 적이 없고, 긴 시간을 거쳐 문자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독자적으로 개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동 이스터 섬과, 중국, 이집트는 논란이 있는데, 동 이스터 섬은 유럽인들이 유입된 이후에 문자가 개발되어 설계 복제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독자적인 초기 형태가 오랜 기간 동안 변형된 것으로 독자 개발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집트는 짧은 시간에 완성된 형태가 갖추어져 주변 수메르 문자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초기 글자는 극소수만이 사용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며, 모호한 초기 글자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이 되었다. 문자의 사용의 목적이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자의 개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좀더 발전한 알파벳이 개발 혹은 전파되면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공적 관리의 목적으로 사용이 된다.


지리생태적 특성이 문자의 개발 혹은 채택에 영향을 미침

식량 생산은 문자의 등장에 필요 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부분의 문자들이 외부로부터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문자를 사용하는 인접 사회와의 거리도 문자 전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문자 역시 농작물이나 가축과 마찬가지로 동서축과 남서축에 따라 다르게 전파되었다고 보면 지리생태적 특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

저자는 문자가 문명의 발전과 차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하며, 이번 장에서 문자 개발 혹은 전파의 차이의 원인을 지리생태학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문자는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전파를 통해서 보급이 되기에 문자를 사용하는 주변 사회로부터 전파가 용이로운 위치에 있어야 하며, 복잡한 정치구조를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두가지 다 결국에는 지리생태학적 특징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고요.


중간에 문자의 특징, 개발의 어려움, 초기 문자 사용의 특수한 목적성, 지배구조의 필요성, 전파에 용이한 지리적 요건 등을 이야기하는 논리구조는 설득력이 있었는데요. 마지막에 전파의 용이성과 지배구조의 필요성을 뭉뚱그려서 모두 다 지리생태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문자가 전파될 당시에는 단순한 작물과 가축의 전파보다는 교역을 매개로 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동서축에 따른 따른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신 동서축으로 작물과 가축이 전파가 일찌기 전파되고, 인구밀도가 증가하여 복잡한 사회가 일찍 만들어져 문자를 받아들일 여건이 일찌기 마련되었다라고 설명하는게 좀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CHAPTER 13 NECESSITY’S MOTHER

요약

지역마다 기술발전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은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발명이 되기 때문에, 기술 발전의 차이의 원인을 인종의 문제로 보기도 한다. 특정 인종에만 천재들이 나타나는 것은 개연성이 적어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인 차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질문은 이 책에 핵심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일 수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증거들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발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사회에서 필요에 의해 원래 발명의 의도와 다르게 사용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인 경우이다.


기술 축척이 필요를 만든다.

특정 시점에 특정 장소에 등장한 몇몇의 천재들로 인해 세계사가 혁신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다. 혁신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되고, 그것을 사회가 받아들인 것이 주된 요인이다. 기술은 축척을 통해 발전을 이루어지는 것이지 독자적으로 발전되지 않으며, 기술이 발견이 된 이후에 유용한 사용처를 찾게 되면 활용이 되는 것이다.


기술 수용 차이의 근본적인 설명은 아직 없었다.

기술은 경제적인 이익, 사회적 가치, 호환성에 따라 수용이 된다. 사회마다 기술 수용의 차이가 나타나는 요인들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직접 요인들로 그 이면에 감춰진 일반적인 이유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혁신적인 사회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사회마다 기술 수용에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일 수 있다. 그리고 각 대륙의 사회들은 기술 수용에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같은 대륙이라도 각 사회들은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심지어 하나의 사회도 각각 다른 시점에서는 기술 수용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대체로 기술은 전파가 되었다.

한 지역의 기술은 독자적으로 개발되었을 수 있고, 외부로부터 전파되었을 수 있다. 관건은 해당 기술의 독자 개발이 쉬운지에 달려있다. 복잡한 기술일수록 외부로부터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이 전파되는 방법은 교역, 도용, 전쟁, 이민 등 다양하다. 한편, 아이디어 전파의 형태로도 전파가 된다.


기술전파와 유지는 지리적 영향을 받는다.

고립 지역은 기술 전파를 받을 기회가 적다. 한편, 기술이 전파되더라도 고립 지역에서는 사장되는 경우가 있다. 한편, 다른 사회와 인접한 사회는 기술 전파가 용이하며, 기술이 사장되더라도 주변 사회로부터 유입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기술 발전은 자가 촉매적 현상을 띤다.

하나의 기술은 다른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은 자가 촉매적인 특징이 있다. 한편, 하나의 기술은 다른 여러가지 기술들이 종합적으로 같이 사용될 때 효과와 가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 기술적인 발전을 이룬 사회는 새로운 기술이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내기에 빠르게 채택한다.


지리생태학적으로 유리한 유라시아에서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일어났다.

정착 생활과 식량 생산은 인간의 소유를 늘리고, 인구 밀도를 늘려, 기술에 기여하는 인구도 늘려 기술 발전을 가속화시킨다. 가장 큰 대륙인 유라시아는 동서의 긴 축으로 하는 유리한 지리생태학적 환경으로 인구 밀도를 높아 기술 발전과 전파가 효율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뒤집어 발병이 필요의 어머니라는 제목을 담고 있는데요. 기술은 한두명의 천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들이 쌓인 사회가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특별히 기술을 잘 발전시키는 사회가 있는 것은 아니고 어떤 사회라도 일정 수준의 발전의 시간이 뒷받침이 되면 기술을 고도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전반적인 주장은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이고요.


그러나 기술의 전파를 지리생태학인 환경과 연결시킨 것은 비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가축과 농작물이 전파가 잘되는 환경에서는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근거리에 형성되어 한 곳에서 만들어진 기술이 잘 전파가 된다고 확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좀더 그와 관련한 근거들을 제시해주었어야 할 것 같고요. 기술의 전파에 교역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설명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CHAPTER 14 FROM EGALITARIANISM TO KLEPTOCRACY

요약

정부와 종교는 직접 요인 중 하나이다.

정부는 정복을 수행하고, 종교는 이를 정당화시켜준다. 유목민이나 부족사회는 조직화된 정부와 종교에 대부분 패배하여,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정부와 종교는 균, 문자, 기술과 더불어 세계사에 영향을 미친 4가지 직접 요인 중 하나이다.


밴드, 부족, 족장, 국가 사회로 발전한다.

밴드사회는 출생이나 결혼으로 연결된 확장된 가족이나 몇몇 확장된 가족들의 연합으로 구성이 된다.

부족사회는 비교적 생산적인 환경이 필요해서 만 3천년전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먼저 나타났다.족장 사회는 기원전 5500년 경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기원전 1000년 경 메소아메라카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국가는 기원전 37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300년 경에 메소아메라카에서 2000년 전 안데스,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2000년 전에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국가는 족장 사회의 여러 면면들이 확장된 형태이다.


국가는 중앙집권과 종교 애국심으로 다른 사회를 점령했다.

인류의 역사 전반에 걸쳐, 점차 거대하고 복잡한 국가 사회로 이행한다. 이는 국가가 다른 족장, 부족, 밴드 사회를 인구수와 기술의 우위로 쉽게 점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중앙집권적 의사결정으로 군사와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종교와 애국심으로 군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수 있었다.


지역의 인구수와 국가의 탄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 기원에 대한 이론으로는 원래부터 존재했었다는 이론, 루소의 사회계약 이론, 관개시설의 필요 이론 등이 있으나 실제로 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에는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가의 탄생과 지역의 인구수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보인다. 인구수나 밀도가 보다 복잡한 사회로 발전하는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부 위협과 정복에 의해 복잡한 사회로 통합된다.

진화의 원칙에 따라 경쟁에 유리한 사회는 좀더 효율적인 통치가 가능한 복잡한 사회인 경우이다. 사회가 통합되는 방법에는 외부 위협에 따라 서로 통합되는 경우와 정복으로 인해 통합되는 경우가 있다. 인구 밀도는 전쟁으로 인해 복잡한 사회가 나타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구밀도가 낮거나 적절한 경우에는 피정복민들이 정복 사회에 귀속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구가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량 생산과 사회관의 경쟁과 확산은 균, 문자, 기술, 중앙집권적인 정부와 함께 정복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인 생각

종교와 중앙집권화된 국가는 전문적이고 자기희생이 강한 군대를 가져, 상대적으로 비전문화된 군대를 가진 밴드, 부족, 족장국가들을 쉽게 정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탄생은 역시 식량생산으로 증가한 인구와 사회간의 힘의 압력과 정복 전쟁을 통해 발생한다고 주장을 하고요. 전반적으로 이번 장의 이야기들은 납득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비판인데요. 철학적으로는 타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 탄생의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의 계약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국가 탄생을 가능케한 힘의 논리가 현대의 국가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대의 국가 역시 그 존속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기에 일종의 계약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싶고요. 루소는 그 현상을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PART FOUR AROUND THE WORLD IN SIX CHAPTERS

CHAPTER 15 YALI’S PEOPLE

요약

유럽인들은 호주 원주민보다 뛰어나지 않다.

호주 대륙의 원주민들은 원시 상태에 가깝다. 같은 조건 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은 호주 대륙에서 문명을 이룩하게 된다. 이런 사실은 문명의 발전에 인간 자체가 중요하다는 인종 차별적인 결론에 무게를 더해준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호주와 뉴기니의 초기 인류는 환경적으로 격리된다.

4만년전 호주와 뉴기니 주변의 해수면이 낮아 동남 아시아의 인류가 들어오게 된다. 그 이후 해수면이 높아지고 뉴기니와 호주의 인류 사회는 외부와 상당한 기간 격리가 된다. 현격한 환경의 차이는 뉴기니와 호주의 인류 사회가 유전적, 물리적, 언어학적으로 서로 갈라지게 된다.


뉴기니 고산지대에서 식량생산이 시작된다.

뉴기니 고산지대에서는 야생식물들을 작물화하여 농업이 시작되었고, 닭, 돼지, 고구마가 외부에서 유입된다. 뉴기니 해안지대에서는 주로 물고기 수렵하여 식량을 생산하거나 화전 농업이 성행한다. 한편, 저지대에서는 수렵채집 사회가 있었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뉴기니의 발전은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생물학적 지형학적 이유로 뉴기니는 여전히 미개한 상태였다. 먼저, 뉴기니의 식량생산은 지형적 한계가 있어 인구가 많이 증가하지 못했다. 따라서 사회 계급이 나타나지 못했고, 기술을 발전시킬 전문가가 능장하지 못해 철기나 문자가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기원전 1600년 경, Austronesian의 유입이 있을때, 토기, 닭, 개, 돼지가 뉴기니에 보급이 된다.


호주는 식량생산을 하지 못한다.

뉴기니와 달리 호주에서는 농업과 가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조하고 급변하는 기후와 척박한 토양이 그 원인 중 하나이다. 따라서 작물화할 야생 식물이 없었다. 따라서 식량생산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수렵채집 사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따라서 기술의 발전이 없거나 퇴보했다.

철기와 문자, 정치적 사회는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발전을 이룬 식량생산 사회에서만이 가능하기에 호주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초기에 호주로 들어온 동남아시아의 원주민들은 뉴기니의 원주민과 같이 식량생산을 시작할 수 있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환경적인 이유로 이들 기술들은 쇠퇴한다.


뉴기니 원주민 사회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호주나 심지어 아메리카, 남아프리카에 유럽 정착민들이 많은 반면, 뉴기니에는 여전히 뉴기니 사람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뉴기니 사람들은 Austronesian 이동으로 인해 유입된 가축으로부터 유라시아 균에 대한 내성을 가졌기에 유럽인들의 전염병을 견딜 수 있었다. 또한, 유럽의 작물이나 가축들은 뉴기니의 환경이나 기후에 맞지 않아 경쟁력이 떨어졌다.


유럽의 총균쇠로 인해 호주 원주민 사회는 사라졌다.

호주 원주민들은 식량생산을 하지 못해 정착생활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럽인들의 총균쇠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유럽인들이 정착을 시작하면서 호주 원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학살하였다. 한편, 유럽인들이 가지고 온 전염병으로 인해 내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수많은 호주 원주민들이 죽게 되었다.


유럽인들이 호주 원주민보다 호주 환경 적응에 뛰어난 것은 아니다.

호주의 식민지 영국 백인들은 문자와 식량생산, 산업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들은 외부로부터 이들을 가지고 호주에 정착하였다. 심지어 균까지도 말이다. 이런 우위를 바탕으로 호주 원주민 사회를 사라지게 한 것이지, 유럽인들이 호주 원주민보다 호주 환경에 잘 적응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

유럽인들이 유입되면서 호주 원주민 사회는 사라졌지만, 뉴기니 원주민 사회는 살아남았습니다. 식량생산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뉴기니 고산지대에서 정착생활을 하던 뉴기니 원주민들은 Austonesian이 전해준 유라시아의 가축을 받아들이며, 전염병에 대한 내성까지 얻었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이 들어왔을때 유럽인들에게 맞지않는 고산 환경과 전염병의 내성으로 뉴기니 원주민 사회는 살아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 호주는 환경이 너무 척박해서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수렵채집 사회에 머물렀고, 결국 호주에 정착한 유럽인들의 학살이나 전염병의 영향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은 뉴기니에서는 실패(?)했지만, 호주 점령에는 성공을 하게 됩니다. 이는 뉴기니와 호주의 환경의 차이로 인한 각각의 원주민 사회의 상태가 달랐기에 나타나는 차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럽인들이 호주 원주민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을 하는데요. 그런 논리라면 뉴기니 원주민들은 유럽인들보다 우월하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있겠지요. 전반적으로 저자는 이런 논리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뭔가 논리 전개가 장황해서 독자의 해석에 대한 노력(?)이 많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CHAPTER 16 HOW CHINA BECAME CHINESE 요약 광활한 중국은 이른 통일로 단일한 언어권을 형성했다.

중국은 가장 인구가 많으면서도 정치, 문화, 언어적으로 균일한 사회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중국과 남중국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물리적으로 다른고, 환경과 기후도 다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같은 언어를 가지는 이유는 아마도 중국이 이른 시기에 통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언어들이 단일한 언어로 통합되었다.

언어적으로 균일하다고 보여질지는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에는 130개가 넘는 다른 언어들이 존재한다. 물론, 만다린이라는 공통언어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다른 언어들은 몇몇 지역에 흩어져 존속하고 있다. 아마 중국이 통일되면서 공통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지역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몰아내었을 것이다. 한편 남중국의 경우에는 북중국의 영향으로 원래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던 언어를 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농업은 현재의 거대한 중국이 있게 했다.

중국은 독자적으로 식량생산을 시작한 곳으로 북중국은 가뭄에 강한 두가지 작물과 남중국에서는 쌀을 이용한 농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북중국과 남중국은 운하로 연결이되어 교류가 활발해졌기 때문에 일찌기 문화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게 된다. 수렵채집을 하던 남중국의 소수민족 사회는 농경을 중심으로하는 중국 사회에 의해 사라지거나 제한적으로 존속을 하게 된다. 현재의 중국은 동아시아의 최초의 농업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

일찌감치 농업을 시작한 사회가 주변의 수렵채집을 하던 사회를 흡수하거나 몰아내면서 거대한 중국을 통합했다는 주장을 합니다. 언어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하는데요. 다른 장에 비해서 내용도 많이 부실하고 해서 저자의 주장에 신뢰가 그렇게 가지는 못합니다.


언어학적 자료는 시대에 따른 인구의 증가에 대한 면밀한 비교 검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과연 지금 만다린을 사용하는 인구가 과거에도 현재와 같이 압도적으로 많았을까요? 현대 중국의 경제발전으로 주류민족인 한족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저자의 언어학적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지식이 부족하면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장이었습니다. 저자도 설명을 하지만, 진나라의 분서 갱유 사건이 중국의 언어사애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 입니다. 그 이후 언어학적 통일이 많이 이루어졌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농업으로 우위를 점한 사회의 확장으로 인한 언어학적인 영향은 희석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한편, 현대 중국의 공용어 정책과 인구의 증가도 언어학적 결과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데요.


상당히 거슬리는 이번 장이 방대한 분량의 말미에 등장하는 바람에 비판할 의욕도 많이 사그라드는 느낌입니다.


CHAPTER 17 SPEEDBOAT TO POLYNESIA

요약

Austronesian 확산은 지난 6000년 동안 가장 큰 인구 이동이다.

뉴기니의 고산지대 사람들은 4만년 전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고, 저지대 사람들은 3600년 전에 남중국에서 이주해왔다.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 사람들 역시 4천년 전에 남중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이 남중국에서의 이동은 폴리네시아 지역에까지 포함한다.


Austronesian들은 대만이 고향이었을 것이다.

남중국과 자바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언어적으로 유사성을 가진다. 이들은 뉴기니와 호주 뿐만 아니라 폴리네시아 전반으로 퍼져나간다. 이들 언어와 대만 원주민 언어들을 분석해본 결과 이들은 모두 대만의 원주민들이 이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만을 거쳐 Austronesian 지역 확장의 고고학적 증거들이 있다.

중국의 대분갱 문화는 토기, 석기, 가축들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어업을 한 것으로 밝혀져 항해 기술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대분갱 문화는 중국에서 대만에 도착한 이후 Austonesian 지역으로 뻗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중 아웃리거 카누가 개발되면서 멀리까지 항해가 가능해진 것으로 보여진다.


대만을 거쳐 필리핀, 인도네시아로 진출했다는 것은 언어학적으로 증명이 된다.

같은 패밀리에 속하는 언어들의 단어는 비슷한 소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토대로 당시 사회상을 추론해볼 수 있다. 이런 언어학적인 증거들은 초기 Austronesians들이 살았던 지역을 제시해주는데, 고고학적인 증거들과 일치한다. 이를 토대로 중국 남부를 거쳐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로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북뉴기니에서는 Austronesian과 원주민들이 함께 공존했었다.

인도네시아에 도달한 Austronesian들은 뉴기니를 완전히 점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유전학적인 비교를 통해서도 증명이 된다. 언어의 경우 유전자보다 전파가 더 빠르게 되는데, 북뉴기니에서는 Austronesian과 뉴기니 원주민들의 언어가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는 두 종족이 서로 공존하면서 교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Austronesian는 북뉴기니를 점령하지 못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북뉴기니의 Austronesian 문화는 토기의 장식과 분포 지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북뉴기니의 Austronesian 문화 사람들은 해산물에 의존을 하기에 작은 섬에 주로 살면서 다른 섬들과 교역을 하면서 지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교역을 통해 Austronesian 언어는 남뉴기니에 전파가 되었지만, 유전적인 전파는 없는 것으로 보아 Austronesian들이 남뉴기로의 이동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뉴기니에서는 이미 식량생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대부분 수렵채집 사회만 존재하여 Austronesian들이 도래했을때, 그들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뉴기니의 고산 지대는 식량생산으로 많은 인구를 지원할 수 있어서 Austronesian들의 점령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Austronesian들은 이후로 사람이 살지 않는 태평양의 폴리네시아의 섬들로 퍼져나가게 된다.


식량 생산으로 인해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섬들은 정복당하지 않았다.

식량 생산과 기술의 전파가 빠른 지역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점령하게 되고, 자연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적응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Austronesian들은 자바, 뉴기니, 폴리네시아에 흩어져 지역에 따라 철기 문화를 형성하여 왕국을 건설하기도하고, 다시 수렵채집 사회로 돌어가기도 한다. 호주와 아메리카 대륙과 달리 열대 지역의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섬들은 고유한 균과 식량생산을 갖추고 있어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

Austronesian이 중국에서 대만을 거쳐 필리핀, 인도네시아, 폴리네시아 섬들로 퍼져나갔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배우게 되는 유익한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저자는 북뉴기니에서는 고산지대 원주민들이 식량생산으로 인한 많은 인구를 가졌기에 Austronesian과 경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Austronesian들은 남뉴기니로 확산을 하지 못했고요. 대신 태평양의 폴리네시아에는 원주민들이 없어 확산하여 정착을 했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논조는 동의를 합니다만, 역시 몇가지 비약들은 눈에 거슬립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지막 부분에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 대륙과 달리 열대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섬에서 유럽인들의 정복을 당하지 않은 이유를 독자적인 균들과 식량생산으로 보는 것인데요. 마치 유럽인들은 무작정 정복을 하는 습성이 있는 것처럼 가정을 하는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은 금과 같은 자원 때문에 정복을 단행했고, 호주는 죄수들의 추방이라는 목적으로 인해 정복이 되었다고 보는데요. 결국 정복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어느정도 있었기에 정복이 단행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CHAPTER 18 HEMISPHERES COLLIDING

요약

대형가축의 종류수의 차이가 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은 대형 가축이 동반된 식량생산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플라이스토세 후기 남북 대형 야생 포유류의 멸종으로 아메리카 대륙에는 가축화된 대형동물의 수가 적다. 대형 동물 가축은 식량 외에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데 다양한 도움을 주기 때문에 당시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보다 농업 생산성이 높았을 것이다.


기술적인 차이도 생긴다.

식량생산의 차이는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사회를 만들어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가축의 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균의 차이이다. 균의 차이는 다른 모든 기술의 차이와 연결된다. 주목할만한 기술적인 차이는 철기, 군사기술, 기계, 바퀴, 항해기술들의 차이이다.


정치체계와 문자의 차이도 생긴다.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사회는 정치 조직에서도 차이점을 보인다. 많은 유리사아 국가들은 종교를 이용하여 통합을 하거나 정복 전쟁을 정당화시킨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즈텍과 잉카 제국을 제외하면 부족이나 밴드 레벨의 사회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문자발전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문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메리카 사회는 문자를 가지지 못했다.


차이가 생기는 근본적인 네가지 이유

유라시아와 아메라카의 중요한 발전들의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네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이 살기시작한 시기의 차이, 둘째는 작물화나 가축화가 가능한 야생 동식물의 차이, 세째는 사회 확산에 영향을 주는 지형의 차이, 넷째는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 사이의 거리이다.


첫번째 유라시아의 아메리카 정복은 실패한다.

유라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동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그린랜드를 거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는 소수의 인원이 잠시동안만 생존하는데 그쳤다. 식량생산에 너무 높은 위도, 너무 적은 철기, 가난한 국가의 원조로 인해 에스키모인들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정복은 성공한다.

두번째 유라시아의 아메리카 정복은 유럽의 잇점이 효과적으로 나타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식민지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균이었다. 수많은 인디언들이 전염병으로 전쟁을 할 필요도 없이 죽게 된다. 한편 강력한 전쟁 기술을 바탕으로 소수의 병력으로 작은 인디언 부족들이 소탕되게 된다. 50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는 구대륙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개인적인 생각

초반부에 인상적으로 소개되었던 스페인 군대의 아즈텍 점령에서 제기했던 질문을 네가지 근본적인 일련의 차이로 설명하는 장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 사이의 거리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기 보다는 다른 세가지 원인의 결과로 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경쟁력 있는 사회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환경과 지형, 그리고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이 세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를 할 수 있었고요.


그렇게 정리를 해보면,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의 차이는 두 대륙 자체가 워낙 크고 그 내부에 있는 환경과 지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명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더 결졍적인 작용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문명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발전 속도는 겉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작은 시간 차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50년전과의 차이와 1만년 전의 50년간의 차이는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문명의 고도화되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아메리카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사회의 차이가 더 두드려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CHAPTER 19 HOW AFRICA BECAME BLACK

요약

아프리카 흑인들은 매우 다양하다.

현대 역사의 아프리카 흑인들의 노예화과정을 통해 우리는 아프리카 흑인들은 모두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5개의 인종들이 섞여있다. 아프리카는 다양한 지형과 긴 선사 시대를 통해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잘 살펴보면 아메리카 대륙의 선사 시대와 매우 유사하다.


아프리카 인종의 분포

아프리카 대륙의 5개의 인종은 흑인, 피그미, 코이산, 백인, 아시안인들이다. 흑인은 아프리가 북부를 제외한 지역에 전반적으로 분포하고 있고, 피그미는 흑인들이 차지한 지역에 작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코이산은 다양한 언어를 가진 부족들이 아프리카 남부의 작은 지역에 분포한다. 마다가스카 섬에는 Austronesian 아시아인들이 흑인들과 함께 존재한다.


아프리카 언어의 분포

아프리카 언어는 인종의 분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Afroasiatic 언어는 종교적으로 분류되는 주요 언어의 공통 조상언어 역시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피그미들은 주변의 Niger-Congo 언어를 받아들이지만, 자신들만의 독특한 단어가 있어 이들이 주변 흑인들에 의해 포괄되어졌다는 의미한다. Khoisan 언어의 독특한 click에 대한 연구는 Khoisan이 아프리가 전반에 분포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Bantu 언어는 Niber-Congo 언어의 한 부류로 동쪽의 카메룬과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작물화된 식물과 가축화된 동물들

아프리카의 작물들은 네지역으로 크게 분류가 된다: 북아프리카, 사헬지역, 서부 아프리카, 마지막으로 마다가스카 섬이다. 아프리카 기원의 작물들은 모두 북부에서 서식하던 식물인데, 남부의 야생식물들이 작물화에 부적합하여 코이산과 피그미들이 농업을 시작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가축화된 동물들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축화되었을 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프리카 서식 종들이 아니다.


언어학적 고찰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식량 생산은 기원전 5200년경 이집트 지역, 그 이전에 사하라 지역, 기원전 2500년경 서부 아프리카와 이디오피이아에서도 식량생산을 시작되었다고 한다. 언어학적 연구에 따르면 Nilo-Saharan, Niger-Congo, Afroasiatic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농업을 시작한 것으로 판명된다.


Austronesian의 마다가스카르 점령

고고학적인 연구로 Austronesian들이 마다가스카를 점령한 것은 기원후 800년 쯤인 것으로 생각된다. 마다가스카르 지역의 언어는 Austronesian으로 케냐 언어로 부터 차용한 단어들이 있지만, 케냐 언어에는 Austronesian 언어로부터 차용한 언어가 없다. 이것은 Austronesian들이 마다가스카를 먼저 점령하고 동아프리카로 무역로를 개설했는가에 대한 강한 힌트가 된다.


식량생산이 가능했던 Bantu의 확장

기원전 3000년 경 서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농업을 시작한 Bantu 족은 동쪽과 남쪽으로 확장을 해나간다. 기원전 100년 경에는 철기를 획득한 Bantu는 남쪽으로 하강을 하기 시작한다. 농업을 하지 못했던 피그미와 코이산들은 Bantu에 의해 포괄되지만, Bantu의 여름 작물이 적합하지 못했던 남부 아프리카 지역의 코이산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시킨 이유

아프리카는 인류가 나타난 곳으로 유라시아에 비해 늦은 발전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가축화할 수 있는 야생도물의 부족, 작물화할 적절한 야생식물의 부족, 그리고 농업과 가축의 확산이 어려운 대륙의 남북 축 때문이다. 인종의 차이로 인한 원인이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시킨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제일 먼저 나타났으므로 발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졌지만, 야생 동식물의 중류가 농업을 시작하기에 부적절했고, 남북의 긴 축으로 어렵게 시작한 농업과 가축들이 확산되기에 부적절해서 결국 발전이 늦었다고 설명을 합니다. 중간에 언어학적인 고찰로 피그미와 코이산 족들의 역사적 분포를 추론해내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의 막바지에 도달하면서도 몇가지 이의를 제기해봅니다. 저자가 이야기한 환경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의를 합니다만, 현대에 나타난 우열에 얼만큼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군사적 기술적 우열이 점령 전쟁의 성패를 나타내는 만큼, 다양한 국가가 몰려있었던 유럽에서의 긴장이 군사적 기술적 경쟁을 가속화시켠 것이 이유가 아닐까요? 물론, 다양한 국가가 몰려있는 것도 지리적 환경적 요인들이 원인이 될 수 있을텐데요. 그렇다면 그런 과정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편, 아프리카 대륙의 대형 동물들이 가축화되지 않은 이유도 조금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초반에 작물화나 가축화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선택에 개입하여 급전적인 유전적 변화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장에서는 아프리카 동물과 식물들은 가축화나 작물화가 힘든 여건이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이미 가축화된 동물들의 속성과 그렇지 못한 동물들의 속성을 비교하는 hindsight fallacy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CHAPTER 20 WHO ARE THE JAPANESE?

요약

일본 민족의 유래에 대한 네가지 이론

동아시안들과 비슷한 외모의 일본인, 외형적으로 다른 아이누족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아 동아시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아이누족을 몰아냈다는 이론이 타당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일본은 자신들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믿고 싶어하기에 이런 이론보다 원래 고대로부터 일본인들이 일본땅에 살았다는 이론을 선호한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건너왔어도 한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이론도 존재한다. 서구나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넘어간 사람들이 일본인이 되었다는 이론이 있다. 한편, 이 세가지가 혼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이론도 있다.


일본의 지리와 환경

일본은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어 대륙의 침략을 적게 받아 이색적인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기후는 쌀 농업에 생산력을 높여주어 농업 단위 면적당 인구수가 높다. 산림지대가 많아 대규모 목축을 하기에는 어려웠지만, 대신 수산 식품들이 풍부하다. 이는 일본의 선사시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이다.


유래에 관련된 모순된 증거들

일본인들은 생물학적으로 동아시아인에 가깝고 농경 생활을 하는데, 일본에 건너온 동아시아인들이 백인에 가깝고 수렵채집 생활을 아이누를 몰아냈을 것이라고 해석이 된다. 하지만, 일본의 언어는 동아시아의 다른 언어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한국어와 가깝다고 하더라도 최소 5000년 전에는 분리가 되었다고 해석이 된다.


구석기 문명 유입, 토기의 발명

일본 북부의 석기는 시베리아나 북중국의 그것과 비슷하고, 일본 남부는 남 중국이나 한국과 비슷한데, 이를 토대로 북부와 남부 모두 아시아와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의 토기는 독자적으로 매우 이른 시기에 발명이 되었는데, 해산물이 풍부하여 농경없이 정착생활을 한 것으로 보여준다. 토기로 인해 식량화할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나면서 인구도 급증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조몬 문화 - 수렵채집의 정착 생활

조몬 시대에는 풍부한 견과류, 수산물, 동물, 식물들로 인해 정착생활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토기와 마제석기, 주거지 형태가 정착생활이 있었을 것이라 근거를 제공한다. 농경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근거들은 발견된다. 당시 중국과 한국에서는 농경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서 전해진 농업은 풍족한 환경에서의 수렵채집보다 생산성이 떨어져 본격적인 농업은 시작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야요이 문화 - 농경 생활과 계급사회 출현

기원전 400년경 한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인해 두번째 인구 폭발이 일어난다. 큐수의 북쪽 해안에서부터 철기가 발견이 되고 본격적인 농경생활이 시작된다. 한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야요이 토기, 동제품, 바느질, 유리 구슬, 지하 쌀저장고, 항아리 매장법 등이 발견된다. 이는 빠른 속도로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거대한 규모의 고분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현대 일본의 조상이다.

야요이 문화의 시작은 원래 거주하던 조몬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가설과 한국 이민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책에서 설명하는 일반적인 가설에 따르면 후자가 더 설들력이 있다. 조몬, 야요이 사람들의 골격과 유전자에 대한 분석에서도 현대 일본인들을 야요이인에 가깝고 아이누인들이 조몬 사람들에 가깝다. 현대 일본인의 조상인 야요이인들을 한국에서 이주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언어학적 근거에 기반한 반론에 대한 반론

한국 이민자들이 인본인들의 조상이라는 주장은 고고학적, 인류학적, 유전학적인 증거들로 뒷받침이 된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가 생기기에는 2400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에 대해서는 큐슈의 조몬 언어와 야요이 언어가 현대 아이누어와 한국어와 상당히 달랐다고 설명을 할 수 있다. 고대 큐슈 지방의 조몬 언어가 Austronesian 언어와 비슷하다는 증거가 있어, 아이누어와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고대 한국에는 다양한 언어가 있었고, 그중 하나인 신라어가 현대 한국어가 되었지만, 신라어와 차이가 있었던 고구려 언어가 일본에 전달되었기에 현대 한국어와 일본어에 현격한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

예전에는 부록으로 간단하게 언급되었던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20주년 판에서는 내용이 대폭 추가되어 20장으로 나왔네요. 익숙한 내용에 원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모양인지, 그동안 유지했던 논리적 부족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눈녹듯이 사라져 버렸네요. 확신 편향에는 답이 없는 모양입니다.


2500년 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라는 주장은 고고학적, 인류학적, 유전학적 근거들로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고 합니다. 현대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의 큰 차이는 2500년이라는 시간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언어학적 반론에 대해서는 고대 일본어와 한국어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확신편향이라는 가책을 아주 조금 의식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ㅋㅋ


동아시아 정치 미래를 위해 고대 형제애를 회복하라는 저자의 오지랍에 대해 즉각적인 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일본에 대한 반감은 다니엘 캐너맨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언급한 1차 시스템에서 자리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2차 시스템을 작동시켜보면 일본과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은데요.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친일 과거사에 대한 청산, 납득하고 받아들일만한 일본의 사죄 등등요…


EPILOGUE THE FUTURE OF HUMAN HISTORY AS A SCIENCE

요약

환경의 차이가 세계사의 차이를 만들었다.

얄리에 대한 답은 오랜 시간 생겨난 세계사의 차이는 사람들간의 능력 차이가 아닌 그들이 처해진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네가지 중요한 차이는 작물, 가축화가 가능한 동식물의 차이, 대륙내 확산 혹은 이동의 용이성, 대륙간 전파의 용이성, 인구수의 차이로 요약할 수 있다.


연구되어야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

여러지역들을 통시적 관점에서 비교한하는 것은 단일 사회의 단편적 연구에서는 얻을 수 없는 중요한 이해를 얻게 해준다. 물론, 이 한권의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보다는 이 책에 나오는 몇몇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물가축화 가능한 야생식물과 동물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정량적 연구가 필요하며, 대륙 간의 확산에 대한 연구도 정량적 연구가 필요하다.


왜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패권을 가지지 못했나?

사실 유럽은 식량생산이 늦게 시작한 곳이다. 이에 비해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은 일찌기 식량생산을 시작했는데, 왜 이들이 아닌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가지게 되었는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현재 황폐한 지역이 되었다. 이는 식량생산이 시작되었지만, 파괴되기 쉬운 환경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적인 발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잘연결되어있는 지역은 오히려 기술발전에 불리하다.

중국은 너무 잘 연결되어있는 지형으로 일찌감치 통일이 되었다. 초기 인도와 아프리카까지 교역했던 항해술의 발전은 정부의 폐기 방침으로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했다. 콜럼부스의 예와 같이 여러 국가로 나뉘어있던 유럽은 한 국가가 특정 기술을 억압해도 다른 국가가 발전시킬 수 있고, 이런 기술들은 다른 국가로 전파가 된다. 각 국가가 통일되지 않도록 분리된 지형의 유럽이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다.


패권은 변하는데 초기 패권이 의미가 있는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의 경우를 보면 세계의 패권은 변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대만, 한국, 말레이지아 일본과 같이 새롭게 힘을 키우는 국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초기 환경에 의한 효과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이들 새롭게 힘을 키우는 국가들도 사실은 초기 환경에 의해 발전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문화적인 요인들에 대한 연구는 환경적 요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한다.

문화적인 차이도 환경적인 차이에서 기인하기는 하지만, 환경과 관계없는 문화적인 차이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오스 이론이 이야기하듯이 처음에는 큰 의미가 없는 문화적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큰 차이로 발전해서 광범위하고 오랜기간 동안 영향을 미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환경적 차이 이후에 나타나는 문화적 요인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필요하다.


인간들의 차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히틀러의 암살이나 사고의 결과가 달랐다면 세계사의 전개도 달랐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세계사의 한 위인이나 개인의 영향은 지대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한 개인의 영향은 특정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사회의 특징에는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과학으로서의 역사

역사를 과학으로 보는 시각은 적고, 역사학자들은 과학과 과학 방법론을 공부하지 않는다. 역사과학은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방법론, 인관관계, 예측, 복잡도와 같은 부분을 공유한다. 역사 과학은 자연실험의 방법을 활용할 수 있으며, 보다 직접적인 인관관계를 연구할 수 있다. 한편, 역사에서의 예측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역사가 다루는 현상들이 다양한 인과관계가 얽혀 복잡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렵기는 하지만, 역사과학을 추구해야 한다.

어렵기는 하지만 역사과학은 필요하다. 다른 과학들에서 종종 사용되는 자연 실험은 역사과학에도 유용하다. 생태학이나 인류학에서 사용되는 자연실험들은 많은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성공적인 경우도 많이 있다. 역사적 사실들을 분석하기 위한 방법론들도 많이 등장하여 공룡, 천체, 빙하의 역사들은 더 이상 인문학이라기보다는 과학이라고 불리운다. 앞으로 인간 사회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에도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로부터 유익함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에필로그에서 얄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아닌 환경적인 차이가 세계사의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다시 한번 강조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중국이 아닌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을 합니다. 이 부분은 별도의 장으로 조금더 심도있게 다루었어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얄리에 대한 질문은 궁극적으로 왜 유럽이었느냐였을텐데요. 대답을 위한 준비를 잘 마치고 급하게 마무리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 환경 결정론이라는 비판에 대한 항변도 하면서, 그에 반대되는 문화나 개인 결정론에 대해서도 반박을 합니다. 문화 역시 어느 정도는 환경적 차이를 기반으로 차이가 나타난다고 하고, 개인의 영향력 역시 당시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기존의 역사 연구와 다른 과학적인 방법을 취했고, 앞으로의 역사 연구도 그래야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뉴기니 다양한 섬에서 경험한 자연실험을 통해 얻은 가설들을 다른 곳의 역사에도 적용하는 저자의 방법론은 과연 기존의 역사 연구 방법론과는 차별화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실증적, 주관적 역사방법론들보다는 저자의 과학적 역사방법론이 마음에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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