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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바람의 독서노트


2023년 7월 경제 모임에서 작성한 독서노트입니다.


Preface to the Revised Edition

책의 첫 판이 나온 이후 세상은 많이 변했다. 최초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살던 때와는 매우 다른 세상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베를린 장벽 붕괴를 필두로 동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를 채택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경제가 쇠퇴하였고, 중국 경제는 두드러진 성장을 이루고 있다.


The Berlin Wall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동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를 수용한다. 반면, 소련은 기존의 국가 독점이 개인 독점으로만 바뀌었을 뿐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 한가지 교훈은 시장 경제를 보호해줄만한 법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Japan: Land of the Setting Sun?

세계를 주름 잡았던 일본의 경제는 쇠퇴하였다. 대기업 우선 정책으로 인한 약화된 경쟁으로 기업들의 경쟁력이 줄어, 서비스 산업 전환과 정보 기술 습득에 늦었기 때문이다. 침체기에 이자율을 너무 늦게 내리는 등, 효과적이지 못한 금융정책과 더불어 일본 경제는 쇠퇴하게 된다.


China Awakens and Roars

중국은 전세계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과감하게 자본주의를 채택한 것이 커다란 이유였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조만간 일본이 겪었던 것과 같은 심각한 도전을 받을 것이다. 중국의 미래는 선진국이 되면서 변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Attitude Over Latitude

경제학 교과서들은 자연지리적 혜택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촛점을 맞춰왔다. 실제로 이런 잇점들은 오히려 저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리적 위치보다 경제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지혜를 잘 활용하느냐는 한 국가의 경제에 대한 태도를 갸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4th edition의 개정판 서문의 내용이 3rd edition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망했습니다. 본문도 많이 다르지 않을까하는 실망도 미리 해보게 됩니다.


현대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이슈들은 과거 경제학자들이 지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서문의 골자일 것 같은데요. 일본의 잘못된 금융, 통화정책을 예로 들면서 케인즈의 가르침을 이 책에서 잘 설명했다고 하면서 타박하는 부분은 재미있었습니다.


한가지 걱정스런 부분은 현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경제 사상사를 기술했다는 편향성인데요. 따라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거나 편향적일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읽어보면서 눈여겨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Forward

오늘날 미래에 대한 적절한 계획을 위해서는 경제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경제 정책을 둘러싼 논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제학자들의 생각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는 이 책을 통해 영향력이 큰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살펴보면서 경제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들을 소개한다.


개인적인 생각

3판에는 없었던 추천사 같은 글이 나오네요. 경제적 지위가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려고 하는데, 그것은 또한 경기 침체의 위험성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도 있지요. 뉴스나 신문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많은 화두들은 경제와 관련된 것이 많죠. 그만큼 우리는 경제적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지난 기간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사를 먼저 보는 것이 도움이 되듯이, 경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경제 사상사를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경제 사상사부터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드네요. 좀 두껍지만, 모두 화이팅 하시기 바랍니다.


Chapter I Introduction: The Plight of the Economist

경제학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학은 어려운 선택에 관한 학문으로 어떤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이해시켜줄 뿐이다. 정치와의 밀접한 연관성도 경제학을 어렵게 한다. 역사적으로 정치가와 경제학자들은 대립과 협력을 반복해왔다. 경제학의 주제는 변화가 심해서, 경제학의 모델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 이 역시 경제학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The Genesis of Economics

성경,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신학자들은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만, 실질적인 경제학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 유럽 왕정에 국가의 발전을 위한 조언을 해주었던 중상주의자들은 경제학에 영향을 미친다. 중상주의 정책을 비판했던 아담 스미스는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진정한 부의 척도이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부가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개인의 동기와 발명, 혁신이 경제를 발전시켜 커다란 번영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여기서부터 현대 경제학이 시작된다.


Should We Ignore the Economist?

주류 경제학 이론들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이론이 주는 교훈을 무시하면 않된다고 경고하지만, 여러 국가들은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수준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예상은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놀랍게도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주는 많은 교훈들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

비교적 분량이 짧은 1장은 책의 서문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학문에 비해 경제학은 복잡한 현실 세계를 다루고, 실질적인 삶과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쉽지 않은 학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루는 대상이 복잡하기보다는 정치사회적인 부분과 너무 깊이 야합하여 경제학 이론이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살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철학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그렇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 지위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경제학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에서 철학을 공부하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올 책의 내용들이 기대됩니다.


Chapter II The Second Coming of Adam Smith

당선 축하 파티에 아담 스미스 넥타이를 착용했을 정도로 레이건 정부의 경제 정책은 스미스의 사상을 중시했다. 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되던 계몽주의 시대에 태어난 스미스는 원래 성직자가 되려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와 신이 없이도 도덕적 담론이 가능하다는 스승 애치슨의 영향으로 성직자가 아닌 학자가된다. 경제학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스미스는 법학에 관련된 강의에서 경제적 개념에 관한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Smith the Philosopher

그 유명한 국부론이 나오기 이전 이미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으로 유명해진다. 도덕 감정론에서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가 이기적인 개인자가 작용하여 도덕적으로 합당한 행동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도덕적 센스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스미스에게는 적용해서는 않된다. 스미스는 철학자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상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To France and Physiocrats

1764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벅클르후 공작 아들의 가정교사가 되어 동행한 프랑스 여행에서 스미스는 중농주의를 접하게 된다. 중농주의자들은 생산을 통해서만 부가 발생하고, 농업만이 부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의 분석에 많은 부분 동의를 했지만, 농업만이 부를 생산한다는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병약했던 공작의 아들이 죽고, 스미스는 돌아와서 10년간 학자들과 교류하며 집필에 집중한다.


The Wealth of Nations

국가의 부의 원천에 대한 탐구라는 제목이 국부론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스미스는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경제 주체인 안간을 먼저 이해하려 한다. 모든 인간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이 있으며, 이런 자연스러운 욕망을 활용해서 국가의 부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의 이기심을 억눌러서는 안된다. 이기적 관심에 따라 개개인이 행동하지만, 자유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조화를 통해 국가의 부가 창출된다.


The Free Market at Work

보이지 않는 손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치가 늘어나는 생산을 하도록 강요하게 되고, 사람들은 사회의 요구에 맞는 상품을 만들게 된다. 때로는 구매자가 높은 가격을 기꺼이 받아들여 과도한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다른 판매자가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으므로 높은 가격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산업은 중앙의 계획이 없어도 정상적인 수준의 이익을 만들어내게 된다.


Division of Labor

스미스는 노동 분업에 따른 생산 증가로 인해 국가의 부가 향상이 된다고 이야기 한다. 노동 분업은 숙련도 향상과 직무 전환의 최소화로 생산력을 증대시킨다.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직무에 집중하게 되면 각 노동자들이 작업 효율을 늘리는데 보다 더 노력을 기울여 기술적인 발전도 이룩할 수 있어, 생산이 늘어나게 된다. 한편, 노동 분업으로 인해 직업별 임금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Division of Labor Among Towns and Countries

국가의 부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분업과 더불어 자유 무역이 필요하고, 이는 지역, 국가간 분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국가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품 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시장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각자가 자신이 관심있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어도 가격에 따른 재화 분배의 최적화가 이루어진다. 이런 자유 시장 시스템은 하이예크나 밀턴의 지지를 받고, 사회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A Theme for the Common Man

스미스는 자유무역과 노동의 분업이 지배계급보다 일반인들의 삶의 질을 높일 것으로 확신했다. 한편으로는 노동의 분업의 문제점도 기꺼이 인정하여 공교육을 통해 노동자들의 정신도 높일 것을 제안한다. 아담 스미스는 노동이 경제 성장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노동의 증가와 분업, 그리고 새로운 기계를 통한 노동의 품질의 향상이 가속화된다고 보았다.


Policies and Practice

스미스는 단순한 상아탑 이론가는 아니었다. 그는 세상이 자신의 이론을 받아들이도록 적극적으로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을 만났다. 그는 항상 가장 좋은 정책들을 제시했고, 걸림돌들을 인식하고 피하는 방법들도 제시했다.


Domestic Trade Restrictions

실제 과도한 이익이 발생하는 산업이 많았는데, 경쟁이 가격의 낮추어 합리적인 이익을 만든다는 스미스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자연적 조건, 정부의 규제, 문화적 특징 등에 의해 새로운 경쟁자가 참가하기 어려운 경우와 독과점의 상태에서 가격 담합이 이루어지는 경우로 나누어 설명한다. 국제 경쟁 및 새로운 기술에 의한 경쟁의 등장으로 현대 경제학자들은 아담 스미스의 주장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International Trade Restrictions

외국 상품과 경쟁이 없으면 국내 상인들은 높은 가격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인기가 있었고, 스미스는 이에 대해 개탄을 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우는 자유 무역이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준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예들이다.


The Free Market Is Not a Pain-Free Market

스미스는 국내 세금과 같은 수준의 관세나 국방과 관련된 산업의 보호를 위한 관세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유 무역을 방해하는 관세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반대한다. 특히, 발전 초기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스미스는 정부의 역할은 국방, 법률 시스템 관장, 공공 서비스 제공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The Second Coming

1980년대 레이건 정부는 스미스의 주장을 채택하고 정부의 규제를 없앤다. 규제없는 시장에서 가혹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외국의 다른 기업들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고, 다양한 혁신적인 상품들을 개발할 수 있었다. 스미스는 시장과 경제를 가르쳤으며, 국부론은 대부분의 경제학과 관련된 내용들을 다룬다.


개인적인 생각

레이건 시대의 아담 스미스 넥타이로부터 시작하는 도입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왔습니다. 도덕 감정론을 언급하면서 철학자인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가 되는 과정의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자유 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이 분업과 상호작용하면서 경제 주체들의 부를 어떻게 증진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저자가 자유무역의 적극적인 옹호자여서 그런지 몰라도, 자유 무역에 따르는 부정적인 비판 부분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따라 전체적인 경제의 발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자유 무역의 세계화가 미치는 개발 도상국이나 후진국의 영향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보이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어쨌든, 현대 자본주의 역사가 증명을 해주었듯이 자유시장이 외부적으로는 가장 효과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다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빈부 격차의 심화 역시 자유시장 시스템이 가지는 필연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류가 나아가야하는 길이 경제적 물질적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사회 통합과 같은 비물질적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쉽게 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Chapter III Malthus: Prophet of Doom and Population Boom

맬서스는 유명하기도 했지만, 케인스가 그를 찬양하기 전까지 사람들로부터 박한 평가를 받았다. 맬서스는 인구과잉이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 주장하며, 유토피아를 기대하던 사람들의 낭만적인 꿈을 앗아갔다.


Bursting Utopian Bubbles

프랑스 혁명과 영국 프랑스간의 전쟁의 소용돌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꾸게 된다. 당시 팽배했던 고드윈, 루소, 페일리와 같은 낙관주의자들의 주장에 맬서스의 아버지는 동조하였다. 맬서스는 아버지와의 긴 논쟁 끝에 인구론을 출판한다.


The Frightening Theory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 생산은 산술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식량부족으로 인한 인류 사회의 고통은 필연적이라고 한다. 이런 인구수의 증가는 기근이나 전염병으로 자연적인 방법이나 교육을 통한 산아제한과 같은 예방적인 방법으로 어느정도 조절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빈곤층은 교육의 기회가 없어 산아 제한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인구의 증가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맬서스의 이론은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의 책도 인기를 끌게 된다. 아버지로 인해 익명으로 출판했던 1판과 달리 2판부터는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동인도 회사의 교육 학교였던 Haileybury College로 옮기면서 최초의 정치 경제학 교수가 된다.


A Good Soothsayer?

몇가지 명백한 통계학적 결함과 더불어 맬서스는 약품의 개발, 농업 기술의 발전, 산업 혁명으로 인한 역사의 변화를 읽어내는데 실패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발전에 따라 인구 변화는 네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초기 높은 출산율과 사망율로 인한 안정 단계, 사망율 감소로 인하 증가 단계, 출산율 감소로 인한 조정 단계, 낮은 출산율과 사망율의 안정단계로 나뉜다. 맬서스는 2번째 단계만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스파르타와 로마와 같이 사회가 성숙하면서 인구수가 안정화되거나 감소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으로 보면 맬서스의 실수는 용인해주기 어렵다.


Doomsday Postponed?

1960년과 1970년 사이에 Club of Rome이나 Global 2000 Report에서 나타나듯, 공해, 인구, 에너지 가격 상승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예측하는 맬서스와 같이 비관적인 경제학자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실제로 자연 자원은 고갈되거나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고, 농업기술의 혁명은 생산성을 증가시켰다. 개발도상국이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인구 상황은 맬서스의 예측에 맞을 것 처럼 보이지만,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나타나는 교육으로 인해 인구수 성장은 안정화되게 된다. 시장 경제는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는데, 시장을 통해 수요와 공급이 조절되고, 일시적 가격 상승은 대체 자원이나 새로운 기술 개발을 촉진시킨다.


Malthus and the Immigrants

맬서스는 이민 정책에 초기에는 그 효용성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후에 정부의 정책들을 지지하게 된다. 현대 이민 문제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낮아진다는 점과 새로운 이민자들이 동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와 같이 이민자들이나 그의 후손이 기여한 부분들도 고려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고 부유하게 되고자하는 사람들을 미국은 환영해 왔었다. 베이비 부머 세대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도 더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된다.


Global Warming: Malthus’ Revenge?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는 맬서스의 인구 증가로 인해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파괴된다는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런 주장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에 따라 리카르도 방식으로 더 유리한 산업을 선택해서 발전을 이루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자연재해로부터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배출하는 공해에 대한 세금을 매기는 방법을 제기하는데, 이들을 피구 클럽이라고 한다.


His Last Days

맬서스는 말년에 사교클럽 활동을 즐겼으며, 왕립 협회 소속으로 종신 연구 기금을 받게 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와 무역 정책이나 경제 공황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나눈 것도 유명하다. 비평가들은 맬서스가 좋게는 엄격한 사람으로 나쁘게는 도깨비와 같이 묘사를 한다. 맬서스는 자신의 비평가들이 너무 낙관적이기에 미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

맬서스의 주장인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와 산술적인 식량 생산 증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미 판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한 장을 부여해서 설명한 것이 궁금했습니다. 한스 고슬링은 팩트풀니스에서도 자세한 수치적인 자료로 이런 비관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맬서스의 영향이던 아니던 암울한 미래를 예상하는 염세주의적인 생각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따지고보면, 다양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나오는 고도로 기술이 발전한 미래는 대부분 유토피아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인 경우 들이 많은데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주어진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염세주의적 생각들을 보편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드는 느낌이나 감정에 부학되기에 맬서스의 주장들이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요?


지구 온난화와 관련해서 기업별 세금을 매기는 방법에 대해 저자는 나름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요. 팩트풀니스에 나왔던 파리 기후 협약에서의 인도 대표의 주장이 생각이 났습니다. 18세기 산업 혁명부터 무제한 적으로 탄소를 배출해왔던 선진국들만큼 개발도상국가나 후진국들도 탄소를 배출해야 공평한 것이다라는 주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현재의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이미 배출된 탄소로 인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문제의 해결의 책임 역시 많은 탄소를 배출하여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국가들이 우선적으로 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습니다.


Chapter IV David Ricardo and the Cry for Free Trade

리카르도는 경제학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주식시장에서 많은 돈을 번 실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적 논점에 대해 다른 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펼친다. 특히 맬서스와의 논쟁은 유명한데, 직접 만나 경제 문제에 대한 논쟁을 벌인 이후에 평생의 친구가 된다. 리카르도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가 된다. 후에 정치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추천으로 런던 지식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의회 의원이 되어 정치적 자유와 자유 무역을 위한 목소리를 높인다.


A Tricky but Brilliant Theory

당시 의회는 리카르도의 무역에 대한 견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리카르도가 매우 복잡하고 직관적이지 않은 경제학 법칙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Corn Laws가 제정되어 농산물의 자유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의 절대 우위에 따르면 국내 가격보다 비싼 물건들은 수입을 할 필요가 없다. 리카르도는 비교 우위의 개념을 통해 적은 기회비용의 희생을 통해 특정 산업을 특화시킴으로 전체적으로 생산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The Battle Against Protectionists

자유 무역은 국민들이 생산성이 적은 산업을 피하고 높은 생산성의 산업에 종사하게 하도록 해주는데, 적은 희생으로 더 많은 생산물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낮은 생산성의 산업의 종사하는 사람들은 직종을 바꾸는 고통을 감수해야만한다. 보호 무역보다는 자유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정부는 직종을 바꾸어야 하는 사람들을 직접 지원해주는 것이 더 낳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국가들은 관세와 무역에 대한 협정을 맺어 무역을 하는 국가들이 증가한다. 하지만, 리카르도가 주장한 것처럼 생산력의 격차가 있는 국가들간의 교역보다는 비슷한 생산력을 가진 국가들의 교역이 증가하게 된다. 전략 무역 이론이나 신 지리 이론가들은 이런 현상을 기업들의 전문화에 따른 규모의 경제의 혜택으로 설명한다. 기업들은 특화를 통해 특정 계층을 타켓으로 하고, 특정 산업에서는 대형화를 통한 고효율을 이룬 특정 기업들만이 전세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게 된다. 기업들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더라도 담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유명한 게임 이론인 죄수의 딜레마의 설명에 따라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이런 전략 무역 이론이나 죄수의 딜레마가 리카르도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특정한 조건에서 리카르도의 이론에 반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리카르도의 이론은 매우 복잡하지만, 전적으로 옳으며 현대 세계에도 적절하게 적용이 된다.


A Fork in the Future

비교 우위론을 통해 리카르도는 영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무역을 통해 번성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리카르도의 경제 성장과 지대와 관련한 분석은 결국 경제가 발전하더라도 결국 지주만 성공하고, 자본가는 실패하고, 노동자는 그대로인 정체 상태에 처할 것이라는 암울한 결론에 도달한다. 리카르도의 지주와 지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미국의 헨리 조지에 영향을 미쳤다. 헨리 조지는 경제적 지대에 무거운 과세를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적 지대와 단순 지대 사이에는 차이가 있고, 이익의 전달과 구별이 어려워 경제적 지대에 대한 과중한 과세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되기 힘들다. 한편, 현대에 들어서 지대와 지대 수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리카르도와 동시대를 살았던 맬서스는 지주의 편에 서서 수입의 금지를 통해 중요한 기반이 되는 곡물의 국내 생산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하며 Corn Law를 지지한다. 그러나, 리카르도는 지주들이 외적인 영향 때문이지, 의도적으로 국가의 부를 빨아들인다고 보지는 않았다.


Ricardo vs. Malthus on Gluts and Method

맬서스는 일반적으로 공급과잉이 나타난다고 했지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게 되므로 침체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세이의 주장을 옹호한다. 맬서스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공황을 주시하며,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고 저금을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리카르도는 저금된 돈이 대출되어 투자나 소비로 이어진다는 아담 스미스의 주장은 언급한다. 공황에 대해 맬서스를 옹호한 케인스 이전 대부분 유명한 경제학자들은 리카르도를 지지한다. 맬서스와 리카르도의 중요한 차이점은 그들의 방법론에서 나타난다. 리카르도는 맬서스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은 일시적 해석보다는 보다 영구적인 상태에 대한 법칙을 찾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고 했다. 맬서스의 방법론은 그 유연함으로 칭송되었고, 리카르도의 방법론은 경제학적 방법론을 고안했다고 하여 칭송받는다. 막대한 재산을 가졌음에도 리카르도는 말년까지 연구와 저술에 몰두한다.


개인적인 생각

경제 문제에 대해 여러모로 다른 관점을 가진 리카르도와 맬서스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생각이 다르더라도 평생을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우리 북클럽에서 찾는게 빠르겠지요? 어쨌든 두 사람의 관계는 토론을 통해 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관철시키기 보다 무언가 배워 자신의 생각을 다듬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의 징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리카르도의 비교 우위론은 워낙 유명해서 쉽게 설명해 준 책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이 책의 예는 약간 다른 책들의 예에 비해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생산물의 단위나 시간의 단위기 약간 커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유시민 작가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에서의 설명이 이해하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지대는 부의 상속, 빈부 격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매니저가 지방 유지와 같은 집안의 사위기 되었는데, 장인이 물어봤던 이야기가 “일을 계속 해야돼?“였다고 합니다. 실리콘 밸리 빅테크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잘나갔건만, 결국 매니저는 40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했습니다. 아내가 상속받은 건물들 때문에 아내가 계속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고요. 어쨌든, 지대의 위력이 이럴진데, 저자는 헨리 조지 토지 공개념과 리카르도의 차액지대론을 폄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hapter V The Stormy Mind of John Stuart Mill

존 슈트어트 밀을 통해 고전 경제학의 기반에 깔려있는 철학적 충돌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는 경제와 자본주의의 윤리적 기반에 대한 어려운 질문들을 던졌다. 아버지 제임스 밀은 세살부터 영재 교육을 시켰고, 밀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시대를 앞서나가는 혜택을 받았지만, 어린 시절을 희생하게 된다. 프랑스에 유학하던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매료되었고, 제임스 밀과 리카르도와 함께 웨스트미니스터 리뷰를 통해 공리주의를 설파한다.


Jeremy Bentham: Pleasure, Pain and Arithmetic

인간은 고통과 즐거움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한 벤담은 인간은 즐거움이 극대화되는 선택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 운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한다. 벤담은 고통과 즐거움의 정량화할 수 있는 행복 계산법을 제시한다. 밀은 벤담의 이런 과학적인 방법론을 받아들여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급진적 공리주의 학파는 민주주의와 발언의 자유를 중시하여 기본적으로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지지하지만 공리주의 산법에 따라 폐기할 수 있다. 밀은 동인도 회사에 취직했을 무렵부터 공리주의 사회를 설립하여 다른 회원들과 심도있는 토론을 오랜 기간동안 한다.


The Thinking Machine Conks Out

20세가 되어 밀은 중년의 위기를 겪는다. 학자로서 성공을 거두지만, 그는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았고, 절망 속에서 자살까지 생각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하는데, 엄격한 아버지로 인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밀에게는 인간이 죽은 것이다. 이성의 시대에 밀은 열정을 추구했다. 그의 자서전에는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Rebirth as Romantic

밀은 벤담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정신을 이끈다고 비난하고, 고통과 즐거움과 상관없이 정신적 성숙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밀은 해리엇이라는 유부녀와 불편한 삼각관계를 가지다가 그녀의 남편이 죽은 다음 결혼한다. 밀은 그녀를 존경했고,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지만, 밀의 친구들은 그가 환상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밀은 공리주의를 개선하는데, 살찐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며 선한 일과 행동이 정신을 배양시켜 기쁨을 준다고 주장했다. 밀은 1848년 정치 경제학의 법칙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는 경제학에 유명한 서적이 된다.


Mill’s Method

홉스의 영향으로 밀의 아버지 제임스는 귀납적 방법론을 신봉했고, 밀은 아버지로부터 경제학의 과정과 합리성을 배운다. 한편, 밀은 사회 과학이 귀납적 방법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연역적인 방법론도 채택한다. 밀은 생산에는 귀납적 방법론을 분배에는 연역적 방법론을 적용했는데, 이는 실수이다. 마르크스를 제외하면 밀은 마지막 정치 경제학자로 부를 수 있다. 밀은 명시적 경제학과 규범적 경제학의 중요한 차이점을 인식하고, 규범적 목적과 실질적 분석을 접목하게 된다.


Taxation and Education

밀은 과세에 있어서도 실질적이고도 규범적이었다. 밀은 누진세가 노동 의욕을 저하시킬 수 있어 비례세를 선호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 면제는 지지했으며,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여 상속세를 지지했다. 한편,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반대하기도 했다. 밀이 알던 부자들을 보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밀은 노동 의욕을 저하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졌다. 신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복지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대신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보아 도덕 교육과 경제적 동기를 접목하기를 원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자유 방임과 통제의 중간적인 입장을 취했다. 정부의 간섭에는 원칙적으로 반대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의 과세 권한은 필요하다고 보았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고서는 중앙집중적인 방식보다는 지방분권적인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Looking Forward

밀은 리카르도의 정체 상태가 보다 아름다운 색채로 나타나는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밀은 인간이 생존의 문제로부터 벗어나서 인류애를 향상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했다. 개정된 저서에서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중앙집중적 정부에 대해 밀은 언제나 반대했다. 그는 현실 정치에서 인간의 권리를 강조하며, 여성의 고통, 가난한 자들의 투표권, 남북전쟁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한다. 정치인으로써 밀은 아주 독특한 캐릭터였는데, 선거 운동에 돈을 쓰지 않았으며, 선거 유세에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신뢰를 얻게 된다. 죽은 뒤에는 자신보다 먼저 죽은 해리엇의 아담한 무덤 곁에 묻힌다.


개인적인 생각

밀하면 천재, 조기 교육, 질적 공리주의와 자유론들에 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경제학자로써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로써의 면모가 새삼스러운 것은 그의 천재성과 다른 분야의 업적이 경제학의 기여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그의 경제학적 통찰이 현대 경제 정책에도 반영이 된다는 것을 보면 경제학적 부분에 대한 저의 지식이 부족한 것이 주 원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공리주의로 돌아가지 않고 그를 극복할만한 보다 규범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밀이 정치 철학적인 면에서 더 커다란 담론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편, 아버지인 제임스에 대한 반감이 적어 규범적 경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마르크스와 케인즈 같은 경제학자들의 자리는 없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재이기는 하지만, 조기 교육으로 인한 순종적인 성격이 혁명적인 재능을 가린게 아닐까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젊은이들에게 체 게바라, 프란츠 카프카, 칼로 밀과 같은 우상이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밀은 혁명적인 인물이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해리엇과의 황당한 사랑과 천재, 방황, 그리고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떠올려보면 밀은 이상하게도 정감이 가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다정함이 밀의 영향력의 밑바탕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Chapter VI The Angry Oracle Called Karl Marx

마르크스는 힘있는 문장과 신랄한 태도로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언한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사상사에 있어 마르크스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지만, 프로이드, 다윈과 더불어 마르크스는 20세기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르크스는 아버지와 장인인 베론 폰 베스트팔랜의 영향으로 이성주의와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는다. 학창시절은 마르크스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술에 빠진다. 대신, 철학을 독학하여 청년 헤겔주의자에 합류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공부를 하기로 하지만, 학위공장에 지나지 않는 Jena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다.


Young Man as a Journalist

마르크스는 에디터로 일하면서 자유주의적 중산층 신문인 Rheinische Zeitung을 신랄한 어조의 신문으로 만든다. 정부는 마르크스가 퇴직하지 않으면, 신문을 폐간하겠다고 하자, 마르크스는 퇴직하고, 제니 폰 베스트팔랜과 결혼한다. 파리로 와서는 교만한 젊은이들과 함께 사회주의 단체를 만든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생애에 중요한 사람인데, 부유한 공장주의 아들로 이중 생활을 즐긴다. 1980년에 마르크스는 세상을 바꾸게 되는 사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연구를 위한 역사적 철학적 기반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Materialist Historian

마르크스는 헤겔의 이상주의를 거부하고, 포이에르바흐를 따라 역사에서의 물질의 힘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헤겔의 방법론인 변증법을 채택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시한다. 마르크스는 생산력의 변화에 따라 봉건제, 자본주의를 거쳐 역사는 사회주의로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배계급과 노동자 계급은 서로 의지하지만, 지배계급은 상부 구조를 통해 노당자 계급을 지배한다. 상부구조는 생산의 과정이 인간의 인식을 왜곡하고 규정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 과정의 변화가 발생하면, 상부 구조는 정적이기 때문에 계급 사이의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지배 계급이 이런 변혁에 적응을 못하게 되면 변혁이 일어난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계급구조에 기반하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고, 노동자 계급이 승리하여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강력한 생산력을 강조하며 사회주의로 이행에 필요한 단계로 보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지 않은 러시아나 독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Capital and the Collapse of Capitalism

1850년 마르크스는 가족의 생계를 내팽겨치고 대영 박물관에서 자본주의 비평의 걸작인 자본론을 집필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핵심에 노동의 착취가 있다고 주장한다. 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양이므로 이익은 노동의 착취를 통해 나타난다.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노동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로 차지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저임금만 제공한다. 이런 문제로 인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고 주장한다. 먼저, 극심한 경쟁 속에 이익률은 감소하면서, 경쟁에 승리하는 자본가들에게 자본이 축적된다. 축적된 자본으로 자본가들의 경제적 힘은 증가하게 되고,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한다. 높은 실업률로 사회의 위기는 고조되고, 상품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경기는 침체된다. 많은 수의 실업자는 임금을 더욱 낮춘다. 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절망은 늘어난다. 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혁명을 일으키고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교리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10가지 단계를 제시하지만, 상세한 실행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Looking at Marx

마르크스에 대한 비평은 쉽지 않지만, 네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먼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잉여 노동에 대한 생각을 곡해하였다. 상상력과 기업가 정신은 실제로 이익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 이런 관념적인 부분에 대한 간과가 마르크스의 경제학의 결점이 된다. 한편, 노동자의 비참한 상황, 실업, 자본주의의 패망으로 이어지는 마르크스의 예측은 실제로는 실행이 되지 않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들도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생활수준이 상승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후에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 된다고 말을 바꾸는데, 현대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심리적 절망과 소외라고 주장을 한다. 어쨌든,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았다. 더욱이, 현대 주류 경제학에 있어 마르크스의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 케인즈의 경우 마르크스의 이론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현대 급진주의자들이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영향력은 미비하다. 마지막으로 현대 정치 발전 상황도 마르크스에게 유리하지 않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심화를 통한 사회주의 이행을 주장했으므로 소비에트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동유럽의 국가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을 했고, 남아있는 러시아와 중국은 자유시장을 채택하여 자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적 사회 정의에 대한 목소리에 젊은 시절 마르크스의 사상과 조합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

염려했던대로 마르크스에 대해 아주 가혹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마르크스의 일대기는 좋지 않은 일들을 나열하여 거의 험담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 밀을 로맨티스트라고 칭한 관대함은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메시지를 공격하기 위해 메신저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의 노동 가치는 뛰어난 통찰과 분석의 산물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노동 외에도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식 가격 상승으로 인한 금융 경제가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실물 경제의 성장이 될 수 없듯이, 관념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그대로 실제 가치로 적용하는 저자의 주장도 비판할 여지는 있습니다.


자본주의 몰락에 대한 저자의 반론 역시 논거가 많이 부족해보입니다. 일단, 현대 자본주의는 자유시장 기반의 고전적인 자본주의가 홀로 고도화되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마르크스가 경고한대로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수많은 사람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결국은 공멸의 길을 걷는다는 것에 대한 공감으로 정부의 적절한 개입과 통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인플레와 침체의 공포로 인해, 적절한 경제 정책을 찾는 것은 정부의 가장 커다란 역할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무시하고, 자 봐라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들의 생활 수준도 개선되고 있다는 주장은 많이 빈약해보인다고 봅니다.


주류 경제학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하다는 점도 상당히 주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와 같이 현대 자본주의와 관련된 경제학이 주류라고 단정한다면, 당연히 사회주의적 경제학이 자리잡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사회주의 경제학의 개념들을 받아들이면서 경제적 정의와 복지를 늘려 국민들의 삶을 개선해나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논리로 개선되지 않는 의료보험으로 인해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치료비 때문에 잘려진 두개의 손가락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지 고민해야한다는 영화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의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비판과 혼재되어있어 더욱 참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교조주의의 해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개념들을 접목해서 자본주의를 성숙하게끔 한 공도 적절하게 평가를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Chapter VII Alfred Marshall and the Marginalist Mind

신고전파 경제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한계주의는 과거와 상관없이 현재 상태에 이익이 지속적으로 취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제공한다. 마셜은 한계주의를 만들거나 발견한 것은 아니지만, 한계 분석을 명확하게 적용한 것, 오늘날 미시 경제학에서 한계주의 전통을 확립한 것, 케인즈와 같은 21세기 경제학자들을 가르킨 것,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삶 속에 한계주의를 실현한 것으로 인해 한계주의 대표자로 평가된다.


The Early Years

가난한 런던의 슬럼 지억에서 태어난 마셜은 신학 공부를 시키려던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수학에 관심을 가진다. 수학자로 학계에 인정을 받았던 마셜은 분자 물리학을 공부하려다가 형이상학, 윤리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의 소외된 자들의 상태에 대한 고민을 한다. 이로 인해, 마샬은 물질적 복지를 위한 경제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평생에 걸쳐 마셜은 역사나 도덕 과학으로부터 분리하여 경제학이 독자적인 학문이 되도록 노력했다. 캠브리지 대학은 마셜의 설득으로 최초의 경제학 과목을 개설하기도 한다. 먀살은 맬서스 처럼 신학교의 교수직을 박차고 맬서스의 손녀인 매리와 결혼을 한다. 마샬은 여성들을 교육하기도 하고, 아내와 함께 산업 경제학 서적을 공저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엉뚱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복잡한 수학 논문도 첫 장과 마지막 장까지만 읽고 이해할 정도로 똑똑했다.


The Gradualist Approach

마샬은 자신의 저서인 경제학 원리에서 세상은 급변하지 않으며, 점진적으로 변한다고 주장한다. 마셜의 한계주의는 경제학에 다윈의 진화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한계주의는 미시 경제학을 태동하게 해준다. 수학에 정통했음에도 마샬은 경제학에서 수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데 매우 신중했다. 특히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가정을 하지 않고, 케인즈와 같이 연역적인 방법론으로 정치 경제학을 다룬다.


Economic Time - Short and Long Runs

마셜은 특정 경향들을 그것이 작동하는 기간에서 분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마셜은 세테리스 파리부라는 독특한 분석 기법의 방법을 구체화하고 견고한 이론적 배경도 만들어낸다. 이는 이론적이고 수학적인 일반 균형 분석 기법과 대비된다. 한편, 마셜은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내부 경제 혹은 외부 경제적 요인으로 수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외부 환경의 변화로 기업은 도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독점의 문제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The Marginalist Consumer

고전경제학자들이 공급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마셜은 수요와 공급 두가지 측면이 공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는 어떤 물건을 구매할수록 효용가치는 줄어든다고 했는데, 이를 수요의 법칙이다. 한편, 상품의 가격 외에도 소비자의 기호나, 관습, 선호, 수입, 라이벌 상품의 가격들도 소비자의 한계 효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급의 법칙은 수요의 법칙에 반대로 가격이 올라가면 공급은 증가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 점에서 결정된다. 마셜은 가치가 오직 노동에 의해서만 발생한다고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자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셜은 자본가는 자본을 투자하고 이익이 실현되기 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자는 이런 기다림에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 이익설을 비판한다.


The Elastic Economy

수요에 대한 통찰과 더불어 마셜은 모든 경제학 분야에서 중요한 탄력성 혹은 반응성이라는 개념을 정의한다. 수학적으로는 수요의 변화율을 가격 변화율로 나눈 것으로 이것이 1인 경우를 단위 비탄력으로, 이보다 크면 탄력적이고, 작으면 비탄력적이라고 정의한다. 비탄력적인 소비에 대한 독점의 폐해는 강력하기 때문에 마셜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탄력성의 정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대체 가능품의 숫자, 대체 가능품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 그리고 해당 물품의 중요성이다. 현대 경제학의 대부분의 화두들은 탄력성에 관련된 것들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경제학의 논쟁들은 탄력성에 관한 것이다. 마셜은 탄력성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경제학자들이 이론과 실제를 접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The Big Picture

마셜은 거시 경제학 연구는 하지 않앗지만, 세이의 법칙과 양적 화폐이론은 받아들인다. 마셜은 일시적 부침이 있기는 하지만, 경제는 시간이 지나면 복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셜과 피셔는 명목 이자율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실질 이자율을 정의하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이 현실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 마셜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경제학을 연구했으며, 적절한 부의 재분배와 공공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셜은 사회주의로 나아가지는 않았는데, 소유권의 공산화는 인간의 활동성을 저해시켜 경제적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공선을 위해 이기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급진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보았다. 대신 마셜은 참을성을 가지고 빈곤과 무지가 점진적으로 사라질 것을 희망했다. 그리고 그의 학생들에게는 경제학은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도구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인 생각

이번 장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시험에도 자주 나왔던 한계효용의 이론이 떠올라 경제학이 낯설지 않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혹은 전체 인류의 행복을 자신의 연구 혹은 삶의 목표로 삼았던 마셜이라는 사람의 인품에 대해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의심해보지 않은 적이 없고, 남의 주장을 심사숙고 없이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부분도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회사의 서비스에 생기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야하는데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은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요인들은 제외하고 몇가지 요인들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는 방법들이 많이 사용이 되는데요. 마셜이 정의한 세테리스 파리부스를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구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셜의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연역적 경제학 접근 방법이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다윈 선생님의 위대함을 한번 더 상기해봅니다. 다윈주의는 그 결과물인 진화론에 국한하여 평가해서는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적용이 되는 황금률도 있지만, 일정한 경향성이 있더라도 다양한 조건의 다른 환경에서는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는 것이니깐요.


마지막으로 저자의 편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더 해보려고 합니다. 전 장의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이 너무 실랄했다고 느꼈는데, 마셜에 대해서는 거의 용비어천가 수준인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번 개정판을 쓰기 위해서 직접 마셜의 집으로 찾아갔었다고 했을 정도니, 마셜을 존경하는 저자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경제사상사라는 책이니 어느정도 수위 조절을 해주었으면 독자들의 신뢰도가 더 올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도 마셜과 같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Chapter VIII Old and New Institutionalists

제도주의자들은 기존의 일반적 경제학과 달리 사회의 법률, 에토스, 법률에 촛점을 둔다. 구제도주의자들은 1900년대 현실보다 수학적 공식에 촛점을 맞추는 마셜의 제자인 주류 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신제도주의자들 역시 사회제도에 관심을 가졌지만, 마셜의 방법론을 채택한다.


Veblen and the Old Institutionalist

구제도주의의 대표적 인물은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베블런은 수요의 법칙과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한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두가지 중요한 전제를 부정한다. 또한, 경제는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마셜과 그의 동료들이 혼란을 부추킨다고 비판한다. 베블런은 가난한 노르웨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Yale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코넬에서 경제학을 가르친다.


Deriding the Leisure Class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신고전학파의 수요 모델을 비판했다. 베블런에 따르면 개인은 상품을 구매할때 그 비용이나 혜택을 독립적으로 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인의 효용가치는 이웃들이 생각하는 가격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는다. 유한 계급은 땀흘리지 않고 재산을 모았기에 일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이 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실제가 가치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한 소비의 형태인 과시적 소비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The Creative Urge of Engineers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베블런도 창의적 욕구를 믿는데, 과시적 유한과 소비가 사회를 병들게 하여 이런 창의적 욕구를 억압한다고 했다. 하지만, 베블런은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을 채택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오직 엔지니어들만이 창작, 개선, 생산의 욕구를 가지면서, 20세기에 들어 자본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흔들 것으로 내다보았다. 엔지니어들과 경영자들의 대립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정부가 개입하여 경영자들을 통제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베블런은 엔지니어들이 경영자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대에는 엔지니어와 경영진의 경계가 불문명해졌다. 한편, 주도권을 잡은 엔지니어들은 이기심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다. 베블런의 저서는 재미있는데,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마취없이 수술을 하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평가가 있다.


Galbraith and the Lure of Advertising

베블런의 영향을 받은 갤브레이스는 하버드 교수, 대통령 자문, 사회 비평가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을 한다. 그는 큰 정부를 지지하는 정치 철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를 했으며, 현대 자본주의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을 비판한다. 베블런과 마찬가지로 기업들이 광고나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주장했다. 마셜의 수요의 한계 효용은 성립하지 않는데, 기업들이 수요의 한계 효용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기업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를 의존 효과라고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광고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하이예크는 소비자의 욕망을 지배하는 것은 기업이 아닌 문화, 환경적인 요인이라고 갤브레이스를 비판한다. 한편, 광고가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비판도 있다. 아무리 광고가 좋아도 품질이 좋은 상품이 살아남지는 않기 때문이다.


The Daring Joan Robinson

조안 로빈슨은 1970년대 노벨 경제학을 탈 수 있었다. 그녀는 시장에서 소수의 기업들이 비정상적인 힘을 가진다는 불완전한 경쟁을 발견했으며, .이런 독점적 경쟁에서는 우월한 상품 브랜드의 광고의 영향력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유명한 용어인 모노소니는 시장에 존재하는 단하나의 구매자이다. 20대에 이미 케인즈 학파의 주류가 되고, 경제학 교과서에 그녀의 주장이 실렸지만, 그녀는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그녀가 수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은 것과 그녀의 초기 주장인 불완전한 경쟁을 철회한 것 등이 거론이 되는데, 결정적으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주의 국가를 지지했던 그녀의 정치적 활동 때문일 것이다.


New Institutionalists and the Economics of Law

신제도주의자들은 베블런과 갤브레이스의 주장과 달리 제도를 분석하기 위해 마셜의 방법론을 채택한다. 포겔과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노스는 역사적 연구를 통해 경제 발전을 위해서 소유권과 시만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 발전에 필요한 논제로섬 거래은 강제적 거래, 거래 결과에 대한 인내, 이자율 구조, 그리고 지속적인 거래가 되는 경우에 가능하다. 특히 지속적인 거래로 공동체는 확산되는데, 과거에 비해 현대 유럽 사회의 폭력성이 낮아진 이유는 무역의 증가로 설명될 수 있다. 슘페터는 경제 성장은 기업가들의 혁신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슘페터는 기업가들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하는데, 인간은 개인적인 왕국을 만들고, 정복을 꿈꾸며 창조의 기쁨을 최종적으로 추구한다고 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도주의자들은 법률에 영향을 많이 미쳐서 경제학은 법률가들이 필수적으로 공부해야할 학문이 된다.


Negligence

핸드는 과실상해법에 경제학적 분석을 접목했다. 그는 피해자의 손해가 방지에 필요한 비용보다 높으면 과실 상해가 적용이 된다고 보았다. 피해자의 손해는 피해 가능성과 피해의 정도를 곱한 것으로 산정이 된다. 이는 한계 이익이 한계 비용보다 큰 경우에만 안전을 위해 돈을 써야 사회의 복지가 최대화될 수 있다는 가정이 담겨있다.


Property

경제학자들과 법률학자들은 반경제적인 벌률적인 결정은 원래의 의도와 반대의 결과를 나타낸다고 경고한다. 코스의 법칙은 최초 소유권 대한 결정은 해당 소유권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사용될지 결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판사가 소유권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더라도 그와는 상관없이 경제적인 요인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스의 법칙은 복잡하기는 해도 법률적 판단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아주 혁신적인 통찰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임대료 조절법은 원래 임대인이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리는 것을 막아 임차인들이 저렴한 주거비용으로 임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임대인들이 주택의 임대를 하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주택임대 시장의 공급 부족의 결과를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법이 제정될 당시에 임대를 했던 사람들은 저렴한 임대비용으로 혜택을 보았지만, 이들은 임대 주택을 옮기지 않는다. 따라서, 정작 도시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임대를 하지 못하게 되어 효율성이 낮아지게 된다.


Crime

베커는 범죄의 비용과 이익이라는 개념을 가족법과 형법에 적용했다. 범죄를 없애려면 법은 두렴움의 정도나 처벌의 강도를 조절하여야 한다. 이자율과 범죄율은 상관 관계를 보여주는데, 미래가 불투명해지면 범죄를 저지르기 쉽기 때문이다. 마약 퇴치를 위한 공급망에 대한 제재는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한다. 이유는 마약 중독자들의 소비 탄성이 탄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급자에 대한 제재보다는 소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런 식의 주장은 정의는 효율성에 지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하지만, 그 효율성에 대한 이해는 법률적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는데 효율적이다. 이는 어떤 법률적인 결정이 어떤 결과를 만드느냐를 이해하느데 도움이 된다.


Corporate Finance

콜롬비아 대학의 경제학자인 베를과 경제학자인 민스는 기업의 오너와 경영자 사이의 이해 관계 충돌을 지적한다. 신제도주의자들은 오너들이 경영자들을 감시해야하는데, 이에 대한 비용을 에이전시 비용이라 불렀다. 에이전시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경영자들이 이익을 올릴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제도는 현재 다양한 기업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센티브 제도는 악용될 가능성도 많다. 기업의 재정에 있어서 구제도주의자들이 문제를 지적했다면, 신제도주의자들은 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제도와 사회적 현상들은 경제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중세 시대의 포로들은 보석금으로 인해 가치가 있어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시간도 경제적 의미를 가진다. 인간이 문명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신뢰할만한 명성이 경제 활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남은 시간이 없거나, 현재의 행동이 명성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신뢰를 저버리고 타인을 이용하기만 할 것이다. 미래가 없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망하게 될 것이다. 법률, 도덕, 패션, 철학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베블런과 갤브레이스는 경제학자들에게 좀더 현상에 신경을 쓰도록 했다. 신제도주의자들은 경제가 쉽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마셜의 도구가 강력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신구 제도주의자들은 공히 경제학의 범위가 사회 전체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인 생각

다른 장들과 달리 이번 장에는 다양한 경제학자들이 등장을 합니다. 덕분에 요약하기 조금 힘들었지 않는가 싶습니다. 중간에 저자의 벅홀츠 가정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 양반이 마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제도주의자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장은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를 필연적으로 나을 수 밖에 없어서 자유 방임으로 방치해서는 않된다고 생각하기에 신제도주의자들에 동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최근 유행하는 행동경제학이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그런 면에서는 제도주의자들과 같은 부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벨 경제학상은 엄밀히 노벨 재단에 수여하는 노벨상이 아니고, 스위스 국립 은행이 주는 상이지요. 그래도 같은 시기에 수상식을 하며, 상금도 비슷하기에 노벨상에 준하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경제학이 워낙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탓이겠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에 대한 논란이 많기도 합니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 조안 로빈슨이 노벨 상을 타지 못한 것이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자본주의가 주류 경제 시스템이 되어 주류 경제학자들도 자본주의와 관련된 학자들이라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적 경제학자들은 홀대를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다른 장들과 약간 다른 포맷이라 조금 지루하게 느끼면서 읽었는데요. 소개된 배블런의 유한 계급은 워낙 유명한 책이라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Chapter IX Keynes: Bon Vivant as Savior

케인즈와 그의 생각들은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아담 스미스 넥타이를 맸던 레이건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통령이 케인즈 넥타이를 맸다고 보면 된다. 후에 강력한 케인즈의 비판가인 밀턴이 등장하면서 케인즈의 영향력은 줄어들지만, 경기 침체가 나타나게 되면 케인즈는 다시 나타나게 된다. 케인즈주의는 사경제는 완전고용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출로 경제를 부양해야 한다고 한다. 정부의 재정정책이나 세금 감면을 지지하는 자들은 케인즈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케인즈는 경제 문제외 다양한 분야에 다재다능했다.


Escape from Victorianism

케인즈는 빅토리아 기풍을 따르려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케인즈는 부르조아 지식층의 일원임에 편안해했다. 킹스 칼리지에 입학한 이후 사도라는 철학과 무신론을 탐닉하는 매우 교만한 그룹의 일원이 된다. 여기서 케인즈는 토론의 실력의 달인이 된다. 캠브리지로 돌아온 이후, 마셜의 경제학 법칙을 읽게 되고, 마셜과 8주간 함께 공부한다. 그 후, 공무원으로 있다가 근무태만으로 그만두고 마셜의 권유로 경제학 강의를 시작한다. 경제학 책들을 읽게 되면서 명석함을 인정받아 권위이는 경제학 저널의 공동 에디터가 된다.


War and Dangerous Peace

1차 세계 대전 중에 케인즈는 공무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케인즈는 블룸스버리 그룹의 다른 멤버와 마찬가지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베르사이유 협약에 재무부를 대표하여 참석하는데, 윌슨 대통령이 독일에게 과도한 압력을 가하는 것에 혐오를 느낀다. 그는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사임을 한다. 그리고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저서에서 독일은 책정된 전쟁 보상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한다. 그 책은 엄청난 부수가 판매되었고, 케인즈의 자존심도 높아지게 된다. 그 후 케인즈는 주로 강의, 집필, 정부 고문, 보험회사 의장 등 다방면의 활동을 한다. 러시아 발레리나인 로포코바와 결혼을 한다. 케인즈는 리카르도 다음으로 투자에 성공한 경제학자가 된다.


The Great Depression and the Fall of Classical Economics

케인즈가 통화정책에 집중하면서 화폐개혁론과 화폐론을 집필한다. 그 와중에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높은 실업률과 엄청난 재적 적자에 시달린다. 주식 시장이 붕괴되면서 경제 침체는 심화된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기다리면 공황이 극복될 것이라고 했지만, 케인즈는 이에 반대한다. 세이의 법칙에 따르면 일반 잉여는 존재하지 않고, 생산과 수요가 균형을 맞게 되므로 장기 실업이나 대공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계 저축이 증가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은행의 저축된 돈이 싼 이자로 기업에 빌려지게 되므로 장기적으로 저축과 투자가 일치하게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케인즈는 가계 저축과 기업 투자는 각기 다른 요인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이 둘이 조화를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가계 저축이 증가하면, 잉여가 발생하고, 기업가는 직원을 해고하고, 수요는 더욱 줄어들게 든다. 그리고, 독점과 노동조합 때문에 가격과 임금이 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실제로 1930년대에는 저축과 투자가 일치했는데, 투자가 증가했다기 보다는 기업들이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실제로 저축을 할 수 있는 노동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The Keynesian Solution

가계 수요가 감소하면, 노동자를 해고되고, 생산은 줄어든다. 케인즈는 이것이 공황이라고 한다. 케인즈의 모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계의 수요인데, 수요는 수입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도 투자를 통해 수요를 하지만, 투자는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아 가변적이기에 가계의 수요보다 느리게 변화한다. 한계소비성향은 남는 돈 중 소비에 사용되는 비율을 가르킨다. 완전 고용의 건강한 경제를 위해서는 가계소비와 기업투자가 충분해야 한다. 남는 돈의 모든 것을 다써버리는 한계소비성향이 1인 상태에서는 세이의 법칙이 말한대로 완전고용이 가능하다. 침체의 주범은 저축이라고 주장하며, 케인즈는 국민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요와 생산의 상승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유명한 케인즈 승수는 한계소비성향으로 1을 나눈 것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승수가 3인 상태에서 정부가 재정지출을 100불하게 되면 수요 생산의 차이중 300불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케인즈의 이론은 정부가 세금 감면이나 재정 지출을 통해서 소비와 생산의 차이를 메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재정 적자를 걱정하는 정부 관료들은 케인즈의 처방을 반대한다. 한편, 자유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관여를 부정적으로 보는 철학적 반대도 있다. 실제로 케인즈는 큰 정부를 옹호한다. 케인즈는 법칙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인 문제에 촛점을 맞추었고, 닉슨 대통령 시절까지 영향력이 커지고, 그를 추종하는 케인즈 학파가 생겨 케인즈 경제학이 발전하고, 정치인들은 재정지출과 택스 감면을 통해 경기침체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고용법도 제정하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 오일쇼크와 함께 온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케인즈의 이론은 쇠퇴하게 된다.


A View of the Future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을 오고가며 영국에 대한 미국의 대출 조건 완화를 위해 노력한다. 1946년 케인즈는 사망한다. 케인즈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했다. 인류는 사치품까지 포함하는 물질적 욕구를 모두 충족하게 될 것이다. 그 이후 인간들은 보다 점잖고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는 인류가 경제적 진화를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과연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까? 대체로 기쁨은 목적을 성취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달성을 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개인적인 생각

금융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기 침체의 위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여러모로 케인즈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시장의 원할한 작동을 위해 하나의 경제 주체로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은 자유시장 원칙과 대립하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떤 입장이신지 궁금해지는군요.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다른 경제학자와 달리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던 케인즈는 정작 학문적 탐구에 몰입한 경제학자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보다는 실행주의자로 자신의 생각을 정부가 채택하도록 함으로서 경제학자로의 명성을 쌓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사도의 멤버이었기에 케인즈도 교만함이 있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는데요. 정통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저명 경제학 잡지의 공동 편집위원이 되고, 정부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을 보면 오히려 인간 관계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의 말보다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의 말을 더 잘받아들이니깐요.


Chapter X Milton Friedman and the Monetarist Battle Against Keynes

케인즈학파는 경제를 재정지출확대와 감세라는 액셀과 재정지출 감소와 증세라는 브레이크를 가진 자동차로 비유한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는 좋은 운전자가 아니며, 경제의 액셀은 통화량 확대이고, 브레이크는 통화량 감소라고 주장한다. 밀턴, 브루너, 멜처가 이끄는 통화주의자는 처음에는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카터 행정부 시절 연방 준비 이사회 의장이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따르기 시작한다. 케인즈학파와 통화주의자들의 대결은 오늘날 무승부에 가깝다. 정부는 두가지 페달이 아닌 네가지 페달을 가지게 되었다.


What Is Money?

통화주의자들은 케인즈학파와 다른 통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연방 준비 의사회의 통화량의 정의는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과 상업 은행의 체크계좌의 예금액의 총합이다. 통화량이 많으면 경제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적절한 통화량이 중요하다.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없이 완전 고용을 이룰 수 있게끔 생산되는 모든 상품을 구매할 정도가 적절한 통화량이다. 적절한 통화량을 산출하기 통화 속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 통화 속도는 GDP를 통화량으로 나눈 값으로 정의된다. 통화속도가 안정적이면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이 가능하고, 정부의 재정정책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통화속도가 불안정하면 재정정책은 동작하지 않는다. 케인즈학파는 통화속도가 불안정하다고 보았고, 통화주의자들은 안정적이라고 본다. 연방준비의회 이사회는 세가지 방법으로 통화량을 조절하는데, 은행의 지급준비율, 이자율, 그리고 정부의 본드 구매 및 판매가 이에 해당한다.


The Monetarist Model and Keynes’ Critique

MV=PQ는 양적 이론을 설명하는 공식 중 하나로 M은 통화 공급, V는 통화 속도, P는 가격 수준, Q는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양이다. PQ는 명목 GDP를 나타낸다. 이 공식 자체에 대해서는 반론이 없지만, 이 공식들의 변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서 끊임없는 논쟁이 있어왔다. 초기 통화주의는 통화속도가 일정하고, 단기적으로 총생산량도 변화가 없으므로 통화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현대 통화주의자들도 장기적으로는 통화의 증가는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해석한다. 케인즈학파는 통화속도가 일정하지 않으며, 차입자는 이율변화를 상관 않기 때문에 통화량의 증가가 가격 상승을 만들지 못할 수 있다고 보았다.


Milton Friedman and the Counterattack

프리드먼은 가난한 가정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웠지만, 자유의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스스로 행운이 있다고 자서전에도 기록한다. 루커스 대학에서 고전학파 경제학을 배우고 시카고 대학원에서 아내인 로즈를 만난다. 프리드먼은 사회적으로 저명한 피구나 의사협회와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프리드먼은 수요가 안정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 따라서만 변화한다고 주장하며, 통화량과 가격 사이의 상관관계를 재정의한다. 한편, 장기적인 수입의 전망에 따라 수요가 변화하므로 수요가 안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다. 프리드먼은 이론적인 주장을 역사 자료 연구를 통해 입증을 했다. 미국 화폐사에서 그는 잘못된 통화정책들이 극심한 침체나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양적 이론을 구해낸 이후에는 케인즈학파의 정부 재정 정책을 비판한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의 지출은 개인의 지출을 저해하므로 케인스 승수는 이를 고려하지 못했다고 한다. 1950년 60년대에는 약간 높은 인플레이션은 더 많은 고용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학계에 팽배했었는데, 인플레이션은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쳤던 1970년대의 스테그플레이션으로 이단이었던 프리드먼의 주장은 정설로 등극하게 된다.


Modesty in Victory

프리드먼은 경제학자들이 통화정책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프리드먼은 정부가 경제를 건드리지 말고, 고정된 성장률에 따라 통화 기계적으로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바람직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대를 하고, 비록 통화속도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도 일시적으로 변화게 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자들도 여전히 정부가 경제적 문제점을 인식하는데 걸리는 시간, 정부의 정책이 경제에 효과를 나타내는 시간, 그리고 정부가 해야할 일을 앓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들어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은 여러 나라의 통화정책에 반영이 되었고, 주류경제학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Velocity Vexes the Victors

통화주의자 시대는 얼마 가지 못한다. 대처와 레이건의 시대, 이자율 증가의 위험을 감수하고 통화량을 늘린 시도는 인플레이션 통제에 성공하나 극심한 침체에 불러온다. 통화주의자들은 아주 완만한 조절 역시 침체를 막을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1990년대와 2000년 경제 회복기에는 통화속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데, 통화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의 감소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당시에 전세계 부동산 시장은 거품이 심화되고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과 더불어 위기가 찾아온다. 버냉키는 프리드먼의 양적완화를 활용하는데, 이는 효과적으로 작용을 하여 2009년 GDP는 상승으로 전환하고, 4년 후에 집값도 예년 수준을 회복한다. 이런 회복은 통화주의자들의 이론으로 설명이 어렵지만, 피구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피구의 이론에 따르면 가격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자신의 돈이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2009년의 회복은 이런 과정을 거쳤다. 피구의 이론이 90년이 지난 이후에야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앙은행에서 돈을 찍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구 피구 효과 뿐만 아니라 외부요인에 대한 연구로 피구는 자신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A Synthesis and a Look at Supply

오늘날 주류 경제학이 케인즈의 주장을 배격한 것은 아니다. 케인즈의 머리에 프리드먼의 몸통을 가졌다고 비견할 만큼 연방 준비의 경제학자들은 두 의견을 모두 수용한다. 한편,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케인즈가 다시 경제학을 선택했더라도 케인즈학파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만큼 근본적인 상황들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의 뒤를 잇는 경제학자들은 총공급에 관심을 가진다. 수입세 감면이 경제적 활동을 늘릴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높은 세금은 노동의지를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미국의 대통령들은 낮은 수입세를 고수한다. 최근에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공급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에어비앤비, 도저, 야드클럽 같은 경우, 별도의 생산없이도 새로운 공급을 창출해내고 있다. 금융 기술도 인터넷과 더불어 발전하고, 아마존을 통해 구매자 정보를 통해 더 싼 공급이 가능하게 해준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이 통화 이벤트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까지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공급부분의 변화는 인플레이션을 1.5 퍼센트나 완충시켜준다고 하는데, 이는 경제에 엄청난 효과를 미친다.


Beyond Mere GDP

프리드먼은 현재 Earned 수입세의 근간이 되는 네거티브 수입 세금을 주장했고, 정부에 의해 환율을 확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두어야 한다는 이단적 주장도 한다. 한편, 아내 로즈와 함께 자녀들을 보내고 싶은 학교를 부모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베트남 전쟁 당시 징병제를 모병제로 변경하는 모임에서의 활약이다. 자신은 용병 군대를 이끌기 싫다고 주장하는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에게 프리드먼은 노예 군대를 이끌고 싶냐고 반박하며, 모병제 전환에 기여한다.


개인적인 생각

현대 경제학의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프리드먼까지 읽었습니다. 연애의 승자는 가장 마지막에 사귀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제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경제학자가 영향력이 높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했듯이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해서 프리드먼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나온다고 하니, 조만간 프리드먼을 대체하는 경제학자가 등장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강력했던 케인즈 학파가 득세하던 시절, 조롱거리였다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명성을 얻게 되는 과정이 진짜 드라마틱한 지성사의 변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자신의 주장의 불완전함을 쿨하게 인정하고 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런 경제학자들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정보기술과 인터넷의 발전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재미있게 지켜보았는데요. 뒤에도 나올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가 자본주의의 근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가령 로봇이 모든 사람의 노동을 대체한다고 한다면, 현재 자본주의와 그와 관련된 경제학들은 지속적으로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마지막으로 경제학 책을 읽는데, 경제학과 관련이 없는 마지막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는군요. 10장까지 주구장창 경제관련 이야기를 들어서 그럴까요? 모병제와 징병제관련 에피소드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도덕 철학적 이야기에 경제적 식견도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병제 vs. 징병제 중 어느 쪽을 지지하시나요?


Chapter XI The Public Choice School: Politics as a Business

1986년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이 창설한 공공선택학파는 정치가들 역시 경제적 활동을 하므로 면밀한 연구를 해야한다고 보았다. 테네시에서 태어나 커뮤니티 칼리지를 걸쳐 테네시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다음 2차 세계 대전 이후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버지니아 대학에서 연구를 하게 된다. 공공선택학파의 주장은 간단하다. 기업가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듯,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일을 하므로 이들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The Paradox of Special Interest Group

메릴랜드 대학 교수이자 뷰캐년의 친구인 올슨은 특수 이익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 전체의 효율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수이익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국가 전체의 효율이나 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일반소비자들이 이들 특수이익집단의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 통제를 위한 비용이 통제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를 합리적인 무시라고도 한다. 올슨에 따르면 오래되고 안정적인 국가의 성장이 느린 것 역시 특수이익집단의 득세 때문이라고 하였다.


How the Regulated Can Control the Regulators

정부가 산업을 규제하는 이유는 독과점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기업들이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규제를 원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지배이론이라고도 하는데, 때때로 기업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규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공공선택학파 역시 모든 규제가 기업에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훌륭한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는 가정만 하지 말고, 규제의 결과를 신중하게 검토해보라고 주장한다.


Big Promises, Bulging Budgets, and Bureaucracies

정부가 특수이익집단이 공공의 이익을 해치면서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도와주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공공선택학파는 관료와 정치인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튤랏과 니스카넨은 관료들은 급여, 권한, 명예, 퇴직후 기회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자신들의 조직을 키우려고 한다. 물론, 모든 관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조직을 축소한 관료들도 많이 있다. 한편, 뷰캐넌은 선출된 정치인들은 재정 적자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의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은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증세를 실시할 수 없다. 뷰캐넌은 이런 재정적자는 미래의 세대에도 해를 입힌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재정흑자에 대해 사람들은 공공선택학파가 예상했던 것보다 모르거나 소극적이지 않았다. 재정흑자에 따른 지나친 지출을 경고하는 여론이 생겨나면서 정치인들은 재정지출을 줄이기 시작한다.


Social Security and Medicare

이익집단 사이의 충돌의 예로 사회보장과 메디케어 대한 논쟁이 있다. 사회보장은 대공황 이후에 도입이 되어 초기에는 수익자가 많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 않다가 수명이 늘어나고, 베이비 부머 세대로 인해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보장 세금은 투자가 되지 않아 수익이 없다. 희망적인 부분은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이고, 주식시장에 투자를 통해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메디케어 역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메디케어는 마치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과 같아 도덕적 해이 문제로 비추어진다. 자신들이 보험료를 내지 않으므로 혜택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건강이 증진된 것도 아니다.


Political Cycles

뷰캐넌의 주장은 몇몇 공공선택학파 사람들의 정치적 사이클 이론으로 계승된다. 정치인들이 재선을 위해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는 정책을 남발하여 고용율을 올리면, 인플레이션과 침체의 사이클이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닉슨은 선거를 위해 경제 부양을 했고, 그 결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닉슨 이후 중앙은행과 정치인이 결탁하는 것이 힘들어져 정치적 사이클은 나타나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 시절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시절에도 중앙은행은 비교적 독립적으로 있었다. 공공선택학파는 정부가 정치적 반대를 무릅쓰고 경제적으로 옳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않된다는 가르침을 알려준다.


Why Didn’t Keynes Anticipate the Public Choice School?

공공선택학파의 의견은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이전 경제학자들도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개입을 장려했던 천재 케인즈는 왜 정부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을까? 케인즈에 대해 다시 살펴봄으로 공공선택학파 이론의 독자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Keynes’ Prescriptions for Government Intervention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부족한 부분을 정부가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스위즈는 케인즈의 방법이 딜레마에 처했을때, 습관적으로 국가를 듀 엑스 마키나로 취급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케인즈는 국가는 수입세와 이자율을 통해 소비를 조절해야한다고 보았으며, 국가의 역할이 증가할 수록 새로운 유형의 감독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증가된 국가의 개입은 전체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케인즈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계획에 대한 논의에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Cultural and Intellectual Influences on Keynes

케인즈는 도덕에는 일반적인 법칙이 없으며, 개개인의 양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뛰어난 양심을 가졌다는 엘리트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케인즈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버리지 않을 것을 믿고 있었다. 케인즈의 이런 생각은 베버의 견해와 어린 시절 받았던 지식인 귀족 교육, 2차 세계대전 직전의 훌륭했던 영국 정부의 영향일 수 있다. 한편, 케인즈는 인간은 합리적이어야 생각했다. 따라서, 잘못된 정책은 잘못된 논리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케인즈는 기본적으로 정치인과 관료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잘하려는 동기를 가지지만, 잘못된 판단이나 고집 혹은 행동하지 않음이 그것을 방해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케인즈는 공공선택학파와 다른 길을 걷는다.


A Political Invisible Hand

정치인은 대중의 표가 자기 이익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대중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이를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이런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용했기 때문에, 케인즈가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을 믿었다면, 그의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허술한 믿음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커져버린 정부의 행동들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떨어지면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은 작용하지 않게 된다. 정부의 재정 지출과 개입을 옹호했던 케인즈는 결과적으로 이런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지 않도록 기여한 셈이 된다.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의 약화는 미시, 거시 경제적 관점에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Verdict on Keynes

케인즈의 정치적 관점은 허술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영국 정부를 감안해보면, 정부 정책의 남용할 가능성에 대한 예측을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케인즈를 비난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한편, 케인즈의 정치적 관점의 문제는 케인즈의 경제학과 분리해서 다루어져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

작은 정부 vs. 큰 정부에 대한 논의는 정치철학적 논쟁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해보이는데요. 어느 정도 크기의 정부가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케인즈와 같이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기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믿고 싶은데요. 모든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사명을 앞세울 것이라고 믿는 것도 경계해야할 것 같습니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부패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방안들도 필요할 것 같고요. 저질러진 부정부패를 발견해서 복구하는 방안들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려보면, 결국 국민 개개인이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정치와 정부의 정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투표에 적극 참여하시나요?


한편, 공공선택학파의 주장을 읽어보면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 대한 우려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개성과 자유의 보장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특수이익집단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이들과 정치인 혹은 관료들의 부정적 결탁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Chapter XII The Wild World of Rational Expectations and Behavioral Economics

합리적 기대학파 혹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개입은 환영일뿐이며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합리적 기대학파는 까다로운 논리로 이론적으로 아름다운 모델을 만들었고, 정확한 수학을 통해 새로운 발견이 기대하는 젊은 학자들을 매료시켰다. 합리적 기대학파는 시장은 투명하여 즉각적인 가격조절이 이루어져 공급의 과잉이나 부족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들은 가용 가능한 모든 정보들을 경제적 판단을 하는 자신들의 모델이나 기대를 지속적으로 갱신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 기대학파 창시자인 존 뮤스는 돼지 가격의 변화와 그에 따른 축산업자들의 생산량 조절 반응을 연구하였다. 사람들은 가격 변화에 따라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이런 방식은 일시적인 실수가 있을 수는 있어도 구조적인 실수를 막아준다고 주장한다.


Tossing Darts at Brokers

정보가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주식시장은 합리적 기대이론의 좋은 예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새로운 정보는 언제나 현재 가격에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주식 분석의 필요성이 없고,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990년대 상승했던 주식 시장에서 인덱스 펀드는 전문 펀드매니저들의 포트폴리오보다 더 좋은 수익을 가져왔다. 한편, 1995년 노벨상을 받은 루카스와 사르젠트는 정부의 시장 개입은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는데, 정부가 특정 주식을 구매하더라도 다른 투자자들이 금방 팔아버리게 되어 가격은 원래로 돌아온다고 했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내부 정보나 비밀을 바탕으로 투자하는 것은 불공정하고, 시장 정보를 해석하는데 탁월한 방법은 존재하는 않는다.


Economists on Wall Street

최근에 들어서야 경제학자들이 월스트리트에 관여를 하기 시작한다. 경제학자들은 주식 포트폴리오 설계나 회사와 주식 옵션 가치 평가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들 분야는 높은 수준의 수학과 경제학 지식이 필요했다. 마르코위츠는 포트폴리오 선택이라는 논문에서 모든 달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유명한 경구로 표현되는 분산 투자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샤프는 자본 자산 가격 모델을 설계하면서 주식의 위험성을 나타내는 베타라는 개념을 개발한다. 밀러는 기업 가치는 미래 수익에 결정되며, 주주의 수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1997년 노벨경제학 수상자 머튼과 스콜은 Long-Term Capital Managemt 회사에 합류했지만, 회사의 포트폴리오 가격이 폭락하는 실패를 하게 된다.


The Lucas Critique

합리적 기대이론은 거시경제에 커다른 함의를 제공한다.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제학적 모델은 새로운 정부의 정책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루카스 비평이라고도 불려진다. 또한 정부의 경제 안정 정책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참신한 것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케인즈주의와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을 부정한다. 한편, 공공선택학파인 뷰캐넌의 재정적자를 조장하여 미래세대를 희생시킨다는 주장과 프레이의 정치 주기설과도 충돌한다. 합리적 기대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부의 정책의 결과를 예상하여 그에 따라 미래 대응을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합리적 기대를 통해 사람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The Mainstream Strikes Back

주류 경제학자들의 합리적 기대이론에 대한 비판은 두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그 이론이 빠른 시장의 반응과 초능력에 가까운 정보 획득 능력과 같은 과도한 가정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 주장이 실제 경제적 사건들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정보의 불균형은 쉽게 관찰될 수 있으며,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들도 많았다. 실제 시장은 합리적 기대이론이 잘 적용되는 주식시장보다 복잡하고 유연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거시경제를 잘 살명하기 어렵다.


Behavioral Economics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자주 접하는 심리학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이라는 합리적 기대이론의 가정에 우려를 표현한다. 캐너먼과 테버스키는 1950년대 이스라엘 군대에서 심리테스트 인터뷰와 실제 결과를 바탕으로 비이성적 경제행위들에 대한 가상 백과사전을 편찬한다. 사람들은 확실한 정책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고, 주식 거래에서 손해를 피하려는 경향과 변화를 원하지 경향이 있다. 탈러가 경제학의 괴이한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한 이후, 케너맨이 노벨상을 받은 2002년 경에는 행동 경제학은 인기있는 과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다. 경제적 힘이 지속적으로 적용이 되면 사람들은 보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기대이론과 행동 경제학은 자주 대립하는데, 둘다 장단점이 있어 보다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합리적 기대학파의 몇가지 아이디어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기반에 접목시킬 만한 것들이 있다. 어쨌든 합리적 기대이론은 실제 세계에 적용하기에 너무 완벽한 이론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론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

신고전파라 불리우는 합리적 기대이론은 금융시장의 발전과 함께 주류 경제학의 일부로 편입이 되었지 않을까 싶은데, 저자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가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주류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조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한편, 인류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미래의 경제의 모습은 합리적 기대학파가 그리는 모습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정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모두가 공평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판단의 모델을 변화시켜서, 빠르게 경제적 결정을 내리면, 정부의 부당한 간섭이나 외부의 부정한 개입이 효과가 없게 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사람들의 비합리적 경제활동까지 포용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이어야할 것 같은데요. 행동 경제학이 발전하여 좀더 일관되고 견고한 패러다임이 갖추어지면 그런 것들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넛지라는 또 하나의 유명한 행동 경제학 책은 합리적인 행동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정부의 정책들을 소개하고 있지요. 아마 행동 경제학이 실질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부분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정부가 합리와 비합리를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빅데이터 수집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합리와 비합리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대립되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면, 헉슬리나 오웬이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Chapter XIII Dark Clouds, Silver Linings

경제학은 어려운 학문이다. 다른 과학과 같이 통제된 조건에서의 실험이 불가능하고, 정확한 예측을 하기 힘들다. 정밀한 법칙의 과학이 아닌 경향성의 과학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경제학들 거의 모두가 무결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가 정부와 경제 사이의 상호작용을 무시하지 않았다. 좋은 경제학은 비록 희생자가 있더라도 제로섬 게임이 아닌 어떤 식으로던지 이익을 만들어내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부분에 촛점을 맞추는 미디어의 영향과 우리들의 심리학적인 영향으로 경제학 정책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어렵다. 어쩌면 경제적으로 좋은 시점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지 모른다. 세상은 점점 협력하는 분위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자본 시장은 더 효율적이고, 기술은 생산량을 늘려주고 있어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볼 수 도 있다. 물론, 막연하게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는 것도 곤란하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성공이 자본주의의 몰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도덕적 문제들의 대한 해답은 사회주의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로 이행했던 국가들은 자본주의를 다시 채택했다. 물론, 물질적인 번성이 자본주의에서의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또한,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인한 인간 소외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런 부분들은 암울한 미래를 쉽게 떠오르게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모두 연구해야한다. 인류의 삶은 네발로 걸었때와 비교해서 두발로 걸었을때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작은 변화들을 설명하려고 했던 경제학자들에게 약간의 칭찬을 해줄만하다.


개인적인 생각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학은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약간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엔지니어인 저의 언어로 표현을 하자면, 컴퓨터 과학과 컴퓨터 공학은 서로 밀접하지만 다른 학문입니다. 컴퓨터 과학은 이론을 연구한다면, 컴퓨터 공학은 그 이론의 연구 결과를 실제 세상에 구현하는 것이겠지요. 명확한 이론이라도 실제 세상에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의 실제 세상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컴퓨터 공학은 최적화와 다양한 이론의 타협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 면에서 경제학은 인문학의 공학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인문학의 이론들이 다른 자연과학의 이론들보다 명확하게 정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문제는 실제 세상에 적용했을때, 인간의 삶이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없어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오펜하이머도 물리학의 공학인 핵폭탄을 만드는데 있어 그 영향력 때문에 많은 고뇌를 했다고 하지요.


어쨌든 경제는 어려운 학문이라는데 동의를 하고요. 그럼에도 여러 경제학자들의 발견들을 잘 고려해서 경향성을 파악하자는 것은 공학적인 접근이라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장미빛 전망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결국 슘페터가 지적한 부분들로 인해 자본주의를 계승하는 체제가 올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AI나 로봇의 발전으로 인간이 노동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생산력 확대를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쉽게 인간을 외면할 겁니다. 인간이 빠진 생산력이 막강한 자본주의를 과연 우리가 원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결과물을 인간들에게 나름 공평하게 제공하는 방식의 사회주의와 유사한 시스템을 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이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데 뿌듯함을 느낍니다. 비교적 최근에 개정된 4판을 읽어 3판을 읽었던 경험을 좀더 의미있게 갱신해서 좋았고요. 경제에 대해 많이 알게되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뉴스나 신문에서 접하던 경제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했는지에 대해서 배우게 되어 좋았습니다. 경제에 관련된 논쟁을 접하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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