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바람의 독서노트

Updated: Sep 2


2022년도 8월 정기모임 동안 작성한 노트입니다.


정의

요약

  • Status: 사회적 위치,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것

  • Status Anxiety: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을 달성하지 못해 존엄과 존경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한 걱정, 획득도 유지도 어려움

  • Thesis: 신분에 대한 불안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

용어의 정의와 주장을 간략하게 서술하여 서문을 대체한 아이디어가 신선합니다.


영어 공부도 할겸 영어로 번역된 책을 읽고 있는데, 영어책 제목은 Status Anxiety입니다. 개인적으로 신분에 대한 불안이라고 해석을 했는데요. 앞으로 책의 내용을 더 살펴봐야겠지만, 한국책 제목을 단순히 불안이라고 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신분에 대한 불안이 우리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생산적인 결과를 내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목차를 읽어보니 전반적으로 1부에서는 불안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2부에서는 적절한 처방을 제시할 것 같습니다.


원인

I. 사랑결핍

요약

  • 두종류의 사랑: 성적 vs. 세상의 사랑, 세상의 사랑 비중도 높음, 우리가 물질적 재화나 권력에 대한 갈망 - 세상의 사랑을 받는 수단

  • 인간은 선척적으로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음,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의존하는 경향, 타인의 평가에 의해 자신의 부정적 긍정적 이미지들이 형성

  • 불안정한 자아상 때문에 지위에 대한 열망이 형성

개인적인 생각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고 사회의 규칙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자유의지를 포기한만큼 사회로부터 받는 보호를 확인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 확인의 방법이 다른 개체들에게 비추어지는 자신의 모습일 것이고요. 제가 선호하는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도 지위를 중요시하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의식의 번들이론과도 어울리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외부의 평가에 좌우된다고 주장했는데요.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의식은 상당한 관련이 있어보입니다. 의식이 외부 세계와의 접점들의 총합이라고 보는 번들이론에서는 외부의 평가는 접점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외부의 평가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표현을 했는데요. 이 부분은 완전히 공감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사랑보다는 인정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할 것 같은데요. 개체의 행동이나 특성과 같은 조건들이 다른 개체들로부터 받게되는 평가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조건에 따른 인정은 가능하지만, 조건에 따른 사랑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군요.


II. 기대

요약

Material Progress
  • 부엌논쟁: 닉슨은 서구 사회의 물질적 진보에 대해 설명, 실제로 서구 사회는 산업 혁명으로 물질적 진보 이루어냄

  •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물질적 진보의 결과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쇼핑몰도 보통 사람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게 됨

Equality, Expectation and Envy
  • 서구 사회 물질적 성공 - 지위에 대한 불안을 야기,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비교 - 만족이 척도 (흄)

  • 불평등 - 자연스러운 것 (아리스토텔레스), 신의 의지 (중세시대); 18, 19세기 정치 경제적 혁명 - 모든 인간은 동등 (홉), 미국 혁명 - 인간 평등의 실제적 실현 - 번영 속의 분노 (토크빌)

  • 제임스 공식: 자존 = 성취/욕망 - 성취를 늘리던지 욕망을 줄이던지; 세상의 발전 방향 - 욕망의 증진, 자서전, 매스미디어의 영향

  • 현대 사회의 증진된 부 - 모든 인류의 삶의 질 개선, 물질적 부의 증진이 선 (스미스) vs. 진정한 부 - 원하는 것을 얻는 것, 원하는 것을 얻거나 원하는 것을 줄이거나 (루소)

  • 욕망의 증가가 꺼지지 않는 불안 야기

개인적인 생각

저자는 정치적 경제적 변혁으로 증진된 인류 평등은 오히려 욕망을 키우게 되었고, 욕망 충족으로 오는 성취감이 자긴 만족의 척도이기에 인간들은 오히려 자존감을 얻기 어렵게 되었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지위에 대한 불안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워낙 경쟁이 보편화되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런 경향을 보인다는 것에는 동의를 합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철학, 과학과 그리고 종교적인 가르침이 경고를 하고 있기에 또 많은 사람들이 욕망의 함정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한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생존 경쟁의 산물인 욕망이 진정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욕망을 부채질했던 물질적 진보가 생존에 대한 불안을 줄여주어, 궁극적으로는 욕망을 잠재워 주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남들과의 비교보다는 개인적인 행복 추구를 통해 자존감을 확인하는 세상이 된다면 개인이 욕망을 조절하기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III 능력주의

요약

Three Useful Old Stories about Failure
  • 가난이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은 가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해석에 달려있음

  • 실패에 대한 세가지 이야기: 가난한 자들의 사회적 유용성, 가난에 대한 도덕적 의미는 없음,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함 - 가난한 자들의 자존감을 지탱해줌

Three Anxiety-Inducing New Stories about Success
  • 18세기 중반부터 등장한 도전적인 반대의 생각들 - 가난한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견디기 어렵게 함

  • 반대되는 세가지 이야기: 부자들의 사회적 유용성, 지위에 대한 도덕적 함의, 가난은 죄와 나태함, 어리석음의 결과

  •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맨더빌, 흄, 아담스미스 등 - 부자들의 유용성 강조

  • 능력주의 사회의 태동: 페인, 나폴레옹, 칼릴레 등 - 능력에 따른 고용, 미국의 SAT - 능력과 세상적인 성공의 연관성: 부에 대한 새로운 도덕 제시

  • 사회 다윈주의적 관점: 가난의 원인을 불운에서 실패로 이동시킴, 부자들은 자연적으로 우세, 사회복지에 대한 회의 - 스펜서, 스마일스, 카네기


개인적인 생각

능력주의의 등장으로 성공과 실패의 원인과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이 팽배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선진국 국민들의 행복 만족도가 후진국 국민들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자신의 처지에 대한 책임을 모두 자기자신에게 돌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어쨌든 실패에 대한 압박감이 증가해서 불안을 야기하는 주요 요소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이클 센댈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과도한 능력주의를 지양하기 위해 대학입시에 일정 부분 추첨제도를 도입하자고 했었는데요. 대학 진학의 실패를 운으로 돌림으로 인해, 사회적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평가로부터 개개인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실행가능성은 희박하나 여러가지 생각해볼만한 점들이 있어 독서토론 모임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사회 다윈주의 혹은 사회 진화론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신랄한 비난의 글을 써보고 싶은데요. 이는 진화라는 개념에 대한 오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진화는 자연현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로인해 발생하는 어떠한 결과들도 객관적인 옳고 그름의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마치 도둑놈은 달빛이 희미하기를 원하고, 보름달이 뜨면 인간으로 변하는 늑대에게는 밝은 달빛이 더 바람직하듯이, 매우 주관적인 의미만이 있다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생학이나 적자생존에 대한 순응은 마치 인류가 속한 자연세계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일종이 객관적인 선을 상정합니다. 그래서 그 선의 도달을 촉진하는 모든 것들은 선하고, 현존하는 모든 부조리는 지난한 선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합리화시켜주게 됩니다.


이로 인해, 사회 복지를 부정하는 생각들이 나왔고, 그것들이 현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자연선택이라는 현상에서 인류와 다양한 생물들은 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실험을 하고 그 결과로 개체들은 모두 다양한 개성을 가지게 됩니다. 단지 이 차이들을 당시 사회라는 단순한 차원에서 우열로 해석하는 것은 스스로 늑대인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현재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보편 인류의 생존 가능성 확대를 위한 선구자로 보는 것이 조금 더 합당한 시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현재 우리가 민족자주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것이 독립운동가들과 민주운동가들의 덕이었듯이, 인간 종의 생존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희생의 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IV. 속물근성

요약

  • 속물: 원래는 낮은 신분의 사람을 의미했지만, 인간의 가치를 사회적인 신분으로 판단하는 것을 의미

  • 유아기의 무조건적인 사랑 - 획득하는 신분와 특권에 따르는 조건적인 사랑 - 속물근성 자극 - 지위 불안

  • 사회적인 영향: 미디어의 영향, 속물이 속물을 양산, 이런 속물근성의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사회를 비난하는 것이 타당

  • 가난: 물질적 형벌, 무시와 무관심: 감정적인 형벌


개인적인 생각

작가가 소설가라 그런지 이번 장은 단락의 내용들을 한번에 읽고 논리적으로 연결하기 힘들었습니다. 핵심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인간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속물 근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신분이나 지위로 인간을 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물 근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개인이 가진 부가 신분과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적인 경향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생존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사실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인한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적으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 구도의 사회적 신분 경쟁에 자신의 삶 전체를 희생하지는 않는다는 말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 유명인사,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새태를 보면 입맛이 써지기도 합니다.


책의 뒷부분에 해답이 제시될 것이라고 예상은 해봅니다만, 해결책들을 생각해보고 싶기도 한데요.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는 개인적 차원의 해결책도 있을 겁니다. 또한, 인종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예와 같이 신분에 따른 개인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차원의 해결책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이 더 현실적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기는 합니다.


V. 불확실성

요약

  • 성취 위주의 사회: 개인 성취의 불확실성 증대 - 능력, 운, 고용주, 회사의 이익, 글로벌 경제에 종속

  • 실패에 대한 두려움: 성공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조건이라는 인식 때문

  • 자본주의: 마르크스 - 인간의 가치는 교환가치에 지나지 않음, 경제적 중요성이 인간적 중요성을 축소

  • 사회적 존경에 대한 갈구: 고용불안은 경제적 문제만은 아님, 불확실성은 지위 불안 야기


개인적인 생각

영어로 이번 장의 제목이 DEPENDENCE 인데, 한국어 책에서는 불확실성으로 번역을 했군요.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의 사회적 인정이 다양한 외부 환경에 종속되어있어서 불확실해지며 이로 인해 지위 불안이 생긴다는 관점에서 보면 종속이나 예속 혹은 무력감이라는 직역에 가까운 제목을 붙여도 됐을 것 같은데, 불확실성으로 의역을 한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결과의 책임은 내가 져야하는 암울한 상황이 머리 속에 그려졌습니다. 중간에, 경제학의 상반되는 두 진영의 상징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나와서 반가웠고요. Three Acres and Liberty 책도 인상 깊었습니다.


해법

I. 철학

요약

  • 취약한 명예: 자신을 경멸한 타인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이 불명예라고 여겨질 정도

  • 철학자들의 방식: 타인의 평가를 추론이라는 과정을 거쳐 타당성을 따지고 수용/거부

  • 철학적 인간 혐오: 대다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비합리적, 그러므로 타인의 평가는 무시하게 됨, 단점은 왕따

  • 철학적인 충고: 타인의 평가보다는 우리의 내적 양심이 제시하는 기준을 따라야 논리적으로 견고한 우리 가치에 대한 만족감을 가질 수 있음


개인적인 생각

이 책이 철학서적이고, 저자의 여러 타이틀 중, 철학자가 첫번째 나오기도 해서 이번 장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지위 불안의 큰 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평가에 의존한다는 주장에는 동의를 하는데요. 그 주장에 대한 철학적인 논쟁거리가 많음에도 역사적인 예 몇가지만 언급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철학적 해답 역시 합리주의 혹은 이성주의 철학에 근거한 해답만 제시가 되었다는 아쉬움도 있었고요. 관념론 철학으로도 충분히 답변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모든 것은 나의 인식 과정의 해석에 달려있다는 식으로요.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철학적 해법의 결과는 사회적 왕따일 수 있다는 점인데요. 단순한 정신 승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자기 수양과도 같은 공부를 통해 온전한 정신 승리를 이루어야 왕따의 고독함을 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궁금한 점은 과연 그게 가능할까입니다. 모두가 유명한 철학자나 부처의 경지에 도달해야지 가능할까 싶기도 합니다.


한편, 철학적 인간혐오(Misanthropy - 한국어 책에서는 어떻게 번역을 했는지 궁금하네요)가 타당한 방법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직관, 감정, 습관과 같은 전통적인 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기는 하지만, 합리주의가 대세가 된 현대 사회는 이성의 잣대를 누구나 다 사용한다고 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타인의 거북한 평가를 단순히 무식한 평가라고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요? 또 한번의 정신승리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II. 예술

요약

예술: 인생을 설명해줌으로써 긴장과 불안에 대한 효과적인 해독제 역할

  • 예술과 허영: 문학과 그림 등을 통한 다양한 사회적 신분과 관련된 계층화에 대한 예술적 도전, 세속적 명예와 존경에 대한 허영된 생각을 고쳐줌

  • 비극: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 기쁨에서 악몽으로 변화, 실패는 악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하마티아에 기인 - 실패와 패배와 관련된 세속적 관점을 극복하여 좀 더 너그러운 관점을 가지게 해줌

  • 희극: 농담은 비평의 매우 효과적인 수단, 상류층을 비판할때 유용 - 동시에 사회불안을 감소시킴, 지위에 연연하는 우리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수용

개인적인 생각

읽어보지 않았던 책들도 많이 소개가 되어있어서 숙제가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할 책들이 많아 진다는게 책 읽는 분들의 공통적인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가지 더 안타까운 딜레마는 시간은 점점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래서야 예술이 지위 불안 해소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극의 효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심층적으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타인의 비극이나 비참함을 바라보면서 공감도 하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만족감을 주는 경향도 있다고 들었었는데요. 타인에 대한 공감을 통해, 비극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자각이 주는 긍정적인 부분도 충분히 일리가 있어보입니다.


III. 정치

요약

정치: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시대에 따라 변화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 정치적 투쟁: 존엄성을 위해 사회의 명예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행위

  • 상업적 능력주의: 현대 사회에 부와 능력 자연스럽게 지위와 행복을 결정, 사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 물질 만능주의에 반기를 든 학자들 - 돈과 도덕적 평가, 부와 미덕의 연결을 거부, 내재적 불평등을 고려하여 평가 필요

  • 정치적인 변화: ex) 남성우월주의 - 버지니아 울프: 재고해볼 가치가 있음, 마르크스: “지배계급의 생각이 항상 지배적인 생각“, 자연적이고 영구적으로 보이는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이해하면 변화가 가능

개인적인 생각

Politics(정치)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계기가 되었던 부분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이해집단의 충돌을 조절하여 국가나 단체를 운영하는 활동이 정치의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이 책에 나오는 것 처럼 불합리한 상황에 처한 개인의 처지를 개선하는 활동이라고도 정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활동을 국가나 집단의 관점에서 보는가, 개인의 관점에 보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정치는 나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지배당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남성 우월주의나 물질 만능주의에 비하면 그 역사는 턱없이 짧을 것 같지만, 그 영향력은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지배계급의 사상이라고 간단히 치부하기는 힘들 것 같고요.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기존의 이데올로기보다 우월한 부분들이 있어서 시대정신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나 해석해봅니다. 물론, 능력주의보다 뛰어난 이데올로기와 새로운 시대가 오리라고 기대해보면서요.


IV. 종교

요약

죽음: 세상적인 성공의 허망함을 인식, 신적 해답을 요구, 기독교적 도덕 - 세상적인 것은 유한, 우리 모두는 신앞에 평등, 거대한 우주로 시선을 돌려 개인적 차이의 중요성을 축소

  • 공동체: 세속적인 세계관과 종교가 주는 세계관, 일반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치가 확인될때, 특별한 가치 추구의 욕구가 줄어듬

  • 두가지 도시: 신의 도시와 세속의 도시 - 일차원적 성공의 압제로부터의 자유, 세상적인 힘과 영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동시에 주창

개인적인 생각

세상적인 성공에 대한 죽음과 종교가 주는 해결책에 대한 설명들이 길게 나와있었습니다. 죽음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덧없다는 허무주의와 회의주의로 빠져들 수 있다는 함정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종교가 유의미함을 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현실의 삶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하므로 죽음을 관통하는 영원의 시간에 지속적인 의미를 가지는 영적인 가치의 추구가 합당하다는 것이겠지요. 실제로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세상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분명 위안이 되기는 할 것입니다.


죽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생의 관점과 종교는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하는 부조리한 지금까지의 세상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낸 일종의 피치못할 탈출구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종교는 세상의 모든 수고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죽음이 낳는 허무주의에 대해서도 좋은 해답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나날이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수의 패배자들을 허무주의에서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편, 영어책은 RELIGION으로 번역을 해놓고, 한국어책은 기독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독일어 원본에서는 어떤 단어를 사용했을까 궁금해집니다. 본문이 주로 기독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기독교 외 다양한 종교적 생각들이 있는 한국에서는 단순히 종교라고 번역하기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경우 기독교 문화가 주류였기에 종교라고 번역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는데요. 지위 불안에 대한 죽음과 일반적인 종교적 해법을 다루었다고 보면 한국어 책도 종교라고 번역하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V. 보헤미야

요약

보헤미야: 집시를 지칭, 민주적 교회의 역할, 부르조아식의 높은 지위에 당위성에 대한 도전, 예술 - 영감있는 대화나 지적권위 > 돈: 영혼을 파괴

  • 집단생활: 주류 문화의 영향을 줄이기 위함, 소외된 집단의 의로움 - 기독교적 사상과 유사, 과도한 추구로 역설적으로 생존을 위한 단순한 생활에 빠지기도 함

  • 부르조아 이데올리기에 대한 효과적인 도전: 시인, 여행가, 에세이 작가와 같은 사람들의 롤모델 제시 - 성공과 지위에 대한 다양한 개성이 존재하며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

개인적인 생각

역사가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평등을 이룰 수 있을까는 제가 즐기는 토론 주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보다 실질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진보의 완성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유발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기계문명의 발전으로 생존에 필요한 생산의 시간을 기계가 모두 담당하고, 기계문명의 생산물을 모두 공평하게 배분을 해줌으로 인해 평등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추축해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부와 그 부를 늘리기 위한 능력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두가 보헤미안이 되지 않을까요?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과도한 보헤미아니즘의 추구가 역설적으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을텐데요. 물질적 진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설픈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존의 고단함으로 인해 자살로 인생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보헤미안이 현재 적절한 해답이 되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현대 선진국들의 경우를 보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생존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부나 성공에 대한 추구는 존재하지만, 생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시간들로 인해 개인의 삶의 의미를 중요시하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스 로슬링이 팩트풀니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은 물질적으로 진보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도 보다 평등한 사회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인간 개체들의 원초적 욕심을 잘 제어해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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