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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력 -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오브진의 한줄평 : 꼰대력이 강력한 독서 찬양론


 

2022년 첫 도서로 ‘독서력’이란 책이 선정되어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책 읽기에 대한 책을 선정하신 운영진의 의도는 독서에 대한 효용성을 다시 한번 상기 시키고 새로운 마음으로 책 읽는 습관을 잡아 가고자 함 일것으로 사료 됩니다. 하여 저의 서평은 책 내용에만 집중하기 보단 책 선정 의도에 맞게 조금이라도 자극이나 영감이 될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서에 관한 책을 포함하여 여러 자기계발서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 하기보단 뻔한 이야기를 재생산하기 바쁘고, 너무 쉽게쉽게 “너도 할수 있어” “너도 위대해 질 수 있어”란 듯한 헛된 꿈팔이 처럼 보여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책을 좋아하시고 다독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자기계발서를 즐기시는 분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후자로써, 특히 새해에 자기계발서들을 찾아 읽고 독서법 관련 서적도 즐기는 편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이 쓰는 향수, 즐겨먹는 음식, 그 사람에 관련된 모든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것 처럼. 책을 좋아하다 보니 수집, 정리, 책 선정 방식 등 다른 사람들은 책에 관련 한 모든것을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게 되더라고요.


이러한 저의 편향에도 ‘독서력’은 많이 아쉬운 책 이였습니다.

몇 가지 비판을 하자면 :


1.과잉 일반화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꼰대력에서 시작해서 과잉 일반화로 끝나는 주장들 때문입니다. 아래 추가적인 비판들도 모두 과잉 일반화의 결과 입니다. 예를 들어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면 건강에 좋다” 라는 주장은 반증 할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 된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잉되어 “운동을 하면 인생이 행복해 진다” “운동을 하면 국력이 상승한다” 등 건강의 이로움을 가지고 극단적이거나 강압적인 주장을 하는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마음 가짐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나 통계, 실험, 사례 등의 자료는 부실한 상태에 뻔한 일반상식을 엮고 엮어서 과잉된 주장들을 설파는 이 책은 누구에게 이로운 영향을 끼칠수 있을까 의심됩니다.


2.시대별 독서량의 차이

최근 유행했던 “라떼는 말이야..”라는 꼰대를 대표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자는 요즘 30대는 책을 안읽는다, 요즘 학생들은 책을 안읽는다 등에 우려를 합니다. 독서량이 많았던 옛세대와 그 당시 경험 했던 일본의 경제 성장을 비교해서겠지요. 일단 평균 독서량과 경제성장률에 관계가 없다는것은 중국을 보면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독서량의 감소는 위험하다는 걱정은 유효합니다. 일반적으로 다양하고 자극적인 엔터테인먼트가 상승하면서 독서량이 하락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건 지식의 양 아닌가요? 저는 현대의 평균 독서량 하락과 상관 없이 평균 지식량은 상승한다고 느껴집니다. 첫째는 책을 대체할 수 있는 질 좋은 정보가 엔터테인트먼트로써 생산된다는 점 입니다. 문학을 대체 할 만한 영화나 드라마도 있고, 자연과학책을 대체 할 만한 호기심 해결 유튜브 동영상도 넘쳐나고, 이 외 인터뷰, 다큐멘터리 등 책에서는 구하지 못할 보석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예로는 wonderwall.kr 이라는 플렛폼을 이용하는데 masterclass과 같이 현업에 종사하는 아티스트들이 직접 인터뷰 및 강연을 하는 영상을 제공하는 플렛폼입니다. 출판업계에서는 기획 할수 없는 스케일의 프로젝트로써 21세기의 축복이 아닌가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특수 이익 집단에 스폰을 받아 출판 되는 책 보단 아무개가 만든 5분짜리 유튜브 비디오가 건강 할 수도 있습니다.


3.교육제도 속 독서의 부재

저자는 대학교 교수직에 계신다고 하는데, 교육제도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계신것인지 궁금합니다. 저자는 학생들이 독서량이 적고 이것이 개인의 발전과 더 나아가 국력을 저해 한다고 걱정을 합니다.(“대학생이 독서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확실히 한 국가의 추락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에 뿌리가된 경제적 계념으로 전문화(Law of Specialization)와 비교우위론 (Comparative Advantage Theory)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경제적 발전은 경제적인 효율을 가능하게 하는 분업과 전문화로 부터 오는것 입니다. 고등교육은 산업화에 맞춰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을 가르치는 기관입니다. 저도 고등학교때 셰익스피어를 덜 읽은것 같아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지만, 저자의 과잉 일반화는 교육기관의 본질도 보지 못하게 하는것 같아 독서력의 기능에 회의적이게 되네요.


짧게 준비하려고 한 비판이 길어진것 같네요.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 큰 이유는, 저 또한 책을 좋아하기 때문 입니다. 제가 아끼는것이 잘못 포장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요. 하여 책 내용에서는 조금 벚어날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번 책 선정 의도인 독서 습관에 대한 자극이 될수 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싶습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유명한 영화 평론가이자 자칭 ‘애서가’인 이동진 작가가 어떻게 책을 대하는지 알게되어 개인적으로 큰 자극이 된 경험이 있습니다. 독서의 유용성에 대한 일반론 보단 자신이 어떻게 책을 수집하는지, 어떻게 책장을 제작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어렸을적 비디오방에 들려 오늘은 어떤 재미난 영화를 볼까 신났던 저의 모습도 기억나고, 순수하게 책을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전달 되어 저도 빨리 독서가 하고 싶어지는 책이었습니다. 저자의 추천 500 독서목록도 쭉 잃어 보면 제가 읽어본 책이나 앞으로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이 많구나 자각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열한 계단-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이라는 책도 너무 좋은 영감이었습니다. 저자 채사장은 자신의 삶의 성장이 계단식으로 상승 했다고 생각하며 11번의 스텝 업 경험을 나누어 줍니다. 예를 들어 도스도예프스키의 죄와벌, 신약성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등이 있습니다. 반에서 꼴등하던 학생이었던 자신이 여름방학때 우연히 읽게 된 죄와벌로 인해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고 문학과를 들어갔다가 서양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책이란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수 있구나 목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언제 어떤 책이 이러한 스텝업을 경험하게 해줄지, 나의 삶을 깊게 성숙시켜줄지 기대하게 됩니다.


사실 저에게도 유사 경험이 있긴 합니다. 저의 경험은 ‘독서력’에서 제시 된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것이다”와는 상충되고, 그렇다고 ‘열한 계단’에서 처럼 특정 책이 직접적인 자극제가 된것은 아니였습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독서량이 없다시피 했던 저의 고등학생 시절, 저는 삶의 허무함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 했었습니다. 밤을 지새우며 새벽을 마주하는 일상이 정상적인 생활을 아주 벗어난 심각한 늦사춘기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러던중 어느 새벽 아침 새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리던 날, 유레카! 하는 순간 처럼 전에 여름방학 권장 도서로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내용이 정리되면서 실존주의(Existentialsim)와 부조리주의(?)(Absurdism)의 차이가 정립되고 계단식 성장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채사장처럼 이 책이 자극제가 된것은 아니었지만 성장의 씨앗 혹은 영양분이 되었고, 어떠한 상황과 다른 여러 영양분과 함께 저의 삶의 다음 챕터로 인도한듯 합니다. 마치 임창정의 ‘늑대와 함께 춤을’ 들으면 중학교 1학년 수련회때의 첫키스가 기억 나는것 처럼, 특정 책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마킹 해주는 마일스톤이나 책갈피 같은 느낌입니다.

고등학교때를 회상하니 또 “축적된 독서량”에 반대되는 경험이 생각 나네요. 이건 12학년 때 필독 도서였던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관한 경험 입니다. 10대에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는 당시 뉴머니/올드머니를 대변하는 교육적인 책으로 읽혔습니다. 20대 초반에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것을 불사하는 한 남자의 뜨거움, 그리고 20대 후반에 3번째로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스트로 읽혔습니다. 하나의 책이 축적된 독서량에 따라 다르게 읽혔던 것일까요? 저는 축적된 독서량과 상관없이 저의 삶의 경험이 쌓여가고 여러 다른 영양분과 책이 혼합되는 현상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 됩니다.


예를 들어 축적된 독서량이 많은 사람과 많지 않은 사람이 신약성서를 처음 읽는 다면, 누가 더 잘 읽을 까요? 신약성서를 잘 읽는 다는것은 무엇일까요? ‘독서력’을 패러디 하자면, “독서는 머리로 하는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것도 아니다. 독서는 마음으로 하는것이며, 이것은 삶의 길을 걷다 바람에 아카시아향이 나는것 처럼 우연히 찾아오는 선물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우연의 확률을 높이려면 다독 해야겠네요.


서평을 마무리하며 ‘독서력’에 나온 독서법 중 저도 동의하는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브진의 독서법:


1.여러권을 동시에 읽기

최근에는 다독을 하지 않아서 어디가서 책읽는다는 소리는 못하지만, 한창 다독을 했던 20대에는 1주일에 3권정도 (인문학 2권, 문학 1권)를 오랜기간 읽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인문학도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면 내용이 섞이는 일도 없고 집중력도 잘 유지되었습니다.


2.완독에 집착하지 않기

처음 다독을 시작하면서 완독에 집찹하여 진을 빼기도 했었는데. 어차피 인문학 책은 중요한 내용은 20% 정도 이해하면 충분하고 소설은 80% 정도 기억되는것 같습니다. 무엇 보다 100% 유지되지 않는 기억을 가지고 완독을 고집하는것은 실용적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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