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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 우화의 재미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주제보다 작가가 인물이나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 자체에 더 재미를 느낀다. 내가 기억하는 우화는 아기돼지 삼형제나 개미와 베짱이 정도였는데 그 우화의 특징은 사람이 그저 동물의 탈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동물들에게서는 동물의 특징보다는 사람의 특성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동물농장이 보여주는 묘사가 재미있고 결국 그 묘사들이 주제를 뒷받침하게 되는 것은 조지오웰이 각 동물들의 특징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무거운 주제를 내포하고 있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간간히 웃음이 새어나올 수 있었던 것도 조지오웰이 등장인물들을 동물로 바라보는 시선을 끝까지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몇 가지 장면을 공유해보자면, 주인을 몰아내고 농장을 처음 장악했던 동물들이 몇 일째 젖을 짜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암소의 젖을 짜주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젖을 짜 본 적 없는 동물들이 어쩔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돼지가 당당히 자신의 족발을 보이며 암소의 젖을 짜는데 성공한다.

돼지 굽의 갈라진 모양을 기발하게 적용시킨 장면이라 작가의 센스에 감탄하면서 우화의 재미를 깨닫게 된 장면이기도 하다. 조지 오웰이 그저 재미를 위해 그 장면을 묘사한 것은 아닐테고, 우유는 그들의 첫 수확물이자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그들의 강령을 위반하게 되는 문제의 수확물이 되기도 한다.


돼지 족발은 이후로도 여러번 등장하게 되는데 노동의 장면에서가 아니라 회의에서 장내를 정리하고 자신의 연설에 주목하게 할 때나 반대파를 제거하는 신호를 줄 때 권력의 상징으로서 등장한다. 족발과 권력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 진지한 장면에서 웃음이 새어나오게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치켜들었던 족발은 결국 발이 아니라 손이 된다.

돼지들은 두발로 서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걷는 모양새가 볼품없더라도 결국 두발로 서고 걷게 된다. "Four legs are good, Two legs are bad"라는 그들의 강령이 "Four legs are good, Two legs are better"로 바뀌어버린 장면은 돼지의 위태로운 직립행렬과 함께 변질된 동물농장의 민낯을 보여주는 씁슬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동시에 준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라고 몇 십분씩 울어대는 양떼를 돼지편에 세운 것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동물농장에 처음부터 토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물들이 진정한 자유를 깨닫길 원했고, 글을 가르쳤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의 기쁨 등이 공유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토론이 시작되려고 하면 양떼들은 막무가내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 30분씩 지속되는 양떼들의 소란에 회의는 쉽게 해산되었고 소설 말미에는 돼지들이 양떼들을 따로 모아 자신들의 권력을 뒷받침 해줄 슬로건을 연습시키기도 한다. 양은 시력이 나빠서 앞에서 움직이는 것을 졸졸 따라가기도 하고 리더하는 양을 따라 행동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종잡을 수가 없고 무조건적으로 권력에 충성하는 동물로 양을 선택한 것도 오웰의 세심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양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소음으로 인한 피곤함이 독자인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코러스 같은 역할을 담당하기도 해서 그 장면들이 무척 연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묘사들은 그 자체로 재미를 주기도 했지만 겹겹이 쌓여서 주제를 드러내는데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특정시대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비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권력의 문제는 도처에 있다. 그리고 동물농장은 이 책을 읽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고 싶게끔 한다. 인간들과 파티에서 카드게임을 하며 열을 올리는 돼지들을 번갈아보며 누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된 동물들을 비추면서 동물농장은 막을 내린다. 분명 씁쓸하고 우울한 결말이고 우리 삶을 적용해봐도 뾰족한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터라 더욱 무거운 책이지만, 우화라는 형식이 가진 유머와 재치에 힘입어 완독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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