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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 1차 - 도덕감정론 3차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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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 1차 - 도덕감정론 3차 모임
인문고전 1차 - 도덕감정론 3차 모임

일시 & 장소

Jan 06, 2022, 10:00 PM – Jan 07, 2022, 1:05 AM

Online Event

참가자

모임 세부사항

주제 1

 “공정한 관찰자를 과연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공정한 관찰자가 “한 개인이 생각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관점”을 대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정한 관찰자의 관점이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배척당할 수도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주제 2 제 5부 제2장 : 2-10. 행위의 적정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한글본 (391p)에서 언급된 <문명한 국민들 사이에서의 예절(rules of Decorum)>에 대해 토론하고자 합니다. 첫째)‘키케로는 로마의 예의범절이 가장 발달하였던 시대에, 원로원과 전체 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최대한의 비통함으로 울어댈 수 있었으나, 그 때문에 그의 품위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거의 매번 연설이 끝날때 가서는 틀림없이 그렇게 울었음이 분명하다. 둘째)그러나 로마초기나 미성숙한 시기의 연설가들은 아마도 그 당시의 예절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그처럼 풍부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추측하기로, 스키피오, 렐리우스, 대 카토가 공중 앞에서 이런식으로 자신의 연약한 감정을 드러냈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적정성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키케로는 BC60~50년대 & 스키피오, 대 카토는 BC200년대에 정치활동을 했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의 약 150년간의 시간동안 인간 행위의 적정성에 대한 가치관에 많은 변화가 생긴 사례로 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경우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행위가 가장 적절하고, 케케로로 말한대로 데코룸하게 보이는 행위 일까요?

주제 3 제5부 2장 : 2-15. 관습에 따른 행위의 적정성  

 한글본 (395p)에 나오는 영아유기 사례 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모든 도시에서, 심지어 가장 예의 바르고 문명화된 아테네인들 사이에도 허용된 관행이었다. 그리고 부모의 사정 때문에 어린아기를 기르기 어려울 때에는 언제나 갓난아기를 내버려두어 굶어죽게 하거나 또는 짐승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더라도 그것은 비난이나 규탄을 받는 일이 아니었다. 이는 그리스 후기때 까지고 중단 없이 지속되어 온 관습이 그런 악행을 용인하였는데, 가장 공정하고 정확해야 할 철학자들의 이론조차도 확립된 관습에 이끌려 옆길로 빠져버렸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악습을 이야기 하면서 위정자가 많은 경우 장려해야 할 사항으로 말하고 있고, 인자한 플라톤도 같은 의견이었으며, 그의 저서 어디에도 이 관행을 전혀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일은 누구나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라고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21세기에도 잘못된 관습으로 내려오는 전통행위가 적정성에 위배되는 사례는 없는지 토론해 보고자 합니다. 영아유기로 예를 들면, 요즘도 전세계 곳곳에서 영아유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미혼모 또는 젊은부부들이 영아를 유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영아를 키울 능력이 안되면 법으로 유기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즉, 영아를 가까운 경찰서나 소방서에 데리고 가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포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왜 아직 이런 적정한 행위가 법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용납이 안되는 걸까요? 같이 토론해보면 좋겠습니다.

주제 4 효용

 스미스는 효용은 미의 주요 원천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는 흄의 말을 인용해서 어떤 대상물의 효용은 그 대상물이 촉진할 수 있는 즐거움 또는 편리함을 그 소유자에게 끊임없이 줌으로써 그 소유자를 기쁘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방관자는 동감을 통하여 그 소유자에 공감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소유주의 대저택에 방문했을 때 방관자는 대저택의 주인이 되는 상상을 통해 이 저택이 주는 즐거움과 편리함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스미스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러한 감정은 그 대상물이 의도한 목적 그 자체보다 높게 평가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방에 들어 갔을 때 방 안의 의자가 모두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는 효용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의자들을 제자리에 놓고 비로소 효용을 느낍니다. 이 예에서 본질적인 효용을 생각한다면 (즉, 의자의 원래 목적인 앉음으로써 오는 효용) 우리는 의자가 중앙에 있어도 그 의자에 앉으면 됩니다. 우리는 왜 그러지 않는 것일까요? 스미스는 우리가 원한 것은 편리함 그 자체가 아니라 편리함을 촉진시키는 그러한 사물의 배치였다고 생각합니다.일상에서 이러한 사례를 경험한 것을 공유할 수 있을까요?

주제 5 사회에 대한 효용

 스미스는 위와 같은 것은 사소한 대상에 관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의 아들은 부자들의 생활여건을 부러워합니다. 그는 부자가 됨으로써 느낄 수 있는 효용보다 부자가 누리는 환경이라는 효용을 더 집착합니다. 소소한 일상이 아닌 사회 전반에 관한 사례를 논해보고 싶네요.

주제 6 보이지 않는 손

 토지의 생산물 중 부자는 단지 가장 갑나가고 가장 기분 좋은 것을 선택할 뿐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부자여도 가난한 사람보다 별로 많이 소비를 하지도 못한다고 하네요. (아마, 한계효용의 개념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게 된다고 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생산물이 똑같이 나누어졌을 경우에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분배를 하게 된다고 주장하네요.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무의식 중에, 부지불각 중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인류 번식의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고 합니다.스미스 하면 생각나는 시그니쳐 격인 단어 보이지 않는 손이 드디어 나오네요. 이러한 스미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제 7 허영과 오만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자기제어와의 균형.

Join Zoom Meeting  https://bmcc-cuny.zoom.us/j/7173284081

Meeting ID: 717 328 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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