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지는데요. 몸에 착 달라붙어서 귀찮게 구는 파리가 나오거나 혹은 냄새 나고 더러운 캐릭터의 대왕이 나오는 소설인가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어 나가면 파리나 혹은 그런 대왕은 나오지 않고 어리게는 6-8살, 많게는 12-13살의 소년들이 불의의 사고로 바다 한 가운데의 무인도에 불시착해서 구조될 까지의 생존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문명을 대표하는 랄프와 야만을 대표하는 잭을 통해 무인도라는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는 그리고 어른 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에 본능에 맡겨 행동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무인도에서 우리가 이성적이고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문명적인 삶, 그리고 구조를 위해 불을 피우는 미래지향적인 삶을 지향하는지 아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그리고 두려움을 통해서 그 무리를 컨트롤하는 문명과는 정반대의 삶을 선택할지… 지식의 체계나 이론이 갖춰진 어른이 아닌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우리의 본능은 무엇을 따라가는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가도 긴장감과 공포감으로 우리를 몰고갑니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의 본능은 악을 따라가게 되어있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요? 잭의 무리들이 멧돼지를 잡아 죽이는 장면에서 보이는 폭력성과 야만성, 피 흘림, 괴성,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얼굴에 색칠을 하고 그 뒤에 숨어서 좀 더 대범하게 창으로 다른 아이들을 찌르고 결국에는 Simon과 Piggy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사냥을 하면서 끝까지 랄프를 찾아 죽이려고 하는데요. 뒷장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야만성은 극에 달하게 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면서 이들의 순진함은 어느 순간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랄프를 응원하고 있지만 그는 너무나 약합니다. 겉모습은 리더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실은 그 내면은 확신에 찬 소신도 없고 그리고 빠른 판단력도,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강함과 대범함도 부족해 보입니다. 반면에 잭은 너무 폭력적이고 악하기도 하고 논리도 비이성적이지만 무리를 선동해가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선은 이렇게도 나약하다면서 비웃듯이요…
파리대왕은 책에서 두 세번 정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잭이 멧돼지를 사냥한후 그 머리를 짤라서 막대에 꽂아 두었는데 막대를 따라 돼지의 피가 흐르고 있죠. 파리대왕이 그 멧돼지의 머리를 맴도는 파리떼중의 대왕인지 아니면 이 잘라진 멧돼지의 흉측한 머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이곳에서는 악마적인 힘을 말하고 있고 그 악마적인 힘은 나중에 사이먼을 사로잡아 버린 것 같습니다.
랄프를 응원했지만 사실 우리가 잭이 되지 말라는 법도 그리고 잭의 편에 서지 않는다는 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제목이 왜 파리대왕 일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궁금했는데요. 책을 다 읽고도 사실 명확하게 거기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는 것인지, 아님 우리 인간은 이렇게 선보다는 악에 더 가깝고 거기에 쉽게 휩쓸리고 그 기괴하고 흉측하게 짤려나간 멧돼지의 머리와 같은 대왕의 힘 앞에서 우리는 이성과 문명보다는 본능과 야만에 더 가깝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지..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여자아이들은 나오지 않는 것인데요. 책을 읽으면서 여자아이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혹시 상황이 달라졌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처음에서 중간부분까지는 조금 따분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는데요. 뒷부분으로 가면서는 긴장감과 함께 서서히 야만인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생각할거리들을 주는데요. 읽어 보시길 강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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