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부질없는 면면들을 들춰내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인생 속에의 부질없었던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밥벌이 수단으로 살아가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전공했던 지질학에 대한 대학 시절의 그 넘치던 열정은 모두다 부질없는 것이리라. 인적은 커녕 길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는 강원도 험한 산 속을 떠돌면서 남들 눈에는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 샘플들을 소중히 모아가며 고생했던 그 시절을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와 같이 헛수고라 하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 같다. 지금 돌아가는 세상과 그와 함께 떠내려가는 내 삶을 돌아보면 학생운동 시절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는 그 열정이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는다. 어쩌면 40 중반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 돌아보는 인생에는 참으로 부질있는 일들보다 부질없는 일들의 자리가 더 많은 듯 하다.
그런 일종의 회한과 반성 같은 것들로부터 나름 인생의 교훈이라고 습득한 것일까? 자연스레 어느덧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질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40 중반에도 아직도 세상을 바꿔야한다는 열정의 기력이 쇠하지 않은 아내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중학생인 딸에게는 모든 삶의 요소들이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으로 가는 것과 잘 정렬이 되어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것들은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잔소리 꾼이 되어버렸다. 회사에서는 조직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소한 일들에 사활을 걸려고 하는 부하 직원들의 부질없음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지게 된다. 나는 이제 깨달았다는 교만함일테다. 주위 사람들 속의 삶에서 발견하는 그 부질없음들을...
소설 속 고마코의 부질없는 일들에 대해 헛수고라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시마무라의 생각에 동화되면서도, 책임을 져야할 처자식을 버려두고 고마코를 만나러 온천장 마을로 매년 발걸음을 하는 부질없는 시마무라도 판단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저 그렇게 아름다운 고마코에게 차마 헛수고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시마무라를 보면서 일종의 공감을 느끼게 되어 그냥 그를 바라보게 된다. 그냥 그렇게 있는 설국의 눈과 은하수와 아름다운 산들처럼, 우리의 부질없는 일들도 그렇게 있을 수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 부질없는 일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하고 활기차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냥 외딴 산골의 한낱 게이샤인 고마코가 그리고 요코가 시마무라에게 남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들도 모두 그 부질없는 것들에 기인한 것이리라. 그렇게 좀더 넓은 마음으로 내 인생의 부질없던 일들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생각으로 내 주변 사람들의 부질없음을 품어주면 그들의 아름다움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한편이 서정시와 같은 이 소설은 일상들의 면면을 그려낸 영화와 같은 소설 천변풍경과 마찬가지로 기승전결이 없다.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는 온천장 마을의 게이샤 고마코와 동네 처녀 유코, 그녀들을 찾는 시마무라가 그냥 등장한다.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그곳의 자연과 고마코, 유코의 아름다움들은 시마무라와 고마코와 유코의 헛수고들과 어울려 그려지고 느껴진다. 게이샤에게는 필요 없는 고마코의 문학에 대한 동경과 글쓰기,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유코의 헌신, 가정이 있는 시마무라의 그녀들에 대한 감정, 그 모두가 헛수고일 것이다. 그 헛수고들이 그곳의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냥 담담히 묘사되어지고 있다. 그냥 존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인생의 중요한 본업과 관련이 없는 그 부질없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일 수 있다는 넓은 아량을 소설의 말미에 독자에게 선사하는듯 하다.
제가 기억하는 설국은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적인 문체로만 남아 있는데, 바람님의 서평을 읽어보니 시대 정서상 허무주의 소설이었던것 같은 기억도 떠오르네요. 홍시님이 언급하신 아리아의 서정성과 설국속 겨울의 이미지로 하여금 저는 지금 비발디의 오페라 “파르나체” 중 ‘내 피가 얼음같이 느껴지며’ 를 듣고 있습니다. (Ian Bostridge: https://www.youtube.com/watch?v=NVaaG90xkYw) 지질학에서 부질학으로... 농담이구요..
열정 혹은 삶의 긍정이 너무 컷기에 작용반작용 같은 물리법칙 처럼 아쉬움도 크셨던게 아닐까 사료 됩니다.
누구는 신발끈이 풀렸다는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고.
누구는 아침에 새지져김을 듣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기도 한다네요.
부질없어서 허무할 수도 있겠지만, 부질없지만 아름다울 수도 있는것 같습니다.
-21세기가 간절히 원한 사랑꾼, 오브진 올림. ㅎㅎㅎ
얼마전 어느 무더운날 맛차 눈꽃 팥빙수를 조심스레 아껴가며 음미하듯 읽었던 설국입니다. 첫문장부터 끝까지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시는 바람님의 울림있는 멋진 서평에 감탄하며 일본 전통악기 샤미센 연주를 잔잔히 깔고 몇자 적어보렵니다.
저역시 대학시절에 오페라 가수를 꿈꾸며 뜻도 정확히 모르고 외우고 연습하던 수많은 아리아들은 점점 잊혀져가고, 너무 지겨워 치기 싫던 피아노를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하면 재밌게 가르칠까를 늘 궁리하는 현실에 그만 헛웃음이 새어나옵니다.
그러나 부질없는 많은것들이 삶을 풍성하게하는것일수 있다는 말씀에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며, 남은 생에선 저의 헛수고들 앞에 보다 아름답고 따뜻한 긍정적인 수식어가 붙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