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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토지 11-20권 독서 노트

Updated: Aug 26




3부 11권 3편 12장

죽음은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것 같았다. 무더기무더기 널려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 지난 세월은 자신과 아무런 인연이 없고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조차 낯선 나그네처럼 지나갈 것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세월은 살아서 몸을 일으키고 그 수많은 죽음들이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어 용이에게 육박해오는 것을 느낀다. 부모와 누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강청댁의 얼굴이며 월선의 얼굴이며 임이네 얼굴이며 최치수, 윤씨부인, 별당아씨 얼굴이며 노비들, 윤보에 한조, 서금돌, 김훈장, 어찌 다 셀 수 있을 것인가. 삼월이며 김평산, 귀녀, 칠성이, 핏자국 같은 그들 생애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가을 들판에, 베어서 눕혀놓은 볏가리처럼 멀리 가까이, 넓은 가을 들판에 베어서 눕혀놓은 볏가리 그것은 모두 죽음들이며, 죽음에 이른 무수한 삶의 이력, 삶의 잔해만 같은데 용이는 홀로, 그것들에 둘러싸여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엄습해온다. 저승과 이승의 끝없는 벌판을 무엇들이 그렇게 애타게 살다 갔더란 말인가. 그리고 혼자 살아남았는가.


3부 11권 3편 15장

모래밭을 지나서 봉기는 둑을 기어 올라간다. 웃음 때문에 배창자를 움켜쥐고 싶었던 충동이 일시에 가신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치민다. 산다는 것이 통곡인 것만 같다. 오뉴월, 커가는 새끼를 먹이려고 야위어진 까치 생각을 한다. 봉기 늙은이도 그 야위어지는 까치 한 마리였다는 생각을 한다. 강물이 희번득인다. 밤에도 쉬지 않고 흐르는 강, 세월의 눈금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오만하고 냉정한 젊은 여자같이 강물은 혼자 흐르고 있다.


3부 11권 3편 18장

눈을 뜨고 노을이 타는 철창문을 또 바라본다. 생애를 통하여 철창문에 비치는 저 노을만큼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시 눈을 감는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환이는 자신의 생애가 성인의 길이 아니었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투쟁과 방랑과 애증(愛憎)과 원한의 가파로운 고개를 넘은, 평지가 오히려 발끝에 설었던 오십 평생은 마음과 몸이 피로 물들었던 것처럼 격렬했었다. 환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인지 그것을 생각한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여장을 다 꾸려놓고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그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에 열리지 않을 벽을 두드려본들 무슨 소용인가. 눈을 감은 채 환이 싱긋이 웃는다. 여러 해 전부터 진달래꽃의 여인은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저고리를 벗어 시체를 싸고 묘향산 골짜기에 묻어버린 여자, 묻고 나서, 지나간 지상의 세월은 여자와 더불어 영원히 사라진 바람인 것이며, 영겁의 세월이 흐르고 있을 저 머나먼 곳에서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는가고, 환이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았던 푸른 은빛의 그 밤하늘.

‘그 꽃 따서 화전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

여자의 목소리는 진달래꽃 이파리가 되고, 꽃송이가 되고, 계속하여 울리면서 진달래의 구름이 되고, 진달래의 안개가 되고, 숲이 되고, 무덤이 되고, 붉은 빗줄기, 붉은 눈송이, 붉은 구름바다, 그 속을 걷고 있다는 환각에 빠져 쓰러지면은 꿈속에서 오열하였고 꿈속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처음에는 번번이 꿈속에서 울었고, 몇 달 만에 한 번씩 몇 년 만에 한 번씩, 그리고 삼십여 년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꿈속의 울음을 잊었고 여자도 잊었다.

지금은 꿈속도 아니요 진달래의 눈보라, 붉은 빗줄기, 구름바다의 환각도 아닌데 환이는 눈을 감은 채 오열한다. 눈물도 아니 흘리고 몸짓도 아니하면서 환이는 통곡하는 것이다. 만주벌판 마적단에 사로잡혀 두목의 두호를 받으며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였던 우스꽝스런 세월, 상해(上海) 거리를 아편쟁이 거지처럼 헤매던 세월이며, 포부는 있었으나 그 세월은 이미 가을이었다. 풀도 시들고 열매도 거두어들여 버린 황막한 가을이었다. 연해주를 건너가 권필응을 만났을 때 환이는 더욱더 짙게 가을을 느꼈다. 권필응의 주름진 얼굴에서 지난날 보았던 이동진의 모습이 어른거렸던 것이다. 그 수많은 독립투사 애국열사들의 마지막 운명의 그늘이 권필응만 피해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가 없는데 발바닥 몇 치, 안좌할 곳이 어디 있었겠는가. 뛰어야 하고 뛰지 못할 때 냉엄한 것은 인심 탓이 아니다. 망명의 풍상은 눈물을 마르게 하고 사정(私情)은 누구나가 죽이고 왔으니 말이다.


3부 11권 4편 5장

명희는 우울한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나뭇잎이 지고 있다. 갈색으로 변한 커다란 목련 잎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마음 바닥에 기차 바퀴가 갈고 지나간 것처럼 쓰라림이 지나간다.


3부 11권 4편 7장

“이대로, 이대로 여기 있다간 숨통이 막혀서 사, 살지 못할 것입니다. 강물에 빠져 죽고 말 것입니다. 아씨! 제가 이곳에서 죽어야 합니까!”

“양현이 크는 걸 보며 낙으로 삼을 수 없겠느냐?”


“어째 아씨는 옛날처럼 꾸짖지 않으십니까?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내쫓으세요. 그, 그럼 사람들이 절 잡지 않을 것입니다. 아씨! 저는 몹쓸 계집이옵니다! 모, 몹쓸 계집! 으흣흣흣 제발 살려주십시오. 아씨!”

“봉순아.”

“예, 아씨!”

“몹쓸 계집을 덮어줄 만큼 내 날개는 크고 넓다. 아무리 몹쓸 계집이라도 자식한테는 어미가 있어야 하느니라. 자네는 그걸 잘 알 터인데 어째 그러느냐.”

“아씨! 이렇게, 이렇게 빌어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두 손을 맞잡고 빈다. 서희는 외면을 해버린다. 차마 정시할 수 없다. 창(唱)을 하겠다는 것도 물론 거짓이다. 기화는 치매(癡呆) 상태로 가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것. ’

다정다감했던 그 감성은 어디로 갔는가. 사무치게 깊었던 그 숱한 한은 어디로 갔는가. 너그럽게 이해하고 푼수를 알며 물러나 앉을 줄 알던 그 조신스러움은 어디 갔는가. 욕심 없고 거짓 없던 그 천성은, 아니 연연(軟娟)하고 그 풍정(風情)이 사내들 마음을 사로잡던 기생 기화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그에게서는 양현을 향한 모성마저 없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들었나. 마약의 심연으로, 다정다감함이 유죄요, 다정다감함의 단죄(斷罪)인가.


‘연한 심장이 찢기어 죽지 않으려면 너처럼 병들어야 하나 보다.’


3부 12권 4편 18장

“형니임! 인간은 말입니다, 고귀한 것도 아니며 비천한 것도 아닙니다.”

“허허헛…….”

“현실적 동물일 뿐이지요. 자아, 술이나 드십시다.”

자포자기하는 투로 권오송은 내뱉으며 술잔을 든다.

“고귀한 것도 아니며 비천한 것도 아니라…… 아니지. 비천한 거야. 말할 수 없이 추악하고, 제 밥그릇 작은 것을 곁눈질하면서 뭣인가로 항상 가리면서 감추면서 사는 게 인간이야. 어쩌면 인간이란 죽음 그것까지도 허위로 장식하는 동물이 아닐까?”


4부 13권 1편 5장

등잔불을 받은 한복의 얼굴마저, 사라져간 사람들 그 사람들의 얘기와 더불어 싸아! 하며 밀려오는 물결 같았고 싸아! 하고 소리 내어 빠져나가는 물결같이 느껴진다. 부친의 자취가 사라져간다. 빠져나가는 물결 소리같이.


4부 13권 1편 7장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구마.”

“안 좋아요. 사방팔방 온통 벽이니까요.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빡이 부딪치고 좀 더 움직이면 골통이 박살날 겁니다. 도대체 사람은 열쇠를 몇 개나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4부 13권 1편 9장

어느 곳에 머리를 처박아도 그런 일에 부딪히면 나는 똑같이 비명을 지르고 가슴을 치며 울 것이오.


‘당신의 분노, 당신의 비명, 당신의 실망이 아직은 삼나무같이 곧고 가을 하늘같이 청랑하며 죽순의 가장 연한 부분같이 순수하오. 왜 그런지 아시오? 물론 당신의 천성이 큰 몫을 하고는 있어요. 허나 일시에 피고 일시에 지는 벚나무를 숭상하는 국민성 운운한다면 진보적인 지식인이나 당신 같은 코스모폴리탄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모르겠소. 나는 일시에 피고 일시에 지는 벚나무, 그 당신네들 국민성에서 셋푸쿠를 연상하곤 한답니다.


그런데 배를 가를 때 솟구치는 피는 왕왕 피가 아닌 물일 것이란 착각을 하게 되더군. 의병장의 목을 쳤을 때 흐르는 그 끈끈적한 피를 당신들 벚꽃이나 하라키리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한일합병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결하였소. 특히 늙은 유생들은 목매어 죽고 절식해 죽고 우물에 빠져 죽고 당신들이 볼 적에 결코 아름다운 죽음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그것에는, 네, 죽음의 참뜻이 있다고 나는 보는 거요. 죽음이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것, 끔찍하고 추악한 것, 당신은 영혼 속의 신성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리얼리스트라는 말을 했었소. 그러나 재차 말하거니와 죽음은 꽃이 아니며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바로 현실, 주어진 현실을 넘어가는 일이오.


모든 생물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또 개인의 사고나 단정 같은 것하고 전혀 별개의 것인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우리가 타민족으로서, 우리 나름의 편견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당신의 그 순수함을 여유로 보는데, 여유로 보는 이유는 현실에 있소. 타민족을 정벌하고 지배하는 민족적 자부심이 당신의 배경이라는 현실 말입니다. 부정하겠지요. 세상 물정 모르게 자란 명문의 자식 혹은 부호의 자식들이 이상적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흔히 보는 일이며 길가에 내굴려진 돌멩이같이 자란 사람이 권력의 칼을, 눈부신 황금을 갈망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요.

당신이나 나나 모든 사람, 인간이 생존해나가는 한에 있어서 소수의 희생은 끝이 없을 것이며 다수의 생존 또한 파괴할 수 없는 부조리를 생각하는 것…… 네, 개인만 그러한가요? 성질도 형태도 다르지만 조선, 조선 민족도 세계라는 다수에 의해 희생이 된 나라, 민족이오. 유인실이란 여성도 투쟁하겠지요. 생존해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조선 민족도 어떤 형태로든 생존하는 한 투쟁하겠지요.


4부 13권 1편 17장

중얼거렸으나 신명 잃은 광대가 빈 북을 치듯, 바라보는 사람의 말이었을 뿐이다. 남의 일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만은 아닌 성싶다. 바라보는 사람, 홍이는 이 몇 해 동안 뭔가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불현듯 느낀다. 나이 탓이 아니다. 세월이 간 때문도 아니다, 스물아홉, 잃을 나이는 아니다. 지난날 생모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파국으로까지 몰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격렬한 시절의 아픔, 분노, 언제 그런 것들과 이렇게 먼 거리에 와서 있는가. 숱한 그 괴로움을 잃었다. 잊었다가 아니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절도(節度)와 미온(微溫)은 어떻게 다른가. 아니면 같은 것인가. 마치 병마처럼 밑바닥으로 몰아넣고 굳게 마개로 밀폐한 그 숱한 청춘의 갈등은 병마개를 따면 과연 터져 나올까? 판술네 집에서 그것들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위기를 느꼈던 것은 한갓 기우였었는지 모를 일이다.


밀폐해버린 것. 그것들은 모순이며 회의이며 욕망, 또한 절망이기도 했었다. 그것은 혈기였으며 자기 추구였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지순한 것, 방종 뒤켠에 숨겨진 맑은 것, 진실이었을 것이다. 끝도 시작도 없었으며 풀지도 맺지도 못하는 몸부림과 쓰라렸던 것. 그러나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적당한 곳에서 매듭짓고 적당한 곳에서 풀어버리고…… 해를 따라가는 해바라기, 나뭇잎 뒤켠에 알을 까는 곤충, 나무는 비옥한 흙을 향해 뿌리를 뻗는 섭리다. 인간의 방편도 그 섭리에 속하는 것인가. 망각과 상실의 강도 그 섭리에 속하는 것인가. 도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냐! 사람은 해바라기가 아니다. 곤충도 아니다. 한 그루 나무도 아니다. 그것들이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듯이 사람도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겠으나, 그게 바로 방편일 수는 없다. 방편은 오히려 인위요 섭리에 반(反)한 것일 수도 있다. 홍이는 부친과 자신을 비교해본다. 영팔노인은 맺고 끊고 애비보다 홍이 대차다고 했다.


그 도리라는 것을 뚫고 진실을 보려고 허우적거리다가 돌아와서 자신은 쉽게 자위수단으로 이기주의를 취하지 아니했는가. 제 앞만 쓸고 사는 인간이 되었다. 피는 차디차게 식어버렸으며 먹고 자고 일하며 생식, 그것이 전부인 해바라기나 곤충이나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이. 지금 병마개를 딴다면 그 속은 텅하니 비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홍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 작별을 하고 판술네 집을 나섰을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하늘가에 산허리가 금을 긋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썰렁해지는 아름다운 밤이다. 어릴 적에 들었던 옛날 얘기, 천자 별인 자미성이 물을 머금었다던가, 하여 경각을 다투며 천자의 목숨이 위태롭고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죽음을 안다던가. 사람들은 각기 하나씩 자기 별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배운 지식으로 말한다 할 것 같으면 사람의 머리론 계산조차 어려운 아득한 곳에서 저 무수한 별들이 빛을 보내고 있다 하는데 한 자 낙낙한 팔이 어찌 내 별을 잡아볼 것인가. 내 앞만 쓸고 사는 티끌 같은 삶, 티끌이 바늘귀 같은 인생의 출구를 빠져나가면 광대하고 무변한 공간, 아아 내 별과 나 사이를 가로지른 무궁한 공간…… 티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꼬. 진리는, 진실은 바로 하늘 어느 곳에선가 헤매고 있을 내 별 안에 있을 터인데.


4부 14권 2편 9장

“그런 습성은 밖에서 오는 핍박 때문에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을 이겨야 해. 더한 정신적 고통을 받겠지만 우리도 살아 있다는,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거야. 명희야, 우리 물기 빠진 나무는 되지 말자.”


“어떤 바람이 불어도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살갗이 터져라고 넘치는가 하면 그건 잠시야. 그냥 주저앉고 싶은, 나도 모르게 나를 실어다 저승이든 이승이든 산골짝이든 바다 한가운데든 내버려 주었으면…… 모든 일은 내 의지 밖의 일만 같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4부 14권 2편 10장

“화난 건 아니야.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난 영영 그만일 거야. 내가 부탁한다. 제발 내게 냉정히 대해주어. ”

어쩔 수 없는 연민이었다. 오랜 우정에서 우러나는 눈물만은 아니었다. 묵은 신화 같은 것, 세상을 모르고 살던 시절에 꿈꾸던 것,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공주가 맨발로 가시밭을 가는 석양, 연한 발바닥에서 피가 흐르는 환상, 그것과 엇비슷한 아픔이 여옥의 가슴을 누른다. 철저히 감상을 배격해왔었고, 그 신화 같은 것에 화살을 날리던 여옥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선택받은 자의 전락은 더욱 처참하다.


불쌍한 아이, 불쌍한 명희, 너의 아름다움과 풍요한 환경과 어리석을 만큼의 순결함, 그런 특권은 너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도움이 되지 못하였던 과거의 그 특권은 그러나 지금부터 네 발목에 물린 족쇄가 되어 너를 괴롭힐 것이다. 그 무게는 가는 길을 고달프게 할 것이다. 명희는 당분간 과거를 향해 구원을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행과 진주행을 거부했다. 확실한 것은 그것뿐 앞날은 캄캄한 안개, 바람만 불어도 부대끼는 감성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 것인가.


4부 14권 2편 12장

“장부가 그리 나약해서 장차 어떻게 세파를 헤쳐나가겠느냐. ”

“제 앞만 쓸고 사는 것이 장부겠습니까. 많은 사람을 위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장부의 마음이라 저는 알고 있습니다. ”

서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사람일 따름, 신은 아닌 게야. 하늘과 땅 사이, 목숨을 받아 슬픈 것이 하고많은데 너의 힘으로 어찌해. 또 너는 창생을 다스리는 임금의 자리에 앉은 것도 아닌데 그 모든 것을 어찌 짊어지려 하느냐. 그런 생각을 나무라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생각이 거룩하다 하여 행동이 따르지 않아도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을까? 아무나가 갈 수 없는 성현(聖賢)에의 길이건만 그 성현께서도 생각에서 이르셨지만 능히 세상을 제도하시고 중생을 구제하지는 못하셨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무도 크게 자라려면 잔가지는 치는 법, 많은 잔가지를 지탱하려면 둥우리가 백 년 이백 년을 두고 커야 하느니, 요즈음 너의 마음이 허약해져서 그런 것들이 다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만. ”

“어째서 그것이 예사로운 일이겠습니까. 예사롭게 보아넘기는 데서 인간은 점점 사악해지고 무자비해지고, 자기 자신들의 일이라면 예사롭다 아니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일일수록 할 수 없다, 그렇게 무관심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일신 일문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반드시 자랑스런 일이겠습니까? 태곳적부터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이 따로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그것을 만들어놓고서 명분을 찾고 너무 뻔뻔스런 일 아니겠습니까?”

구르기 시작한 수레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 법이다. 지금 윤국의 형편이 그러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어머니를 정면에서 공격한 것이다.

“못할 말이 없구나. 어미 앞에서 그래도 되는 게냐?”

“저는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


4부 14권 3편 9장

“언어란 생각만큼 풍부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 사물과 생각은 끝이 없는 거니까 언어란 늘 빈곤하게 마련이에요. ”

글이란 엄밀히 말해서 전달의 수단이지 내용은 아니지 않겠느냐, 했듯이 인실은 약점에 대한 궁여지책의 응수를 했다.


“저에게 역사는 학문이 아니었으니까요. 현실이에요. 오늘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기막힌 고난에서 절실해지는 욕구라 해도 좋겠지요. 우린 결코 미래를 잃고 싶지 않은 겁니다. 잃지 않는다는 확신을 역사에서 찾아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요. 역사는 과연 문서에 불과한 걸까요?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보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이 소생할 수 있는 생명으로, 아까 한 얘기는…… 풍요한 바탕에서의 생략된 얘기, 그럴 수는 없는 거지요. 너무나 큰데요. 너무나 엄청나게 복잡한데요. 안다는 것이 도시 우습지 않아요? 과거 그 숱한 상황과 형체를 통하여 앞으로의 시간을 믿어보고 희망을 걸고 싶었던 거예요. 시간에 희망을 건다는 것은 소극적인지 모르지만 우리 조선인은 깨어 있어야 해요. 그런 희망까지 잃는다면 우린 잠들어버리거나 죽어야 하니까요.”


4부 15권 5편 6장

“산다는 것, 그거 대단한 거야? 대단한 것도 아니지 않아.”

“산다는 것은 위대해. 아무리 평범하게 살아도 삶 자체는 대단한 거야.”


5부 16권 1편 1장

이별하고 고생하며 불행해진 조선인의 처지는 모두 일본으로 인한 것인 만큼 일본을 섬멸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으니 억울하다는 박서방의 심정 토로, 항의였던 것이다.


유곽으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 그것은 죽음인가 삶인가.

죽음도 아니며 삶도 아니다.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땅도 빼앗기고 삶의 터전도 다 빼앗기고 마지막 남은 딸을 팔아넘긴 부모의 그 죄업의 생애를 전율 없이 생각할 수 있는가. 공장 월급의 몇 달치 선불이라 속이고 얼마간 금액을 떨어뜨린 사내들은 딸을 끌고 간다. 가난과 생명의 존재는 이토록 처절한 것인가. 참 그렇다!


“과연 영웅호걸이란 있습니까?”

묻는다.

“영웅호걸, 위대한 애국자, 신출귀몰하는 의인, 사실 그런 게 있습니까?”

재차 묻는다.

“있었으니까 역사책에도 나와 있겠지.”


“정의니 팔굉일우(八紘一宇)니, 공영(共榮)이니, 침략자 왜놈들이 즐겨 쓰는 말 아닙니까? 과연 정의가 있습니까? 자유가 있습니까? 평등이 있습니까? 있어본 일이나 있습니까?”


5부 16권 1편 4장

사람이란 늙으면 대개의 경우 어깃장도 놓고 이기적으로 된다고들 한다. 하니 평생을 철판 깔고 살아온 조준구, 이를 말해 뭣하리.


일 년 동안 조준구는 호의호식, 보약이다 뭐다 하며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은 몇 번이고 퇴하면서 아들의 살림을 뿌리째 뽑으려 들었다. 그는 잔인한 폭군이요 악마였다. 특히 아들에게는 가학적 쾌감으로 괴롭혔다. 때론 노망이 든 것처럼 가장을 하면서 행패를 부렸고 때론 노골적인 잔인성을 얼굴 가득히 나타내며 아들의 불구를 조롱하곤 했다. 희망도 낙도 없이, 죽음의 공포를 잊으려고 그랬는지 모른다. 아니면 마약같이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악(惡)도 그러한 생리일까.


악을 행하는 것도 쾌감일까. 지금은 그의 인생의 끝머리, 그 대상이 아들 말고 누가 있는가. 실로 저주받은 생애라 할밖에 없다. 보다 못해 손자나 자부가 항의를 하면 어디서 힘이 솟는지, 아래 말고 위쪽의 눈 흰자위를 허옇게 드러내며 스틱을 들고 쫓아오곤 했다. 뿐만 아니었다. 집에서 부리는 여자아이나 아낙에게 추잡하게 굴어서 집안 망신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일하는 사람이 집에 붙어나질 못했다.


조준구가 중풍으로 쓰러진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하반신 마비였던 것이다. 중풍으로 쓰러졌다 해서 집안이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잔혹한 상태에서 조준구는 광란 상태로 변하여 집안은 한층 더 시끄러워졌던 것이다. 별의별 요구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기막히는 것은 송장 썩은 물을 구해오라는 주문이었다. 송장 썩은 물이 중풍에 좋다는 말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서 구해오는가.


오늘도 집안이 조용한 것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때문이다. 병수댁네는 속이 상해 아들 집에 갔는지 없었고 조준구는 한바탕 광을 친 뒤여서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병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조준구의 상태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다. 발작을 하면 삼이웃이 시끄러웠다. 한번은 병수가 오물을 치우려고 방에 들어갔을 때 대변을 거머쥐고 있다가 아들 면상을 향해 던진 일이 있었다. 그때 병수는 통곡을 했다. 가엾고 측은하다 했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살아야 하며 떠나갈 길을 생각지 않는가 하며 그는 울었던 것이다.

“소가죽을 뒤집어써도 유분수!”

조준구의 소문을 듣고 진주의 영팔노인이 담뱃대로 재떨이를 치며 내뱉는데 마누라가 받아서.

와요? 소가 우때서요? 얼매나 어진 짐승인데 거기 비하는 깁니까.”

하고 타박을 주었다.

“천벌을 받을 그놈이 아직 안 죽고 살아서 자식 못할 짓 시키고 있다 카이 참말로 하늘이 있나 없나.”

“벌 받니라꼬 살아 있는 거 아니겄소. 벼루박(벽)에 똥칠 해감서 벌받니라꼬.”

“그기이 벌가? 어림없다! 적악(積惡)을 어디 한두 사람한테 했던가?”

“와 날보고 징을 내요. 그렇기 억울하믄 가서 직이든 살리든 해보소. 다 살 만큼 살았인께.”

“그놈의 죄는 삼악도에 떨어져도 다 못 갚는다. 내가 만주서 그 고생할 직에는 씨퍼런 칼 가지고 그놈의 배애지 찔러 직이고 싶은 생각 한두 번 한 줄 아나? 그래도 나는 소분지애씨라. 관수나 석이 가아들한테 비하믄.”


5부 16권 1편 5장

‘바로 그게 세월일 거야.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그게 세월일 거야. ’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시시각각 달아나고 희미해지는 것을, 새삼스럽게 서희는 가슴이 죄어드는 것을 느낀다. 묵은 상처들이 모조리 들고 일어나듯 가슴이 아파온다. 길상을 바라본다. 두 어깨가 좀 구부정해 보였다. 흰 머리칼도 제법 눈에 띄었다. 오십을 넘긴 사내의 모습이다. 면도한 지 이삼 일이 지났을까. 턱수염이 파아랗게 돋아나 있었다.

어디서 오는 슬픔일까. 어디서 온 지난날들일까. 그것은 모두 바람이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서희 의식 속에서는 바람 따라 나뭇잎 풀잎이 드러눕고 흔들리고 나부끼며 전율하고 있었다. 눈보라가 치고 나뭇가지가 휘면서 신음하고 울부짖으며 여자의 머리칼 옷자락이 끊어질 듯 찢어질 듯 바람 가는 곳을 향해 나부끼고 있었다. 지난날들이 눈보라같이 함박눈같이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서희는 두 손을 들어 두 눈자위를 꽉 누른다.


5부 17권 2편 3장

“일본이 망할 때까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을 잊지 않겠어요.”

별안간 인실의 목소리가 뜨겁게 귓가에서 울렸다.

“일본이 망할 때까지…….”


5부 17권 2편 4장

‘한 위인이 살다 간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서가 아닐까? 시일까? 타인에게 투영된 그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갖가지 정서로 재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자체는 보는 사람에게는 풍경이며 시다. 위대하다는 그 자체가. ’

영광은 밑도 끝도 없는,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고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사념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5부 18권 3편 1장

적(敵)이든 고난이든 대결할 대상이 없다는 것은 그 대결 이상의 불행이라는 것을 명희는 불현듯 깨닫는다. 삶의 의욕을 철저하게 잃어버린 사람, 삶의 의지가 마모되어 없어진 사람, 그것은 시곗바늘이 없어진 시계 판과도 같은 것이다. 명희는 명빈의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을 눈앞에 본다. 가는 시간의 슬픔보다 멈춰진 무의미한 시간이야말로 그것은 삶이 아닌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야말로 삶 자체지만 영원한 생명은 이미 나락이 아니겠는가.



5부 18권 3편 5장

‘언제나 그렇게 엇갈려. 왜 그렇지? 그러면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그런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살아가고,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 양현아, 실은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 ’

바늘에 실을 걸어 빼고, 또 실을 걸어서 빼고 하면서 명희는 어떤 착각에 빠진다. 양현의 운명이 마치 자기 운명인 것처럼, 그러나 깊고 뼈저린 회한이 엄습해왔다.

‘나는 세상에 나와 이룬 것이 없지만 너의 눈물은 뭔가를 이루기 위해 흘리는 것이다. 울어. 많이 울어라. 양현이 너는 나같이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가지는 않을 거야. 너의 청춘은 정말 아름답다. 고통도 슬픔도 어쩌면 그렇게 투명하니? 나는 허울만 쓰고 살아왔구나. 세상의 눈이 두려웠고 내 명예 내 결백만을 신주 모시듯, 실은 그것조차 기만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희생이라는 미명 하에 나는 무풍지대로 기어들어갔고 그러다가 오히려 태풍을 만났던 거지. 왜 나는 전과 같이, 홍천댁이 시동생과 좋아 지냈다 했을 때 억울하지 않았을까? 분노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 명예 내 결백을 위하여 나는 잔인하게 그 진실에 상처를 입혔다. 남이 뭐라 하건 개의치 않고 나를 염려하여 찾아온 사람에게 나는 오로지 내 자신만을 지키기 위하여, 그것은 참 추악한 모습이었을 거야. 뭣 땜에,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고통스러워했는가? 지금은 그것조차 알 수가 없다. 백치(白痴)같은 삶이었지. 그러고도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 할 수 있을까? 인실이도 그렇고 여옥이 선혜언니도 그래. 양현이 너도. 분명히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것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자신을 내어던질 대상이 있었다. 살았다는 것, 세상을 살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는 살았다는 흔적이 없다. 그냥 그 날이 있었을 뿐, 잘 견디어내는 것은 오로지 권태뿐이야.


양현은 갑자기 영광과 자신이 쌓은 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무너지고 말 것 같은 예감이 엄습해왔다. 늘 그랬었다. 자신에게 비쳐진 영광은 항상 떠나는 사람이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뒷모습을 보이며 머리칼을 바람에 나부끼며 떠나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오는가 하면 어느덧 뒤돌아서 가고 있었다. 너를 잃고 싶지 않다는 그 절규와도 같았던 고백은 실상 얼마나 불안한 것이었던가. 진실의 한순간은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방은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영원히 떠도는 영혼인지 모른다. 그런 부질없는 생각에 양현은 떨었다. 영광이 쪽이 무너지고, 윤국이 쪽이 무너지고, 섬진강 강가에 가서 꽃다발을 던지며 생모를 부르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크게 떠오른다. 인천서 전보를 쳤던 일에서부터 양현은 자신이 정상적이 아니었던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영광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고백이 아니었더라도 양현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양현이 자신은 그를 향해 밧줄을 던지는 사람이면 영광은 항상 밧줄을 걷어내고 도망치는 사람이었고 그의 실체는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버리는 물과 같이 허망했다.


5부 18권 3편 6장

“울 아부지가 산에 안 들어갔다고 후회를 했다고요? 어림 반 푼어치 없는 말 하지도 마소. 의병질을 했건 동학당을 했건 만주 가서 독립군을 했건 그거는 아저씨 소관이지 울 아부지가 와 후회를 합니까. 누구 망해 묵을라꼬 한단 말입니까.”

“말 다 했나?”

그때 영팔노인은 분노에 차서 벌떡 일어섰다.

“이노오음! 이 불가사리 겉은 놈아! 그래, 니 말이 맞다. 나는 동학당도 했고 의병질도 했고 만주 가서 독립군도 했다! 우짤라노? 내 이 늙은 모가지에 썩은 새끼줄 감아서 왜놈한테 끌고 갈라나? 끌고 가믄 상 많이 탈 기다! 다 산 목심, 내 그기이 무섭으믄 성을 갈겄다. 이 천하 무도한 놈! 지 뿌리 짤라묵고 사는 놈!”


5부 18권 4편 1장

“바람이 거세게 불면 풀잎은 바람이 잘 때까지 엎드려야 하고 파도가 거세어지면 돛을 접어서 파도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 인간사도 그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용기도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그보다 지혜로움이 앞서야 하고, 이런 얘기를 하면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풍월 읊는다 하며 비웃을지 모르나, 머릿속에 도판을 그리기보다 땅을 먼저 밟아야 하네.”

해도사는 점쟁이 같고 엉터리 도사 같은 일상의 면모를 되살려내며 진부한 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조만간 딴 뜻이 있다면 범호는 그것을 내어놓을 것이다. 해도사는 항일을 위한 일이고 굳이 그것을 저지할 명분은 없으나 견제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파도나 바람이 거센 것은 누구에게나 눈에 보이는 일이지만 정세에 관한 한 그것이 강풍인지 노도인지,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또 정보를 많이 가진 쪽이 판단하는 데 유리하기도 할 거구요.”


5부 19권 4편 2장

결국 모녀간에는 메우지 못하는 도랑이 가로놓여 있었고 두 사람의 심정은 영원한 평행선이었다.


누군가를 섬기면서 산다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일까.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산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요즘 겉은 세상에 근심 걱정 없는 사람은 자네 겉은 의사제. ”

“사람인데 어찌 근심 걱정이 없겠습니까. ”

“모두 사는 기이 칼끝에서 용천지랄하는 기라. ”


조선 민족의 운명은 진작부터 그런 방향으로 예상되어 왔다. 식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극히 소수만이 그 포악한 칼날을 피부에 느끼고 있었을 뿐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의식이 마비된 상태였다. 체념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의식이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날이면 날마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단장의 이별이나 굶주림, 오로지 하나, 일본 왕에 대하여 충성하며 초개같이 제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총칼의 위협이 강산에 충만해 있건만 사람들에게 그것은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 원인이나 결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으며 다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 느끼고 있었다. 아마 일본인들도 그러했을 것이며 친일파라고 뾰족한 희망이 있을 리 없었다. 살아남을 궁리를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일본과 운명을 같이할밖에 없다는 것을 때때로 느낄 따름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횡포하게 했을는지도 모른다. 말단의 일본 녹을 먹는 친일분자는 한층 가열하게 내 백성에게 채찍질하며 끌어내고 잡아내고, 그들은 포식하는 처지만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며 미쳐 날뛰었을 것이다. 상부층은 협력을 해야만 조선 민족이 살아남는다는,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는 논리를 리코딩하여 되풀이 되풀이하여 판을 돌리고 있었다. 열혈의 조선 청소년들이여! 국가 위난을 보고만 있을쏜가, 총칼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라! 대군(大君)의 신금을 우리는 보위해야 하느니, 펜을 버리고 총을 들라! 오오 감읍(感泣)의 극(極)이로소이다. 폐하의 적자(赤子)로 조선 백성을 안으신 그 크나큰 성은을 어찌 우리가 잊을쏜가! 저 하늘의 태양이 영구불멸이듯 우리의 인군 또한 그 영광이 무궁하리, 오오 조선의 청소년들이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총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 적을 무찌르라! 썩어 죽을 놈들, 유다의 낙인은 이천 년에 이르기까지 소멸되지 않았음을 그 어찌 모르는가.


5부 19권 4편 3장

참말로 웃기는 세상 아닌가요? 인간이란 도대체 몇 겹의 인두겁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

“시간이 해결해주는 거 아닐까요?”

부용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5부 19권 4편 6장

“세상이 불공평하다고들 하지만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렇지도 않아. 나쁜 놈이 잘된다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나이 먹으면 사람들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어디 주름살 때문만이겠나? 그 역정이 모습에 각인되기 때문이야. ”


5부 20권 5편 4장

가령 문학, 혹은 소설 같은 데에는 천사처럼 아름다운 악마가 있고 보기에 몰골은 흉측하지만 부처 같은 사람도 있는데, 물론 실제에도 그런 경우는 허다하지만, 그러니까 잘나고 못나고, 병신이거나 사대육신이 멀쩡하다는 것은 형태가 지닌 숙명이다.

그러나 그 원래 형태에서 번져 나오는 것, 번져 나옴으로써 세월의 부피 따라 변화하는 한 시점, 시점마다의 실체는 당자들 영혼의 이력을 알려주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빛깔, 움직임, 소용돌이, 침잠, 느낌이 가능한 모든 정신영역의 추상적 형태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통어하고 사악한 사람은 엄폐한다. 반대로 그것을 심안으로 간파하여 화를 면하거나 인생의 좋은 도반(道伴)을 얻을 경우가 있고, 간파하지 못하고서 화를 입거나 우둔한 생을 보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삶의 흔적은, 마음으로 행위로 행한 만큼 더도 덜도 아니게 그 모습에, 행동에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인간을 습관의 동물이라고 한다. 어디 인간만이겠는가. 무릇 모든 생명에는 모두 습성이 있게 마련이다. 제각기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간에게는 선악으로 구분 짓고 도덕이라는 균형을 정하는 이성이 있으며 영성에 대한 끝없는 갈증이 있다. 그것이 다른 생명들과 다른 점이다. 그러니 선악의 기준이 없는 다른 생명들은 본성을 감출 필요도, 본성을 간파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허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까지 없을까.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가 공포와 절망 때문에 울부짖는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있고 한발(旱魃)에 목말라하는 식물, 비바람에 뿌리를 지키기 위한 식물의 저항을 볼 수도 있다.

인간을 습관의 동물이라고 한다. 어디 인간만이겠는가. 무릇 모든 생명에는 모두 습성이 있게 마련이다. 제각기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간에게는 선악으로 구분 짓고 도덕이라는 균형을 정하는 이성이 있으며 영성에 대한 끝없는 갈증이 있다. 그것이 다른 생명들과 다른 점이다. 그러니 선악의 기준이 없는 다른 생명들은 본성을 감출 필요도, 본성을 간파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허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까지 없을까.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가 공포와 절망 때문에 울부짖는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있고 한발(旱魃)에 목말라하는 식물, 비바람에 뿌리를 지키기 위한 식물의 저항을 볼 수도 있다.


5부 20권 5편 6장

이별을 했던 거야, 그 말이 상의에게는 아주 슬프게 들렸다. 어느 날 전사통지서를 받을지도 모르는 출정, 아니 애당초 대일본제국을 위하여 죽으러 가는 길. 저만큼 주먹밥을 뭉치고 있는 옥희는 힐끔힐끔 주위를 살피다간 재빨리 밥을 입에 밀어 넣곤 한다. 진영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못 본 척, 작은 입술을 꾹 다물고 주먹밥을 꽉꽉 눌러 쥔다.


일본군과 교전하는 사태가 서울서 벌어졌는데 그 소식을 가져온 목수 윤보에 의해 마을에서 장정들이 들고일어나 최참판댁을 습격하여 군량미를 빼앗는 동시 조준구를 살해하고자 했지만 친일파 조준구를 처단하는 데는 실패하고 결국 그 일에 가담했던 장정들이 모두 산으로 들어간 직후, 영문 모르고 마을에 나타난 정한조를 조준구는 폭도로 몰아 왜헌병에게 넘겼으며 헌병에게 끌려갈 때 석이는 신발을 벗어들고 아부지! 아부지이! 울부짖으며 따라갔으나 정한조는 총살당하고 말았다.


자아, 이만하면 숨이 가쁜 불행의 연속이 아니고 무엇일꼬. 모두 힘들게 살아왔고 비극적 삶을 끝낸 사람들도 많지만 어찌하여 그다지도 불행의 여신은 석이네 식구들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가. 절망적인 파도를 넘고 넘어 살아왔으며 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인생이 엄숙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만 본능적인 삶에의 욕구, 죽음이 두려운 때문인가, 전생의 업을 갚기 위한 때문인가? 그렇다면 남희는 전생에 무슨 악행을 범했더란 말인가. 사냥감같이 잡혀서 전선으로 보내어지는 조선의 순결한 딸들은 어떤 업을 짊어졌기에 일본군대 야수 같은 몸뚱이 밑에서 살이 썩어가야만 하는가. 대체 조선 민족은 일본 민족에게 갚아야 하는 죄업이 무엇인가.


개인 하나하나의 행로를 바꾸어놓은 대일본제국의 군국주의, 침략의 그 마성을 적자생존이라는 이른바 지식인들의 논리로 진정 마감해야 하는 건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악이 힘이라면 선도 힘이요, 공격이 힘이라면 방어도 힘이다. 악의 승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네들은 지금 공중에서 찢기어 살점들이 흩어지고 옥쇄! 옥쇄! 전멸! 전멸! 막 스스로에 의한 지옥이 펼쳐져 있지 않은가.


“왜 이리 쓸쓸하지? 정말 학창시절은 끝난 걸까?”

경순이가 한숨 섞어가며 말했다. 진영이 걸음을 멈추며,

“저 노을 보아. ”

감탄하며 말했다.

“미친 듯이 타고 있군. 정말 우리는 헤어지고 나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걸까?”

“만나기 어려울 거야. ”


5부 20권 5편 7장

그러나 이미 소나기는 지나간 뒤였다. 선혜 마음속에 내리는 소나기, 장대 같은 빗줄기가 포도 위에 내리꽂히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그것은 사실 분노나 증오이기보다 공포와 슬픔이었는지 모른다. 절망이었는지 모른다. 명희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민족 반역자로 처단될 때 분명 삶의 값어치가 죽음에서 나타나는 거 아니겠어? 하기야 뭐 땅속에 들어가서 썩기는 매일반이지만. ”


“어차피,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해. 다른 사람의 인생과 똑같은 삶을 살 수도 없는 거고, 불행이다 행복이다 하는 그 말도 실상은 모호하기 짝이 없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우리들 운명, 행복 불행이 검정 과자 빨간 과자처럼 틀에다 찍어내는 것도 아니겠고, 운명 앞에 무력해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만 그러나 운명을 정복한 사람은 없어. 자신(自信)이라는 말같이 허망한 것이 어디 있을까. 노인을 보아. 그 경력이 화려한 노인일수록,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결국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거야. 삶이란 덫에 걸린 짐승 같은 것, 결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것. ”


두 사람이 다 같이 후회스런 청춘이었지만 그러나 아름다웠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해도사는 길고도 긴 밤이 끝나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밤이기보다 깊이 모르게 파여 내려간 계곡 이쪽과 저쪽에 걸쳐 매어놓은 동아줄을 타고 가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계곡 바닥에서는 용의 혓바닥 같은 지열이 솟아오르고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달려오고. 방금 보았던 광경이 긴 밤 저쪽에서, 긴 동아줄 저쪽에서 마치 서산 마루에 가라앉기 시작하는 불덩어리, 붉은 해같이 떠오른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혼합된 것이었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어우러짐, 그 광경은 혈흔같이 축소되기도 했고 시뻘건 탁류같이 확대되어 소용돌이치기도 한다. 온통 붉은 빛, 미친 빛깔, 진홍의 제전 같은 것, 붉은 광무(狂舞)…… 밤은 가는데 어둠이 내려온다. 서서히 안개비가 내리듯이 어둠이, 정수리에서 발끝을 질러나가는 점막이, 모든 것이 정지된다.


서희는 투명하고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푸른 해당화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양현은 입술을 떨었다. 몸도 떨었다. 말이 쉬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느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 이때 나루터에서는 읍내 갔다가 나룻배에서 내린 장연학이 둑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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